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장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불과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왜 그랬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관심사병’ 문제가 본 사건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될 것이다. 관심사병은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군 생활을 하는 병사도 많다. 관심사병은 왕따 시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좀 더 관심 갖고 군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의미다. 동일시 할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의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의과대학 유급생과 관심사병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유급제도는 의과대학의 군대문화와 뒤섞여 의대 교육의 목적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오래 전부터 유급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의료인의 무지는 대형 의료사고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유급제도 채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정당화 되어왔다. 따라서 유급의 원인, 예방 대책,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의대생 중 10% 내외가 유급 또는 휴학을 경험하고, 한 번 유급을 경험하면 지속적인 학습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유급과 휴학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고, 변화된 환경에 연착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문제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 교육 특성 상 청소년 대다수가 어린 나이에 본인의 적성과 흥미를 찾고 진로 탐색에 숙고할 여유는 없다. 학문 자체에 대한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의과대학 진학을 결정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어찌되었건 의대 진학은 학생의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자기 책임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학습 의욕이 없거나 방대한 학습량에 지레 포기해 버리는 학생도 있지만, 요령이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도 유급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유급 문제를 자기 절제와 자기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학생만의 것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커리큘럼의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면 밑도 끝도 없을 뿐더러, 마땅한 해결책도 없다. 그보다는,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찾거나,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학생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의과대학 공부를 하다 보면 학생들을 가장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은 방대한 공부량 보다 유급에 대한 공포다. 군대에서 ‘관심사병’이 다른 부대로 전출되어 오면, 계급이 높더라도 그 부대에서 생활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짬 대우를 못 받지 못하고 기수열외 되기 쉽다. 마찬가지로 의과대학에서의 유급은 단순히 1년 더 학교를 다니는 것 이상으로, 낙인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 후배들과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유발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의학에 순수한 흥미를 느끼기 보다는, 그저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은 과열되고 방향성은 상실된 상황에서 우울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발전하기 쉽다.
최근 들어 많은 학교에서 자살 예방과 상담 프로그램이 강화되긴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 년에 몇 번씩 의대생 자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한 해에 수십 명의 의대생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 중에 일부는 자살에 성공했다. 사람 목숨 살리려 공부하다 정작 자기 한 몸 지켜내지 못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 외에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강박적인 자기 비하에 시달린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더욱 힘들 게 하는 건, 유급생이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선입견이다. 누구나 관심사병이 될 수 있듯이, 의대생 중에서 유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급생이라 할지라도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색안경을 벗고 왜곡된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서열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차별적 비교 우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해왔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다행인데, 대부분 그로 인해 불행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행복은 마음 먹기 나름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의연해져도 좋다. 꼴등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의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