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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배달사고, 누가 입증해야 하나

최승만 변호사
발행날짜: 2013-08-19 06:30:41

최승만(법무법인 가교) 변호사









최근 보건복지부는 제약사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인정한 것에 따라 작성된 범죄일람표(범죄의 일시, 장소, 대상 등에 대해 시간별로 작성한 표)에 기재되어 있는 명단에 따라 300만원 이상 리베이트 수수 의·약사 1000여명에 대해 2개월의 의사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올 하반기에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행정처분 대상자의 상당수가 리베이트 수수사실을 부인하고 보건복지부도 배달사고 가능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행정처분 대상자가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언론 보도와 같이 올 하반기에 행정처분을 내릴 계획이 사실이라면, 의료계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예고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와 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그 근거로 든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행정처분 대상자가 제출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행정처분의 기본 의무를 방기한 것이며,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처사이다.

둘째, 다른 직역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이다.

셋째,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행정처분 결과에 천여명의 의·약사가 당장 생업을 중단해야 하는 사안이며, 정부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도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행정처분 대상자가 제출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행정소송에 있어서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당해 행정처분의 적법성에 관하여는 당해 처분청이 이를 주장·입증하여야 하는 것이 확립된 판례인데,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위와 같은 판례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행정소송에서 실질적으로 처분의 위법성을 주장하는 원고가 처분의 위법성을 입증하여야 승소하는 경우가 많은 실무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처분의 당위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행정청인 보건복지부에게 있으며, 위와 같은 재판 실무가 마치 원칙인 것처럼 받아들여 그에 따른 입장을 밝히는 것은 행정청의 공적 견해 표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범죄일람표 기재 내용을 신뢰할 수도 없다.

범죄일람표 작성은 순전히 제약회사 직원들의 진술 또는 장부에 근거한 것이고, 대부분의 해당 의사들은 수사나 형사재판에서 전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리베이트 금액이 경미하여 해당 의사에 대하여 아무런 조사도 없이 해당 의사에게 기소유예처분을 내린 경우 더욱 그러하다).

범죄일람표만을 근거로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은 위와 같은 현 리베이트 수사 및 형사재판 관행을 고려하면 자칫 많은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올 수도 있다.

앞서 본 언론보도에 의하면 보건복지부도 리베이트에 대한 배달사고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는 등 형사사건의 범죄일람표의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셋째, 행정소송 제기는 해당 의사들에게 정신적 고통 및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입장대로라면,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면허정지 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 및 집행정지 신청을 하여야 하는데, 행정청인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는 것이 개인 의사들에게는 많은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해당 의사가 1심에서 승소하더라도 보건복지부가 항소하는 경우 소송 기간을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더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의사가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실체 진실과 상관없이 해당 의사는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법적 관점에서 이번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해 보았다.

물론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행정처분을 할 대상자가 많고 대상자의 대부분이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실제로 범죄일람표의 오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는 범죄일람표에 포함된 해당 의사들에게 일단 행정처분을 하고 억울하면 행정소송을 하라는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행정처분을 내리기 전에 범죄일람표의 오류를 밝힐 방안 등 합리적 해결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