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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엄마가 병원에 바랐던 단 한마디…

박양명
발행날짜: 2014-04-23 06:11:02

환자 샤우팅카페 "의료분쟁조정 병원 동의없이 개시해야"

2014년 1월 23일. 딸아이가 아침부터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몸이 자꾸 가라앉고, 잠이 쏟아진다고 한다.

집근처 병원을 갔다니 큰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서울 S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피검사를 했더니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혈소판 및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았다.

그런데 4시간이 지나서야 RBC수혈을 시작했다. 그것도 딸아이 옆을 지나가던 의사가 수혈을 지시해서 이뤄졌다.

수혈을 시작한지 5분밖에 안지났는데 요추천자 시술을 해야 한다고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왜 코피를 많이 흘렸는지 뇌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란다.

부작용, 합병증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약간 위험할 수 있는 시술이라서 전문의가 와서 한단다.

요추천자는 뇌를 감싸고 있는 경막과 뇌 사이의 공간인 거미막밑에 있는 뇌척수액을 뽑거나 약을 투여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법이다.

예강이 가족은 요추천자를 실시하던 CCTV 자료를 확보해 당시 상황을 설명을 했다.
딸아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3~5명의 의사, 간호사가 딸아이의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해 팔을 누르고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요추천자 검사가 자꾸 실패했다. 40여분만에 5번이나 실패했다. 그 사이 딸아이의 울부짖음도, 움직임도 사라졌다.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2시간이나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딸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그렇게 10살난 내 딸 예강이는 세상을 떠났다.

알고보니 요추천자를 한 의사는 1년차 '레지던트'였다. 1년차 레지던트 2명이 각각 3번, 2번씩 시술을 실패한 것이었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 씨(가운데)는 샤우팅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22일 서울 긱카페아키에서 열린 제10회 환자 샤우팅 카페에서 예강이의 엄마 최윤주 씨가 털어놓은 사연이다.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최 씨 대신 그의 언니와 동생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최 씨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병원의 '인간적인 대우' 였다. 사과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러나 병원측의 대응은 예강이의 가족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예강이의 이모는 "예강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병원 측에 시술 의사들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법무과, 원무과 과장 등 시술과 관계없는 7~8명의 사람만 나왔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병원은 '최선을 다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부검을 하고 법대로 하라'고 했다. 소송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병원의 어처구니 없는 대응에 화가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씨 가족은 병원측의 안내로 의료분쟁조정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유는 단 하나. 예강이가 '왜' 죽었는지를 알고싶어서다.

하지만 병원은 의료분쟁 조정 조차도 거부했다.

최 씨는 "병원에서는 의료진에게 '환자 가족들 만나지 말아라, 절대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 한다더라. 담당의사가 마음속으로는 미안해도 사과는 못할거기 때문에 그냥 가슴에 묻으려고 했다"며 울먹였다.

이어 "수혈을 왜 미뤘는지, 요추천자는 왜그렇게 실패를 했는지 이유를 모른다. 사인도 모른다. 죽음의 원인을 알려면 배를 가르라고 한다"고 병원의 태도를 비난했다.

그는 또 "인간적으로 처우를 했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병원의 태도는 아이를 잃은 부모를 두번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샤우팅카페 자문단 왼쪽부터 권용진 원장, 구영신 변호사, 안기종 대표
최 씨의 사연을 들은 샤우팅카페 자문단은 '의료분쟁조정'에서 병의원 동의가 없어도 조정을 개시할 수 있도록 제도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현재 의료분쟁조정은 반드시 상대방이 동의를 해야 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들은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사고는 치료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날 수도 있다. 환자들은 왜 죽었는지를 듣고 싶은 것인데, 얘기를 안해준다. 중재원에서 감정해서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북부병원 권용진 원장도 "병원과 환자의 관계가 너무 답답하고, 비인간적이다. 조정이라는 게 화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다투는 소송보다는 조정이 더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을 찾는 이유를 생각하면 시스템이 선진화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기종 대표는 "환자들이 대학병원을 찾는 이유는 최고의 의료진에게 좋은 진료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S병원은 JCI 인증까지 받은 병원이다. 레지던트 1년차가 요추천자를 5번 했다가 전부 실패했다. 수련의가 수련을 해야 하고, 한두번의 실패는 환자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환자가 의사를 바꿔달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병원에서 보다 전문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