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의료사고 피해자였습니다."
'의료법학'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30여년 전, 대한의료법학회 김천수 회장(55,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은 본인이 직접 겪었던 의료사고를 계기로 의료법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30년 전에 그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지난 1984년. 김 회장은 야구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 마지막 날, 의사는 물리치료 처방을 내렸고 김 회장은 물리치료실로 이동했다.
"치료 마지막 날이니까 시원하게 해드릴게요"라는 물리치료사의 말과 함께 트랙션 치료가 시작됐다. 트랙션은 다리와 허리를 묶어 놓고 늘려주는 효과를 내는 의료기기다.
물리치료사는 '세게' 버튼을 누른 후 안전핀도 주지 않고는 자리를 떴다. 문제는 이때 일어났다. 치료 세기가 너무 셌던 것.
다리와 허리가 분리되는 느낌이 들 정도의 고통이 몰려왔고, 김 회장은 소리를 내질렀지만 아무도 물리치료실에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김 회장의 허리는 또 망가졌고 3개월 동안 입원 및 자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물리치료사의 목소리 녹음파일도 있고 증거는 충분했지만 소송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료법과 민법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죠."
"형식적인 문서 설명, 구두 설명의 보조 수단일뿐"
의료사고를 겪은 이듬해 그는 지도교수가 보여준 독일 법학자 에르빈 도이치의 논문 '의사의 치료 계약'에서 설명의 의무 개념을 접했다.
김 회장은 "설명의 의무는 환자의 알 권리, 자기결정권과 연결돼 많이 설명돼 왔지만 분쟁 예방 효과 때문에라도 중요한 개념"이라며 "의료적 부작용이 발생했더라도 의료진의 설명 여부에 따라 환자의 태도는 정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한 제자의 경험담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설명에 대한 '수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0년 전, 대학원의 한 제자가 편도선 제거술을 받았는데 한쪽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의료과실 의혹을 제기했더니 의사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잘 해줬다며 과실이 아니라는 거다. 눈꺼풀을 복원하는 수술도 그 의사와 논의하면서 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명의 의무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형식적인 설명, 즉 문서 설명이 난무하고 있다. 문서 설명은 구두 설명의 수단, 보조가 돼야 한다.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된다"며 "결국은 수가 문제와 이어진다. 설명에 대한 수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