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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전자서명이냐" 의원 비용전가 '부글부글'

정희석
발행날짜: 2013-04-18 06:55:36

"지원 없이 의무만 강요" 성토…복지부 "공감하지만 예산이…"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창동제일의원. 내과ㆍ정형외과ㆍ영상의학과 7명의 전문의들이 있는 이곳의 하루 평균 의무기록 차트는 최소 600건에서 많게는 700건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발생하는 서류가 워낙 많다보니 종이차트 대신 전자차트를 이용해 전자의무기록을 작성하고 이를 데이터 서버에 매일 백업하는 방식으로 환자 의무기록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서명법에 따른 전자서명이 기재되지 않은 전자문서는 전자의무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전자차트에서 제공하는 프린터 양식으로 한부씩 출력해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상황.

이렇게 출력된 환자 의무기록은 한 달 기준 사과박스 1개 분량이 나올 정도다.

창동제일의원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창고에 보관 중인 진료기록부.
창동제일의원 정상묵 계장은 "전자차트에서 출력한 환자 의무기록부 뿐만 아니라 보관ㆍ관리해야 할 각종 서류들도 많기 때문에 건물 창고를 임대해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그나마 우리는 창고와 행정인력이 있어서 환자 진료기록 보관이 용이하지만 다른 의원들의 경우 공간 제약과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의무기록 보관ㆍ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원의 전자서명 사용은 현지조사와 환자와의 의료소송과 관련된 피해를 예방하는 동시에 각종 종이서류들을 대체해 환자 의무기록 보관ㆍ관리의 어려움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에서는 "진료기록부 등을 전자서명법에 따른 전자서명이 기재된 전자의무기록으로 작성ㆍ보관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용부담 불만…"의무만 있고 지원은 없다"

최근 법원이 전자서명이 기재되지 않은 전자차트 전자의무기록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전자서명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그동안 전자차트 기능을 제공하지 않았던 전자차트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국내 의원급 전자차트시장 점유율 1위 유비케어가 최근 의원에서 전자서명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전자서명 프로그램을 공식 출시한 것.

의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입비 22만원ㆍ월 사용료 2만 2000원을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전자서명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출시됐지만 개원가에서 전자서명 사용이 단기간 안에 활성화 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경영 악화로 어려운데 전자서명 프로그램까지 도입해야 하는 비용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

여기에 정부에 대한 불만도 전자서명 사용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전자서명 프로그램 도입을 의무화 해놓고 아무런 지원 없이 비용부담만 개원가에 전가시키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한 내과 개원의는 "정부가 전자의무기록에 전자서명을 기재토록 법제화했으면 그에 따른 표준화된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어 "아무런 정부 지원 없이 의원들만 추가비용을 들여 전자서명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보건의료정책 담당자는 "정부도 의원에서 전자서명을 이용하고 싶어도 비용부담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의원에 지원을 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예산 제약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전자서명 이용은 현지조사나 의료분쟁이 아니더라도 환자 개인정보 보호나 의료기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선택이 아닌 반드시 필요한 현실이 돼버렸다.

개원가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기관, 환자 모두를 위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비용부담은 의사들에게만 전가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전자서명이 기재되지 않은 전자의무기록으로 진료기록이 보관ㆍ관리된다면 그 피해는 의사는 물론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전자차트업계, 개원가 모두가 전자서명 사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고통분담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