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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 '폭력' 언제까지 방치할건가

허대석 교수
발행날짜: 2013-08-26 05:55:33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최근 의사들이 환자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된 동영상들이 널리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을 경악케 하고 있다. 환자상태가 나빠지면 보호자가 의사의 멱살을 잡고 '살려내라'며 의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드라마에 당연한 듯 방영되고, 환자 폭력이 무서우면 의사를 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는 환자단체 대표도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디부터 답을 찾아야할지 막막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9년 보고서에 의하면, 의사는 68%, 간호사는 74%가 "환자 측으로부터 폭력(욕설·위협 등 포함)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맞은 적이 있었다"고 답한 사람도 10%를 넘었다. '폭력에 방치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로, 운동선수, 외국인 근로자, 의료인 등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2년간 의료인 3명이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사건을 계기로 2012년 12월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자행되는 폭행 및 협박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12월 3일 발의하자,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이유는 1)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2) 이미 의사를 폭행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가중처벌하는 다수의 법률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3) 반의사불벌죄도 아니고 형량도 과도하게 높아서 형벌 체계상 타 법률과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4) 국민 정서상 '의사 특권법'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개정안 취지의 본질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받아야 할 의료현장이 폭력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방지해서 궁극적으로는 다른 환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인데, 마치 의사만을 일방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특권법을 제정하려는 것처럼 곡해하여 오도하고 있다.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환자, 보호자, 의료인 누구나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만약, 의료인이 환자나 보호자를 폭행했다면 이 또한 가중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에 가중처벌을 하는 법이 제정된 이유는 운전자와 가해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차량에 타고 있는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의료현장도 마찬가지다. '진료중인 의료인'을 폭행해서 진료를 못하게 하면, 의료인 뿐 아니라 진료 대기 중인 다른 환자들의 안전도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응급실이나 정신과 등에서 의료인(특히, 간호사)에 대한 폭력사건으로 다른 환자까지 피해를 입는 사례가 증가하자, 30개주에서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에 폭력을 행사한 자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적용하고 있고, 다른 주들도 입법절차가 진행중이다 (2012년 6월 기준).

현재 응급의료에만 한정되어 폭력에 대해 가중처벌이 가능할 뿐, 다른 의료행위에서는 아무런 규정도 없다. 게다가 경찰들이 주취자를 병원 응급실에 내려놓고 가는 일이 빈번하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의자로 내려치지만 대부분 훈방이나 벌금형을 받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 환자 폭력이 무서우면 의사를 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환자단체 대표는 간호사에게는 폭력이 무서우면 응급실에서 일하지 말라고 하고, 여의사에게는 힘없는 여자가 왜 의사가 되었냐고 할 것인가? 또,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은 '운전기사 특권법'이며 '술 마시고 경찰관에 행패부리면 1년 이상 징역'은 경찰 특권법인가?

의사만 보호하는 특별법이라는 억지 논리가 개정안의 발목을 잡는다면, 의료인이 환자나 보호자를 폭행하면 가중처벌하는 조항도 삽입하면 된다. 의료 현장에 있는 모든 국민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한 법안을 시민단체가 나서서 막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의료현장의 '폭력'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