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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에 드러난 한국의료 민낯 "전문가 경시한 인재"

이창진
발행날짜: 2015-06-15 12:00:40

의료계, WHO 메르스 평가 공감…"책임지는 정부 없었다"

메르스 사태가 국가재난 형태로 확산되면서 의료기관 감염관리 등 보건의료 정책 전면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강보험 지속성을 명분으로 저수가에서 다인병실 확대와 의료쇼핑 방치 등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계는 국제보건기구(WHO)-한국 메르스 합동평가단의 13일 메르스 결과보고 기자회견을 두고 한국 의료정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WHO-한국 메르스 합동평가단은 13일 일주간의 조사를 마치고 종합평가 결과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사진:보건복지부)
이날 WHO 후쿠다 게이지 사무차장은 "한국 의료진들이 메르스에 익숙치 않았던 것이 메르스 확산 요인이 됐다. 의료진들은 호흡기 질환 증상을 보였을 때 잠재적 원인으로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못했다"며 신종 전염병에 미흡한 방역체계를 꼬집었다.

그는 삼성서울병원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응급실이 너무 붐볐고, 다인병실에 여러 명의 환자들이 지낸 것도 메르스 확산의 일부 요인"이라고 전하고 "여러 군데 의료시설을 돌아다니는 의료쇼핑 관행과 더불어 친구와 가족들이 병원에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문화로 2차 감염이 더 확산됐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정책까지 스며든 한국사회 풍습과 관행이 메르스 사태에 일조했다는 의미다.

WHO는 국제사회 시각을 의식해 에둘러 표현했지만 의료쇼핑과 다인실 확대 모두 한국 의료정책의 자화상이다.

역대 정권은 보장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국민(가입자)에게 건강보험료 인상 폭을 최소화하면서, 비급여 영역을 대폭 축소하는 표를 의식한 선심성 인기주의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역으로 건강보험 곳간 유지를 위해 공급자(의약단체) 희생이 뒤따랐다.

이미 정부가 인정한 원가의 80%에 불과한 저수가인 행위별 수가를 기조로 영상수가 인하에 이어 반값 약가인하, 초음파 급여화 등 공급자 압박 정책을 지속했다.

특히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상급종합병원 일반병실 기준 확대는 메르스 사태와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정부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WHO가 지적한 의료쇼핑도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기관 다방문은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였으나, 메르스 사태를 불러온 건강보험 환자의 의료쇼핑은 국민 편의라는 허상에 묻혀왔다.

메르스 사태로 선심성 정책 중심인 보장성 강화 정책을 뒤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건강보험 정책을 의결하는 최고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 모습.
이미 의료계는 의뢰회송 등 의료전달체계 재확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개선 등 현 정부 국정과제를 최우선으로 할 뿐 나머지 현안은 후순위로 밀렸다.

수 년 전 발표한 '의원은 외래, 병원은 입원' 이라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이 말 뿐인 선언이라는 점은 감사원도 지적한 대목이다.

건강보험에 가입한 국민은 누구나 의원급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 한 장만 있으면 전국 모든 상급종합병원을 횟수와 상관없이 언제든 진료 받을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사례에서 나타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과밀화에 따른 메르스 전파 역시 예견된 인재이다.

의료계와 국회 모두 상급종합병원 예외 경로로 응급(응급실)을 비롯하여 분만, 치과, 장애인 재활치료, 근무자, 혈우병 환자 및 가정의학과를 통한 진료 등 7개 개항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복지부가 그마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문병 문화 개선이다.

지난 6월부터 시행 중인 초기 단계인 포괄간호서비스가 가족과 친구 문병과 간병 문화 개선의 촉매제로 기대받고 있다.

문제는 메르스 사태 이후이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 연기까지 초유의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확산된 메르스 사태의 퇴로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사스와 신종플루, 에볼라 사태 등의 학습효과로 별반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다.

종합병원 A 의사는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모든 것을 바꿀 것처럼 호들갑이나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고 지나간다"면서 "정부가 매번 의료진 헌신과 노력에 감사하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나 사태 종료 후 책임지는 사람도,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무책임한 정부를 꼬집었다.

의료계는 전문가 의견을 경시한 의료정책도 메르스 사태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문형표 장관이 의협과 병협 등 의료계와 구성한 민관합동 대책반 구성 브리핑 모습.(사진:보건복지부)
다른 종합병원 B 의사는 "전문가들이 의료정책과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백날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부터 복지부 사무관까지 보건의료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지적했다.

WHO 평가단의 답변은 한국 의료계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후쿠다 게이지 사무차장은 "이번 상황은 공중보건과 의료부문에서 조금 더 강력한 체제를 갖추기 위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의료진이 하루 24시간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국민적인 이해와 지원 그리고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번 사태도 진정을 시키고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 존중 그리고 의료분야 지원에 대한 중요성을 재차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