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영업사원의 비애|
혹자는 우리를 '약장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떳떳했다. 나 스스로 타 제약사와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제약계 부동의 1위 회사 동아제약 영업사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요즘 흔들린다. 고객인 의사들이 도통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경 터진 리베이트 사건 이후 생겨난 현상인데 고객이 만나주지 않는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직업 자체에 회의감마저 들곤 한다.
처방액이 급감하고 있다. 벌써 6개월째다. 즐겨보는 모 전문지에 따르면 우리 회사 월 처방액이 100억원 안팎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1년으로 따지면 1200억원, 웬만한 중견 제약사 1년 매출액에 달한다.
사실일까. 구체적인 처방액 감소 수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맞다. 팀 실적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점은 어디서 처방액이 떨어지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같은 개원가 영업사원들은 거래처마다 월 처방내역서를 받아와 실적 집계를 한다. 그리고 영업사원 주 업무인 처방 증대 및 유지를 위해 계획을 짠다. '처방이 줄어든 곳은 방문 횟수를 늘리자'. 대개 이런 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아제약 영업사원'이라면 통 만나주질 않는다. 당연히 거래내역서도 받지 못한다. 실적이 떨어지는데 어느 지역 어느 의원에서 처방이 줄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답답함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실적이 떨어지니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겹친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 먼저 회사에서 실적 압박이 시작됐다. 뻔히 돌아가는 사정을 알면서 이러니 야속하기만 하다.
내부는 물론 외부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바로 경쟁사의 도 넘은 영업 방식이다. 이때다 싶어 '동아약 자사약으로 바꾸기' 007 작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모 제약사가 적극적인데 우리 약과 성분이 같은 약 리스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통째로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영업하면 곤란하다.
끝나지 않는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 재판도 우리에게는 큰 악재다.
잊을만하면 여기저기(언론)서 기억을 되살려준다. 최근에는 내부고발자가 재판장에서 증언을 하면서 회사 치부를 낱낱히 공개했다. 엎친데 덮친격이다.
여기에 의사협회 등의 반 동아제약 정서는 우리를 더욱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에게 나쁜 감정이 없던 의사들도 동료들의 행동에 무심코 동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신제품을 출시해도 런천 심포지엄 등의 행사도 못 열고 있다.
동아제약 영업만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답답한 적은 처음이다. 앞 뒤가 꽉 막혔다.
이렇다 보니 요즘에는 정부가 제약산업을 죽이기로 작정한 거 아닌가 하는 별 생각이 다 든다.
리베이트는 분명 잘못했다. 하지만 우수한 의약품 공급과 의료단체 후원 등 동아제약이 사회에 공헌한 부분도 많다. 이런 점은 묵과하고 너무 리베이트라는 단죄에 벼랑 끝에 내모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답답하지만 나는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결정권은 절대적인 '갑'인 의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도 일련의 안 좋은 상황들이 하루 빨리 정리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