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실명제, 수술실 응급의료장비 구비 의무화, 진료실 및 수술실 CCTV 설치 권고 등이 담긴 환자 안전 강화방안을 접한 일선 개원가의 반응이다.
11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환자 안전을 앞세워 수술실 실명제, 소비자 현혹 의료광고 전면금지, 수술실 시설기준 강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수술실 실명제와 수술실 기준 의무화, 수술실 CCTV 설치 권고에 대한 비난이 높다.
"수술실 실명제는 환자 안전사고와 아무런 관계 없다"
수술실 실명제는 수술실 밖에 의료인의 정보를 게재하는 것이다. 의료인 정보는 의료인 면허, 이름, 사진이다. 의사가 '전문의'라고 표시하고자 할 때는 구체적인 진료과목까지 표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성형외과의 이기주의가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 이어지고있다. 성형외과가 아닌 타과 의사가 미용 성형을 내세우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게 타과의 시선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미용성형수술을 하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미용외과학회는 논점에서 벗어난 방안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미용외과학회 관계자는 "작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성형수술 사망사고 2건은 모두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최근에 일어난 중국 환자 의식불명 사고 역시 성형외과 전문의 운영 병원이다. 사망 사고는 시설이나 인프라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응급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대처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미용성형 의료 안전을 위해 심폐소생술에 대한 철저한 교육, 응급 수혈 인프라 구축, 수술실 내 제세동기 및 산소 포화도 감시기 도입 등을 제안했다.
미용성형을 하는 한 외과 전문의도 "수술방 실명제는 환자 사망사고와 전혀 관계없다. 의사 교육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게 급선무"라며 "사회적 통념이 성형수술은 성형외과 의사가 한다고 인식돼 있어서 수술실 실명제로 전문과목까지 표시하는 것은 과별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안은 밥그릇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다. 차라리 의료사고 이력(malpractice history)을 공개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 안전이 목적이라면 의료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이번 환자 안전 대책을 주도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수술실 실명제가 '유령수술' 차단을 위함이지 과별 이기주의로 봐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상담과 수술을 하는 사람이 같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수술실 실명제까지 나온 것 아닌가. 원칙이 환자 안전, 환자 신뢰다. 이번 대책으로 성형시장이 죽을거라는 우려가 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의사회가 총대를 맨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실 장비 의무 "소규모 의원 규제하는 탁상행정"
수술실 장비 의무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는 전신마취를 하는 외과계열 의원 모두에 해당되는 데다가 어길 시에는 행정처분도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입법예고 내용을 보면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병의원은 의료법령상 시설기준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공기정화설비와 불침투질 내부 벽면, 호흡장치 안전관리시설 등이 포함됐다.
여기에 응급상황에 대비한 인공호흡기와 기관 내 삽관 유도장치, 무정전 전원공급장치, 산소포화도 측정 장치, 심전도 측정 장치 등을 갖춰야 한다.
서울 H산부인과 원장은 "수술 건수가 많지 않은 소규모 의원까지 적용 한다는 것 자체가 규제"라며 "전원 자동공급장치가 없지만 우리는 자체적으로 낚시할 때 많이 쓰는 충전식 랜턴을 갖고 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만큼 밝아서 정전되더라도 문제없다. 자동 인공호흡기가 없어도 앰부를 짜면서 산소를 공급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도 "전원 자동공급장치는 구매 후 유지비까지 더하면 한 달에 1000만원씩 들어간다. 수술하다가 전기가 나가서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던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비용대비 효과를 생각해보면 정부가 만든 안은 탁상공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류에 맞지 않는 수술실 시설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외과 전문의는 "수술실 시설 기준은 1952년에 만들어졌다. 그동안 건축법을 비롯해 시스템 자체가 많이 발전했다. 옛날 수술실 기준에 현재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수술실 기준 자체를 검토해야 한다"며 "공청회도 거치고 해서 심도 있게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회적 흐름에 휩쓸려 특정과 중심으로 법안을 졸속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수술실 응급장비 의무화에 대해서는 성형외과의사회도 만족하지는 않고 있다.
의사회 관계자는 "응급장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결국 비용이 들어간다. 비용이 전가 되는면에서 부담스러운 점도 있고 다소 규제처럼 보여서 불합리한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밖에도 의무는 아니지만 입법예고안에 담겨 있는 수술실 및 진료실 CCTV 설치 권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대리수술 방지를 위해 성형외과의사회 중심으로 CCTV 설치를 자율 권고하기로 한 것이 복지부의 생각이다. 대신 환자가 요구했을 때만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H산부인과 원장은 "성형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서 CCTV 설치가 오히려 환자 인권에 문제 될 수 있다. 말로는 동의가 전제라고 하지만 의사가 권하는 상황에서 환자가 완강하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율이 결국엔 규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