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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자지러지게 울던 울음소리와 아기 촉감 그립다"

이창진
발행날짜: 2015-03-02 06:02:26

김숙희 원장, 수필집 '풍경이 있는 진료실 이야기'서 "무지개 쫒지 마라"

"출산 직후 아기 궁둥이를 때릴 때 자지러지던 울음소리와 부드럽고 매끄러웠던 아기의 촉감이 그리웠다."

김숙희 원장.
김숙희 원장(김숙희 산부인과의원, 고려의대 78년졸)은 최근 발간한 개원 24년 인생을 정리한 수필집 '풍경이 있는 진료실 이야기'(도서출판 지누)에서 이같이 회고했다.

김 원장은 대한의학회 홍보이사와 여자의사회 총무이사, 관악구의사회장, 고려의대 교우회 부회장, 의사수필동호회 박달회 정회원,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등 의료계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여걸'이다.

김숙희 원장은 수필집 내용 중 '응답하라 1990, 24년 개원일기'를 통해 산부인과 초짜 의사에서 의료계 리더 층으로 변화한 인생의 굴곡을 진솔하게 기술했다.

김 원장은 1990년 4월 신림역 인근 허름한 건물 2층 전세로 개원했다. 간호조무사 2명과 함께 입원실 5개와 수술실 등 분만 진료를 시작했다.

김 원장은 "접수대 뒤 다양한 약이 든 갈색 병이 옹기종기 진열돼 있었고, 보험 수가 등을 계산하고 수기로 보험 청구를 해야 했다"면서 "직원 관리도 해야 했고, 시설 관리는 물론 입원환자 식단까지 직접 해야 할 일 이었다"고 회상했다.

개원 첫 달, 제왕절개를 포함 분만 3건과 부인과 개복 수술 2건이 전부였다.

하지만 외래와 입원환자가 꾸준히 늘면서 흰 가운과 발 등에는 항상 핏자국이 있었고, 머리는 수술모자로 엉클어졌다.

김 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의사로서 가장 용감하고 겁 없이 환자를 진료했던 시기였다"면서 "하루 이틀 밤을 새워도 다음 날 하루 자면 거뜬히 하루를 버텼다"고 말했다.

개원 7~8년차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시설 좋고 진료비를 싸게 받는 산부인과들이 늘어났고 환자들은 점차 줄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자정 출혈이 심한 임산부 분만 후 처치를 하면서 산모의 심박동보다 자신의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야간 분만을 포기하고 점차 입원실을 폐쇄했다.

김숙희 원장은 "아기 궁둥이를 때릴 때 자지러지게 울던 울음소리와 부드럽고 매끄러웠던 아기 촉감이 그리웠다"면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개복 수술도 분만도 안하고 외래 진료만 한다는 것이 아쉬웠고 미련이 남았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두 번째 위기는 IMF와 의약분업 사태였다.

김 원장은 "경제 불황과 의약분업 실시라는 큰 변화로 의사들은 진료실 밖으로 시야를 넓히게 되고 의식화되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나 또한 인터넷을 통해 변화와 조짐을 예견했고 투쟁에 직접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단체 일로 진료를 소홀히 하기도 했고, 진료시간과 영역도 줄였다"며 "경험이 쌓일수록 겁도 많아져 환자도 선별해서 진료하니 당연히 환자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23년을 한 지역에서 개원을 하니 내원 환자들도 내 나이와 함께 늙어가고, 요즘은 중국교포 환자들이 단골 환자가 되고 있다"고 변화된 환경을 전했다.

김숙희 원장이 최근 발간한 수필집 '풍경이 있는 진료실 이야기' 표지 모습.
그는 그동안 개원 24년을 비교적 평탄하게 잘 해왔다고 자평했다.

김숙희 원장은 "심각한 의료사고도 없었고, 소송이나 실사 당하는 일도 없이 잘 피해왔다. 개원 초 세무사 직원을 사칭한 사기꾼한테 10만원을 뺏기기도 했고, 인터넷에 원장과 직원이 쌀쌀맞다는 험담 글이 올라가기는 했어도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하지도 않았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 원장은 "몸이 아파서 휴진을 한 적도 없었고, 개원 때부터 도와 준 직원이 아직도 함께 일하니 사람 운도 나쁘지 않았다"면서 "병원을 키우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내 그릇 크기가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후배 의사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숙희 원장은 "90년대 개원의는 열심히 했다면 그런대로 할 만 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지금은 운영비 지출은 고공행진을 한 채 줄어들지 않고 수입은 갈수록 줄어든다. 후배 의사들을 보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은 오랜 학업과 수련 기간에 비해 갈수록 자존감도, 직업 만족감도 줄어든다"면서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과거 호황을 아쉬워하고 무지개를 쫓기보다는 작은 성취감에서 만족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끝으로 "1990년, 20년 전 내가 선택한 의사가 되려는 꿈으로 내가 있었고, 그 때 선택한 개원의 길로 지금의 내가 있다"며 "가보지 못할 길, 취하지 못할 것들,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되돌리고 싶지 않은 지금의 나에 대한 애정이 있다"며 과거 선택을 존중하며 미래 삶을 준비하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