|이경권칼럼|코로나19와 비대면 진료 2020-06-02 10:42:46
정부발 비대면 진료 화두로 의료계가 시끄럽다. 여당은 자신들이 반대했던 원격의료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취약한 대상, 취약한 지역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전화상담 및 처방건수 26만 건을 기초자료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에서도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 제17조에 의하면 직접 진찰하지 않은 의사는 처방전이나 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고, 여기서의 ‘직접 진찰’을 대면진료로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다(재진환자에 대해 전화로 진찰하고 처방전을 발급한 것은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0도1388 판결). 즉,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려면 현행 의료법 제17조를 개정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원격의료를 규율하고 있는 것은 의료법 제34조로 제목도 ‘원격의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원격의료의 일부인 원격협진 또는 원격자문만을 허용하고 있다. 즉,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인 의사-환자간 진료는 금지하면서 의사-의사간 협진이나 자문만 허용한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이 무늬만 원격의료인 제도를 원격의료라는 이름을 붙여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법의 규정이 이렇다 보니 정말 불필요한 시범사업이나 연구가 벌어진다. 취약지역에 사는 환자가 의사와 진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취약지에 근무하는 의사가 왜 다른 의사와 협진을 해야 하는가. 그럴 바에야 환자를 이송하여 진료를 보게 하면 된다. 교도소에 있는 의사가 다른 의사와 협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죄수를 외진 내보내면 된다.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써서 우회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라고 떳떳이 밝히고 국민의 의견을 묻는 것이 낫다. 그래야 여러 논의도 같이 진행될 수 있다. 처방전을 어떤 약국에 보낼 것인가, 약의 배달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방전 리필제는 시행할 필요가 있는가 등등. 세상은 바뀌고 있다. 당연히 학교에 모여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과거의 것이 되었고, 글로벌화, 지구촌이라는 단어도 어색해졌다. 기존의 상식이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드시 의사와 얼굴을 맞대고 진료를 보아야 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일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으로도 의사의 시진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촉진이나 청진도 대체가능하며 실제 청진기를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앱을 이용한 신체활동 측정은 보편화되었다. 최근 원격 모니터링의 하나인 손목시계형 심전도 검사기기가 건강보험에 포함되어 업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 원격협진, 원격 모니터링, 국민들은 용어에 혼란스러워 한다. 본질은 하나인데 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가. 기술의 발전과 인구의 노령화 등으로 인해 원격의료는 시행될 수밖에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뿐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방직기계를 부순들 산업혁명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처럼.
원격의료 대안이 왕진? 과연 올바른 해법인가 2020-06-01 05:45:00
원격의료 추진은 정부·여당과 의료계 사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원격의료 추진이 필요하다는 정부와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이 우선이라는 의료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도입하려는 원격의료가 의료계의 주장처럼 도리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확보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먼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료계의 동의하에서 시행한 전화 상담과 처방을 통해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하게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의료계는 정부가 발표한 제한된 전화 상담 및 처방만을 기준으로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원격의료 추진을 즉시 철회하라고 연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사협회는 정부의 근거로 제시한 전화 상담과 처방 건수가 전체 진료 건수 대비 미미하여 안전성 여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안전에 위협을 느낀 독자 보행이 어려운 고령의 만성질환자에 한해 시행된 전화 상담과 처방 결과를 일반화하여 원격의료 추진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의료계가 원격의료 추진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중에 놀랍게도 의사협회 홍보이사가 원격의료의 대안으로 '왕진제도(방문 진료)' 시행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가 커뮤니티사업의 핵심으로 제안하였으나 현재 유명무실화한 방문 진료가 원격의료의 대안이라는 주장이 과연 현실성 있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산업의 관점에서 활성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고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대체할 수단으로 방문 진료를 주장하는 이유가 수가 인상을 위한 방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원격의료 반대에 대한 명분과 실리 측면에서 큰 착오다. 물론 방문 진료가 대면 진료 원칙을 준수하고 있으나, 이 또한 환자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의사협회의 공식적인 판단이다. 아울러 방문 진료비 책정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참여하는 의사가 적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노출하여 현재 참여도가 매우 저조한 상황이라는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방문 진료는 원격의료의 대체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다. 최근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책임은 대면진료와 같다는 태도다. 이것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료계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로 법적 책임 소지에 대한 불명확성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가장 중요한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의료 행위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수립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산업 논리에 근거하여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제도로 평가받기 어렵다. 국민으로서도 불완전한 제도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면, 원격의료 시행이 주는 편리함만으로 원격진료가 대면진료를 대신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에서 무조건 원격의료를 추진하기보다는 의료계와 국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사전 안전장치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여기서 한 합의에 근거하여 원격의료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올바른 제도로 정착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정부는 반대를 위한 원격의료 철회 주장이 아닌 국민 건강을 위한 진정한 의료계의 충언을 허투루 듣고 흘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통의학과 코로나19 2020-05-28 05:45:50
코로나19에 대한 전통의학 혹은 전래요법 활용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의 소식이 잡힌다. 에티오피아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전래요법을 찾아냈다고 주장했고, 짐바브웨 정부는 전래요법사들에게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허가했다. 카메룬에서는 전래요법사들에게 코로나19 예방과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해달라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난 4월에 개똥쑥 등 약초들을 혼합한 드링크제 “CVO(COVID-Organics)”가 출시됐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예방과 치료 효과가 좋다며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자 적도 기니, 기니비사우, 니제르, 탄자니아 등 여러 국가에서 주문이 몰려들었다. 사태가 커지자 WHO는 이 드링크제가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경고하고 임상시험 검증을 진행하자는 입장을 발표했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만약에 유럽 국가에서 개발됐다면 이렇게 많은 의심을 받았겠는가?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마다가스카르 같은 가난한 나라가 세계를 구할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반발하며, “105명의 코로나19 환자를 이 드링크제만으로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CVO에는 말라리아치료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함유한 개똥쑥이 포함되어 있어서, 남용되면 열원충이 말라리아 치료제에 내성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40만 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다.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전통의학 검증을 권유한 WHO는 지난 3월 전통의학 때문에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WHO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목록에 “한약 복용(Taking traditional hermbal remedies)”이 있었는데, 3월 초 은근슬쩍 사라졌다. WHO 중국어판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고, 곧이어 영문 등 다른 언어의 홈페이지에도 삭제됐다. 이 내막에 대해 BBC 중국어판은 WHO가 중국으로부터 2천만 달러를 지원받기로 약속받고서 한약을 먹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치료에 전통의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음식을 직접 삼킬 수 있는 모든 코로나19 환자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청폐해독탕 같은 한약을 복용시키고 있다. 4월에는 한약제제 3종에 대해 코로나19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능을 승인했다고 한다. 온 세계가 코로나19 치료제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지만, 한약에 대한 중국 밖에서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2월 5일 뉴욕타임즈의 “In Coronavirus, China Weighs Benefits of Buffalo Horn and Other Remedies”, 3월 16일 CNN의 “Beijing is promoting traditional medicine as a 'Chinese solution' to coronavirus. Not everyone is on board”, 5월 6일 Nature의 “China is promoting coronavirus treatments based on unproven traditional medicines”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에 대한 한약 치료가 근거가 없다는 점, 중국의 ‘일대일로’에 포함되는 거대한 돈벌이로서의 한의학 문제 등이 지적됐다. 왜 박쥐나 천산갑에게 있었을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희귀한 동물이 건강에 좋다고 믿는 중국인들의 한의학적 식문화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의 전문가인 대한민국의 한의사들은 중국의 임상진료지침을 들고 와서 자기들도 중의사들이 만든 지침을 근거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한의사들을 진료에 참여시켜주지 않자, 한의사들은 전화만 걸면 한약을 공짜로 배송해준다고 홍보했다. 최근에는 한약을 공짜로 받은 환자들이 만족스러워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전통의학에 기대를 거는 나라들은 중국을 제외하면 자기 땅에서 나는 풀뿌리를 달여 먹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다. 한의학을 활용하는 일본과 대만도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한약을 먹이겠다는 방침은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의 한의약산업은 성장을 거듭해 2020년에는 5조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한다. 중국은 이 막대한 돈벌이에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할 작정을 한 것이다. 중국산 전래요법에서 1980년대에 한국전통의학으로 탈바꿈한 한의학은 국제사회에서 호응도 비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그동안 한의약육성과 홍보에 예산을 쏟아 부었어도 외화벌이는커녕 중국의 아류라는 정도의 인식조차도 얻지 못했다. 그 우수하다는 동의보감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서 영어로 읽을 수 있는데 왜들 그렇게 알아주지를 않는지, 올해도 세금을 써서 여러 홍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떳떳하지 못한 돈벌이를 뒤쫓는 일을 그만두고, 최첨단 과학에 전력투구하는 편이 국민과 인류의 건강을 지키고 국가의 위신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메디톡스 겨눈 무소불위의 검, 식약처 신중해야" 2020-05-28 05:45:50
필자는 수년 전 메디톡스라는 회사를 우연히 알게 됐는데, 메디톡신이라는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만드는 회사였다. 비록 블록버스터급의 약물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도 전세계에 수출하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회사가 생긴 것 같아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가 메디톡신의 시험성적서와 원액 정보를 조작했다는 것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드러나, 품목허가가 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에도 역시 식약처는 해당 제품이 유통되는 시기에는 전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왜 식약처는 해외규제기관이나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아니면 품질의 문제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것은 다름 아닌 식약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전문성이 미약한 식약처가 허가와 취소에 관한 무소불위의 검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품목 허가가 취소된 코오롱 인보사의 경우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세포가 뒤바껴서일까? 물론 이 점도 매우 심각한 문제였지만 의외로 관절염에 관한 전문가 집단인 대한류마티스학회에서 제기한 문제는 애초에 허가할 만큼의 유효성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인보사 허가를 심의하기 위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1차 회의에서 7명 중 6명의 위원이 반대 의견을 피력한 점, 대한슬관절학회에서 인보사의 급여에 반대의견을 표명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즉, 애초에 허가해서는 안되는 약물을 허가한 것이다. 그럼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무리한 허가를 한 식약처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코오롱 뒤에 숨어 모든 책임을 코오롱에 던지고 품목허가 취소라는 검을 휘둘렀다. 심지어 식약처장이 세포가 뒤바뀌었지만 환자에 미치는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후에 말이다. 반면, 세포 뒤바뀜의 문제를 처음 발견한 미국의 FDA는 철저히 환자에 미치는 안전 중심이었다(물론 여러 차례 말하지만 미국 FDA가 항상 정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세포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환자에 미치는 안전성이 우려돼 임상시험을 보류시켰지만 추가자료로 어느 정도 우려가 해소되자 임상시험 재개를 허락한 것이다. FDA의 환자 중심, 안정 중심 마인드는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의 데이터 조작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작년 노바티스의 자회사 아벡시스는 졸겐스마의 허가시 신청한 자료 중 일부가 조작됐음을 고백했다. 문제는 자료 조작을 알았음에도 허가시 해당 자료를 제출했다는 점이었고, FDA는 강력한 민,형사상 조치를 예고했다가 올해 추가적인 조치는 필요없다고 발표했다. FDA는 문제가 발견된 그 당시에도 졸겐스마의 허가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왜냐하면 해당 데이터 조작이 동물시험 자료로서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데이터 조작은 심각한 문제지만, 품목허가의 취소는 환자에게 미치는 안전성과 유효성에만 기초해서 판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작년에 발생한 에스앤지바이오텍의 혈관용 스텐트의 예를 통해 식약처 규제가 얼마나 환자와는 무관한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급여 문제로 혈관용 스텐트 보급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이 회사가 제조하는 대동맥 텐트가 시장 점유율 43%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마다 대동맥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므로, 회사는 환자맞춤형 스텐트를 제조해서 의료기관에 보급했고, 의료진과 환자는 이로 인해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환자맞춤형 스텐트가 불법이었던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규격이 다르면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회사가 이를 간과한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환자 맞춤형 스텐트를 일일이 허가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즉각 해당 스텐트의 판매중지와 회수 조치를 명했고, 언론과 방송은 무허가 의료기기로 시술했다고 떠들어댔다. 식약처는 자신들의 경직된 규제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회사에 돌린 것이다. 결국 환자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환자맞춤형 스텐트는 물 건너갔다. 각 나라마다 자국의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조금씩 있다. 제 아무리 환자 중심의 FDA일지라도 이런 모습은 있다. 예를 들어 FDA는 유럽이 앨러간의 인공유방에 대해 허가를 취소할 때 비교적 충분한 안전성 위해의 증거가 있었음에도 즉각 취소하지 않았다. 선형가돌리늄 제제를 유럽은 취소했지만 FDA는 취소하지 않았는데 해당 제제는 대부분 미국 회사의 제품이다. 물론 이런 모습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품목 허가 취소가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좀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것이다. 해외규제기관은 허가도 매우 어렵고, 허가취소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허가도, 허가취소도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데이터 조작은 매우 심각한 것이며, 이에 대한 응당의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허가취소를 하려면 환자의 안전 및 치료효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 '호빗'에서 간달프는 빌보에게 스팅이라는 검을 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 검을 사용해야 할 때 다음을 기억해라. 진정한 용기란 생명을 빼앗을 때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살릴 때를 아는 것이라는 걸'. 식약처는 허가와 허가 취소에 대해 모두 무소불위의 검을 쥐고 있다. 부디 그 검을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
비대면진료와 관련해 향후 벌어질 법률적 쟁점 2020-05-25 05:45:50
2002년 의료법이 개정되며 원격의료 허용에 관한 제34조가 도입될 때만 해도 세상이 크게 바뀔 줄만 알았다. 원격의료를 시작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기 시작하면 수도권 대형종합병원에 모든 처방권이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 등 많은 우려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2010년 18대 국회에 원격 진료와 원격 처방 허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시도되었던 개정안도 자동 폐기되었다. 원격의료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국민적 논의가 이루어진 사실이 없고, 사실 대부분의 의사와 국민들은 막연히 “영리병원은 나쁘다”, “뭔가 꼼수가 있는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비대면진료 필요성 그런데 2020년에 이르러 사회적 거리두기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으면서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다시금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분위기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뀌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해 많은 예측이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점은 사람들끼리의 대면접촉이 없이 경제활동이 가능한 ‘언택트(Untact · 비대면) 산업’의 발전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비대면진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심지어 일부 개원의들도 비대면진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시대적 흐름을 인정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대면진료와 관련하여 법률적으로는 어떤 것들이 쟁점이 될 수 있을까? 먼저 우리 의료법 제17조의 2는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대면진료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직접 진찰의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위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은 아니다(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두50014 판결)” 라거나, “죄형법정주의 원칙, 특히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상 전화 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판결)”고 하여 그 기준을 제시해 왔다. 원격의료 본격화 시 언택트 관련된 이웃법도 정비해야 하지만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의료인이 먼 곳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직접 진료할 수 있는 비대면진료가 혀용되고, 응급환자나 도서ㆍ벽지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의사가 영상통신 등을 활용하여 직접 진찰ㆍ처방 등의 의료행위가 허용될 것으로 예상된다(18대 국회에서 폐기된 의료법 개정안, 의안번호 1808132호 참고). 즉, 직접 진찰의 의미가 컴퓨터ㆍ영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영상진단, 즉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료는 원격으로 받더라도, 환자는 약을 받기 위해 약국에 가서 약사를 만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사법상 외래진료의 의약품의 조제는 약사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택트(Untact · 비대면) 산업 발전을 1차적인 목적으로 둔다면, 원격진료를 전면 도입하면서 약사법 규정도 함께 정비되어야 할 것인데, 이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지 아직은 논의가 부족하다. 다음으로 의료사고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격지 의사가 실수를 했고, 통신 장비에도 문제가 있었으며, 현지 의사는 이를 시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았고, 환자는 원격지 의사의 지시사항을 위반하여 증상이 악화된 경우를 가정해 본다면,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부담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행법에서는 원격의료를 하는 자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지되, 현지의 의사가 우선적인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의료법 제34조 제3항, 제4항), 비대면 진료가 본격화된다면 이는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원격지 의사의 책임범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대면진료가 꼭 필요치 않는 진료선에서 원격의료 추진 Teladoc이 태동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서비스 공급량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미국처럼 급격한 비대면 의료 산업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적절히 분업되어 있는 1, 2, 3차 의료기관의 각 기능이 뒤바뀌거나 산업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수가 산정 등에 있어서도 적정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법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책적인 결정과 협상의 분야일 것이지만, 원격의료의 본격 도입을 위해 넘어야 할 가능 큰 산이기도 하다. 다만, 당장 나에게 큰 병이 생긴다면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원격지에서 관리하는 수술도구로 수술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환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일단 첫 번째는 의사를 만나서 내 증상을 보여주고 직접 치료를 받은 후, 그 이후로 대면진료가 꼭 필요치 않은 의약품 처방 등에서 원격진료를 고려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주 급격하고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 보다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한다는 정도의 의미에서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어떤 방향이 되었건, 제도의 변경에는 법해석상의 혼란이 뒤따르기 마련이므로 위 몇 가지 쟁점 정도는 염두에 두고 미래에 대비하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일상 2020-05-21 05:45:50
2020년 한해는 코로나19가 대단원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세상의 모든 이슈들을 덮어버렸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염병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출, 퇴근길 교통정체가 사라진 풍경도, 북적거리던 거리가 갑자기 고요해진 것도, 지나가면서 쳐다본 극장 골목의 적막함도, 마스크 위로 보이는 불안하고도 의심스런 눈빛들이 낯설었던 것도 잠시일 뿐,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평생 이런 광경을 얼마나 만날까 싶을 정도의 상황을 병, 의원도 직면해야 했다. 병원 앞에 늘어선 선별진료소 천막과 컨테이너박스는 의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병, 의원은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면서 산더미 같은 폭설이 내리던 날의 조용한 진료실처럼 인적 없는 하루를 매일 매일 보내게 되었다. 환자가 없어 힘들어하면서도 목이 아프면서 기침하거나, 냄새를 못 맡거나, 목이 아프면서 열감이 있는 환자가 외래로 들어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 때면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일인 원장이 진료하는 의원에서 확진환자를 진료한다면 대부분 2주간의 자가격리와 병원폐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확진자의 이동 동선에 병원 이름이 공개되는 순간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지역사회에서는 두고두고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열심히 홍보하는 대로 의심 환자가 선별진료소로 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에 좌절감도 느꼈다. 필자는 이비인후과 단독 개원이다 보니 내원하는 환자의 대부분은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담당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병원과 병원식구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여기에 대구시의사회의 다급한 소식들을 들을 때면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힘든 맘을 다독거리기 어려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초유의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시기에 고양시에서는 고양시의사회가 참여한 ‘고양안심카’라는 드라이브스루 선별검사소가 2월 26일에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심이 극을 달하던 초기 시절에 심욱섭 고양시 의사회장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덧붙여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역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의료진들도 기존의 검사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소독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문진과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이때 자동차를 이용한 드라이브스루 문진과 검사는 주저주저하는 지역사회와 의료진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고, 이를 통해서 조기 발견을 용이하게 함으로서 확산 위험성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동네의원으로 갈 수 있는 환자들을 고양안심카 선별검사소로 유도함으로서 의사회원들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만연한 두려움을 줄이면서 건강한 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기여를 하게 되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 되었지만, 73분의 회원들이 본인 병원도 문 닫고 선별진료소를 지켜줌으로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4월 20일까지 54일간 총 3,5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하면서 서로간의 동료의식도 고취할 수 있었고, 의사가 되어서 지역사회에 가슴 뭉클할만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감동이었다. 대구로 내려가지 못한 미안함도 한편으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역 최초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감염병으로 국가재난이 생길 경우에 일선에서 효율적이면서도 큰 가치창출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가의료정책을 만드는데 비중을 두고 고려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더불어 소중한 가치를 동료들과 함께 지켜냈다는 믿음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값진 소득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더 큰 위기상황에서도 동료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덕분으로 고양안심카 드라이브스루는 중단되었지만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언제든지 다시 열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지금도 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소원이건데 ‘안심카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가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과거 코로나19가 있기 전의 일상생활로 하루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소망들이 다들 있다. 하지만 돌아간다고 한들 정말로 이전의 사회로 완벽하게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익숙해졌고, 호흡기 증상이 있어도 집에서 3일에서 4일간 경과를 지켜보다가 병원을 방문하는 일도 생활 속에 자리잡아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방문하던 일들이 줄어든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기에 과거 북적거리던 병원 풍경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주 만나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어딘가 많이 아프다고 걱정이 많은 할머니의 근심어린 눈빛도 조금은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앞으로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모임들은 많이 줄어들 것 같고, 모임 뒤풀이로 빠지지 않던 잔 돌림도 많이 없어질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법한 큰 변화의 시대 한 가운데에서 ‘나는, 우리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하는 추억을 안주거리 삼아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이 시기가 어떤 의료와 사회변화를 결론적으로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힘든 시간에 가족, 따뜻한 집 그리고 건강한 병원과 병원 식구들이 있어서 하늘에 감사하게 된다. 그동안 인류는 이종의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균에 대한 감염이 발생하였고, 생존위험의 역경을 뚫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험난한 과정을 겪을 때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과학 문명들을 꽃피워왔고 한 단계 도약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얻게 되는 과학의 발전은 많은 질병들을 해결하는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초진 환자에 전화처방은 위법 소지 있다는 대법원 2020-05-20 12:00:55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원격의료'가 '비대면 의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적지 않은 수의 의료인들이 전화 통화로 환자를 진찰한 경우에도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의료기관에 방문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전화 통화 내용을 기초로 처방전을 작성하여 교부할 수 있도록 올 초에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사태라는 특별한 상황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의료법에 따른 전화 통화 진찰의 원칙적인 내용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먼저 관련 조문인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법원(2010도1388)은 2013년 "조문 중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을 하였다면 직접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판결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모든 전화 통화 진찰이 가능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2014도9607)은 최근 "현대 의학 측면에서 보아 신뢰할만한 환자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 졌다고 볼 수 있고, 그러한 행위가 전화 통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위 대법원 판결은 의사인 피고인이 전화 통화만으로 환자에게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한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의사가 전화 통화 이전에 환자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전화 통화 당시 환자의 특성 등에 대해 알고 있지도 않았던 점을 내세웠다. 위와 같은 피고인의 행위는 신뢰할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환자에 대하여 진찰을 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선 의료현장의 의료인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화 진찰 허용은 한시적이란 점, 원칙적으로 전화 통화 진찰을 통한 처방전 작성·교부는 그 이전에 환자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있어서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구분해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원격의료, 쇠귀에 경(經) 읽기 2020-05-19 09:53:59
최근 청와대 사회수석의 원격의료 검토 발언을 두고 정부·여당과 의료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과거 정책에 대한 기조 변경이 불가피하다 포장하고 있지만, 원격의료 시행 추진이 단순히 환자 안전만은 아니리라는 것이 의료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행위는 현행 의료법상 금지되어 있다. 또한 과거 의료 영리화, 민영화 등의 사유로 사회시민단체의 반대와 원격의료의 효율성, 환자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원격의료 시행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도화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의사-환자 간 안전을 빌미로 원격의료 시행에 긍정적으로 입장을 선회할 조짐을 보인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정보통신망을 구축한 대표적인 나라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축하고, 산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 없이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문제와 욕구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발달된 ICT 기술을 활용해 다가올 4차 산업을 선도하는 매개체로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원격의료가 산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원격의료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우선해서 검증하고, 환자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다. 만약 원격의료 제도 시행에 미흡한 점이 있음에도 정부가 서둘러 강행하다 불러올 불행에 대해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경제와 산업이 우선이다'는 정부의 판단을 과연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동안 의료계는 지속해서 원격의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행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국민을 위해 도입하려는 새로운 제도 추진에 국민과 의료인이 배제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경제논리를 내세워 접근한다면, 원격의료는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보다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 집단의 반복적인 문제 제기에 눈감고 원격의료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려는 정부의 안이한 판단은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에 큰 화(禍)가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혀둔다. 비록 이런 노력이 쇠귀에 경을 읽는 행동이라도 국민 건강 문제에 대한 의료계의 활동은 지속해야 한다.
연 품목취하 의약품 2600여개…공동생동의 민낯 2020-05-18 05:45:50
필자는 제네릭의약품의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을 시행하는 임상시험센터에서 약 3년간 일한 적이 있다. 그 때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제네릭 상황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래 2가지는 FDA, EMA 등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부끄러운 제도들이었다. 첫번째, 우리나라의 생동성 시험은 약사법에 명시된 GCP(임상시험 관리규정)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식약처 고시인 생물학적동등성 시험 관리기준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었다. 그 규정 어디에도 시험대상자의 안전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해외도 비슷한가 살펴보니 FDA, EMA, PMDA는 모두 GCP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생동성 시험도 엄연히 건강한 자원자에게 독성이 있는 약물을 투여하는 임상1상 시험으로서 GCP에 의해 관리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제네릭 의약품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험대상자 안전이 유기되고 있었다. 이에 필자는 GCP 수준으로 시험대상자를 관리하기 위해 임상시험센터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식약처에도 이를 제안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생동성 시험도 GCP 규정에 통합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서류는 바뀌었겠지만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GCP 마인드로 바뀌었을지는 의문스럽다. 너무나 잘못된 마인드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두번째, 우리나라에만 독특하게 공동생동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제약회사가 자기 회사가 판매하는 약을 스스로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떼다가 판매만 하는 것이다. 본래 우리나라도 제네릭을 2개만 허용했는데, 2011년 관련 규정이 폐지되면서 무제한 공동생동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 결과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제네릭 의약품의 87%가 위탁생산을 하고 있다. 필자가 알기에 우유 회사도 자기들이 관리하지 않는 목장에서 짠 우유를 떼다가 팔지 않는다. 과자 회사도 그렇다. 초코파이만 해도 원조 제품 외는 몇 개 되지 않고, 그것도 다 각각 자기 회사의 이름을 걸고 만든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제네릭 의약품의 공동생동이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품질 문제가 되었던 발사르탄은 약 200여개, 라니티딘은 약 300여개의 제네릭이 있었다. 이 많은 약들 중에서 어떻게 의사가 골라내어 처방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홍보와 더 나아가 불법 리베이트를 암암리에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번에 공동생동 규제가 폐지된다고 하여 늦었지만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식약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 공장에서 만든 제네릭 의약품은 원샷으로 심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과연 공동생동 폐지 정책을 주관한 정부부처인지 의심스럽다. 이것이 신약강국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인가? 공동생동 제도로 인해 우리나라의 제약업은 그 수준이 보따리 장사 수준으로 낮아졌다. 한 공장에서 만든 제네릭을 팔다가 장사가 잘 안되면 다른 공장에서 다른 제네릭을 가져와서 판다. 이런 식으로 하니 작년에 발표된 식약처의 의약품 품목허가갱신제 데이터에 따르면 1년 동안 갱신이 안된, 즉 품목을 취하한 의약품만 2,686개나 된다.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데이터이다. 또한 신약 개발에 사활을 걸고 다국적제약회사들조차 M&A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소형 제약회사가 대부분이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식약처와 규제개혁위원회는 공동생동제도를 폐지하기 바란다. 의약품이 초코파이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공공의료' 유감 2020-05-18 05:45:50
선거철 마다 그리고 정권마다 맞이하는 오래된 반복되는 동일 주제, 그리고 야당 시절에 반대하다 여당이 되면 자동 찬성으로 변환되는 알다가도 모를 숨바꼭질 주제인 '의대 신설'이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말썽 많았던 서남의대 폐교 이후 아직 최소 한 개의 의과대학은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근거를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서남대 폐교까지 의사 전문직 단체와 정부는 10년 이상의 지리한 세월을 질 낮은 대학의 처리 문제로 줄다리기에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부실한 학사운영으로 도저히 의과대학 같지 않은 '가짜 의과대학'을 처리하고 학생에게 교육피해가 없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보고 싶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부 조직의 부패, 소유주와 결탁의 현상은 사법부까지 침범된 흔적도 보았었다. 여, 야 의욕적인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 폐교 절차의 동력을 받았다가도 여, 야 국회의원, 교육부, 복지부 등 다양한 정부부서와 지역주민, 부패를 주도한 소유주 간의 이해갈등의 결과 결국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매듭을 지었었다. 그러나 이제 정권의 교체와 선거를 둘러싼 공약 이행의 문제는 다시금 신설의대를 논의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타당성 검증 없이 반복되는 의대 증원 및 신설 선심성 지역주민 달래기 고정 메뉴 20대 국회 회기 말 마지막으로 상정된 국립공공의료대학은 국회에서 논의되었으나 끝내 부결되었다. 여러 가지 정황이 국립공공의료대학의 설립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국립공공의료대학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설립되어서는 안 된다. 적절한 근거가 필요하고 설립 후의 문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국립공공의료대학의 설립 목적이 공공의료의 강화인데 공공의료가 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설왕설래 하고 있다. 공공(公共) 이라는 단어가 의료와 결합하며 생긴 현상인데 같은 한자 문화권인 타이완과 일본에서도 공공의료란 단어는 매우 이해하기 힘들고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는 것이 사실이다. 타이완과 일본의 의학자에게 문의한 결과 ‘공공의료’란 단어는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고 혹시 ‘공중보건의료’가 아닌지 오히려 우리에게 반문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공공의료에 관한 용어가 의약분업 투쟁이후 슬며시 법체계에 들어왔다. 의사들도 당시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이해 당사자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처리한 것은 서남대 사태와도 유사하다. 서남대의 문제로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의학계 모두 한동안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의학계와는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시행령을 제정하여 41개 대학 모두 평가인증을 받고 난 후에 평가인증 결과를 반영하는 조치가 가능하게 하여 실제로 서남대가 평가인증 거부를 하면 법 자체가 무력화 되도록 시행령을 만들었었다. 평가인증 자체를 누군가의 계략에 의하여 매우 효과적으로 무력화 시킨 것이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의학교육 당사자나 의학계 누구와도 상의를 하지 않고 슬며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공공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렇게 법률용어로 의학계에 침투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 공공하지 않은 공공 개념 정부 입맛대로 채색 의료에 강제 접목 의철학 고찰 부재 놀랍게도 '공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은 이웃나라 일본인 학자가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공공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중국 사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본래 동사로 사용되었고 모두가 같이하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공공하다’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천상천하 공공하다’라는 구절은 법을 지킬 때 임금이나 백성이나 모두 같이 지킨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한다. 일본인 학자의 발표에 의하면 공공이라는 단어는 한, 중, 일 삼국 중에서 유독 우리나라 특히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여 월등히 역사적 기록물에 많이 등장하는데 조선실록이 이를 대표하고 있다. 추측해 본다면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군주 외에 유림, 양반계급, 신하 들 모두의 의견을 충족하여 같이 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조선시대의 공공이라는 용어도 중국의 원문과 다를 바 없이 모두가 같이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동사였지 명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명확치 않으나 조선의 멸망기인 순종부터 이후 공공은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결정적 계기는 일본 천황이 대한제국을 병합할 때 천황이 내린 문서에 공공의 안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대한제국이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잘못하니 천황이 조선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병합한다는 내용의 용례를 남긴 것이다. 이런 용례 이후 현재 일본에서 받아들이는 공공의 의미도 이와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공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과거 매우 민주적인 동사적 사용 개념에서 일제의 강점기시점 부터 매우 독재적인 그림자를 보여주는 명사적 사용법으로 변화된 것이다. 공공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에 아직 대답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군사독재 정권시절 국민을 위한다는 시혜의 차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료가 공공재인지 상업재인지 개념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강제적 의료보험 제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 의료의 철학적 고찰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빠른 성장에 따른 폭발한 의료수요의 충족만으로도 버거워 깊은 성찰을 요하는 개념 정리는 그대로 지나간 것이다. 반면에 공공기관이라는 용어는 국, 공립 기관을 의미하며 사적기관이나 민간이 설립한 기관과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공공기관은 비교적 공공의료보다 우리에게 의미전달이 더 명확하여 보인다. 즉, 국공립 혹은 정부나 지자체 관련 기관임을 의미한다 하여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공의료라는 단어는 의료가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려 보지 않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공공의료 역할 정체성 개념정립 없는 상태에서 국공립, 민간 단순 경계선만 구분 공공의료는 국, 공립 의료기관에 의한 의료라고 보기에는 민간의료 기관과의 차별성이 너무 약해 보인다. 의료보험 자체가 독점 공보험이고 공공이던 민간이던 정부가 독점하는 의료보험의 구매자로서 의료기관의 역할은 공공이던 민간이던 매우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민간의료라는 대비되는 단어는 매우 어울리지 않고 사용되고도 있지 않으나 억지로 만들어 볼 수 있는 단어이기는 하다. 세계보건기구 등 공중보건이나 예방의학에서는 민간영역 보다는 private sector가 public sector와 대비되는 단어로 등장한다. 최근 의료정책연구소의 정책과제로 민간병원과 소위 공공병원이라는 국, 공립의료기관과 공공지수를 설정하여 비교하여 본 결과 공공병원의 공공성은 약간 높을 뿐이다. 국가재정이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공공병원의 역할과 공공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료라는 단어를 쓰기 힘든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공자는 일찍이 정명론(正名論)을 주창하였고 정명론이란,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이다. 즉 명분을 바로 세우려는 주장을 이른다. “명분이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 올바르지 못하고, 말이 올바르지 못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라는 논리인데 공공의료라는 이름이 분명치 않은 이유로 실체파악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인데 여기에 공공이라는 이름이 변화하여 독재나 식민체제하 국민에 대한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도입의 역사는 100년이 넘어 많은 세월이 지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학의 변천과 더불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많은 의학 관련 단어가 처음부터 정립되어 내려왔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류이다. 학문 명칭 하나도 근대사를 거치면서 명칭간의 경쟁과 철학적 고증과 논증 그리고 학계의 합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내려온 것이다. 특히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철학적 논증의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 천황이 물려준 공공의 안녕을 위한 의료가 공공의료인지도 모를 일인데 알고 나니 무슨 영문인지 사용하기 꺼려지는 단어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반일 감정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도 민주화를 떠들어 대는 운동권 정권에서 민주적이 아닌 독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불쌍한 수동적 백성의 개념을 위한 시혜적인 의료를 위한 명칭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 도입 1세기 '의료개념' 아직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않아 정제시기 필요 한, 중, 일을 주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혹자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이 있다면 법가와 유교라고 한다. 유교는 칼의 양날처럼 사용되어 본래의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보다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관리에 의하여 군주와 친족을 위한 악성 독재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왔다. 유교 안에 현대의 민주주의에도 부합될 정신도 그리고 미래사회에 적용될 도덕적이고 교훈적 내용도 많으나 유교는 기나긴 시대적 변천과정에서 공자와 맹자는 하지도 않은 말을 수없이 덧붙이며 결국 독재정치에 익숙한 국민으로 순치하였다. 여기에 악성 식민지를 경험하여 내려온 의학과 교육 그리고 의료에도 결국 우리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으나 이미 물들어 버린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프랑스 철학자가 쓰는 ‘facticite’ 로 잘 표현된다. 일본의 근대화로 사무라이 계급이 몰락할 때 지방의 통치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던 이들의 재빠른 변신은 일본의 군인, 공무원, 전문직으로 변신하였다. 일본의 근, 현대 전환기에서 서양식 의사가 된 일본인의 절반이 사무라이 계급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독일 군의관학교에서 파견된 의사에 의하여 설립된 동경의대 출신 교수의 한반도 진출이 결국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초기 역사를 형성하였다는 사실도 시혜적 의료의 형성과 관련이 있음에는 틀림없다. 과거 일본인이 세운 공립병원에서 치료 후 환자들은 천황에게 감사의 글을 바쳐야 했었다. 해외 진료진이 북한에서 개안 수술 후 자신들에게 감사할 줄 알았는데 김정일에게 보내는 충성문과 감사의 글로 대신함을 보며 매우 신기하게 본 것과 비슷하다. 이런 배경에서 도입된 변질된 식민 일본식 서양의학과 의료는 사실은 우리 국민 스스로 자신에 필요한 정당한 이름이나 명칭의 부여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정권과 정권에 충성하는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의대의 변은 취약지 배치, 공공 의료기관 근무, 보건소, 글로벌 리더 등 다양한 이유를 달고 이것을 공공의료로 범주화 하려는 듯하다. 내용을 보면 이질적 요소이기도 하고 신설대학의 이유의 층이 다양하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미션은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공중보건복부지원단(Public Health Service Commissioned Corp)이 하는 임무와 매우 유사한데 미국은 공공의료가 아닌 공중보건서비스로 표현하고 있다. 의대 신증설 경기부양 토목공사 아닌 국가 보건의료 백년대계 큰 사업 "신중해야" 우리는 이미 기존의 40개 의대가 있다. 신설 국립의대를 위 하여는 최소 3000~4000억 원이 소요되고 이 후 국립의료원이 실습병원이 되었을 때 병원자립도도 문제다. 중견 의과대학의료원의 수입이 5000억대에서 2조를 돌파하였다. 현재의 국립의료원 규모를 보면 자생불능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 의과대학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는 데는 약 20년 정도가 소요된다. 현재의 거대 여당의 정권이 강하게 추진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대안제시로써 기존 40개 의과대학으로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아 보인다. 신설 공공의료대학은 착한 여당이 불쌍한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지역구 공약사항의 실천을 위한 것인데 그럴 예산이 있다면 의료인 전체의 질적 향상을 위한 의료인 교육에 투자되는 것이 훨씬 합당한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는 이름의 공공의료를 위한 대학의 신설을 막아야 할 정권이 서둘러 추진하는 것을 보며 정치가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근거에 의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는 이미 어쩔 수 없다는 세상이 되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