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정부합동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2013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종합병원 정형외과 의사 등 74명을 해외제품설명회 명목으로 방콕·하와이·싱가포르 등으로 초청, 해외관광비 및 골프비용 약 2억4000만 원을 대납한 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 B사를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적발했다.
단순 계산으로 해당 업체는 의사 1인당 평균 324만3243원(2억4000만원÷74명)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셈이다.
만약 이들 의사와 B사에게 내년 시행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방지법’(김영란법)을 가정해 적용하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과 취득한 부당이익 몰수는 물론 최대 1년 이내 자격정지가 내려지는 현행 리베이트 쌍벌제 보다 한층 강화된 처벌을 받는 건 자명해 보인다.
지난 18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제12회 정기 워크숍에서 김&장 법률사무소 박완빈 변호사는 특강으로 부정부패방지법(김영란법)을 소개하고 의료기기업체들의 철저한 대비책 마련을 주문했다.
올해 3월 3일 국회 본회의 통과에 이어 같은 달 27일 공포된 김영란법은 오는 2016년 9월 28일 시행될 예정이다.
박완빈 변호사에 따르면 김영란법은 기존 리베이트 쌍벌제와 비교해 한층 강화된 처벌 규정은 물론 공직자 범위 또한 더욱 확대돼 상당수 의료종사자들이 법 적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제공자 및 수령자는 직무와 관련 없이 1회 100만 원 초과 또는 매 회계연도 합계 300만 원 초과 금품 수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직무와 관련해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 시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금품 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히 김영란법이 규정하는 공직자 범위가 확대돼 의료기기업체 주요 고객인 의사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공립·사립학교가 적용되면서 국공립병원 의사, 지방의료원 및 보건소 의사, 공중보건의사를 비롯해 학교법인이 설립한 병원 교수 및 봉직의사까지 처벌 대상이 확대된 것.
더욱이 공직자 본인은 물론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에도 똑같이 처벌 받는다.
김영란법 제9조 1항은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 등을 제공받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품을 제공한 의료기기업체 역시 처벌 수위가 강화돼 임직원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다만 법인 면책 요건으로는 사전·사후적 조치로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했는지 ▲직원들의 법령 위반 여부를 모니터링 했는지 ▲법령 위반행위가 적발됐을 때 시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 ▲당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위반행위가 발생했을 때 법인의 대응 여부를 따지게 된다.
따라서 업체는 김영란법 관련 규정에 따른 시스템을 갖추고 위법행위 예방 및 적발을 위한 절차를 수행하는 등 상당한 사전·사후 주의 및 감독이 요구된다.
박완빈 변호사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규제는 엄격하나 법 집행은 선별적으로 이뤄질 우려가 있다”며 “수사대상이 되는 기업으로서는 방어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내부고발, 경쟁업체 등의 각종 악의적 제보와 음해성 투서가 예상돼 기업 활동 위축 우려가 있다”며 “청탁금지법 제정에 따라 대관업무 관행 개선, 상시적인 모니터링 등 준법경영시스템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기업체·의사 ‘처벌·면책’ 가상 시나리오
기존 리베이트 쌍벌제 보다 규제 강도가 강화된 김영란법 시행을 가정해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료기기업체는 어떠한 처벌 적용이 가능할까?
박완빈 변호사는 기존 의료기기법, 공정거래법,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과 새롭게 시행되는 김영란법 규정을 적용한 사례를 들어 처벌과 면책 두 가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그가 가정한 사례는 이렇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 회원사 X사는 2016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자사 Y 의료기기를 많이 채택하는 10개 대학병원 소속 총 20명의 의사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한 후 해당 의사들에게 Y제품 및 외과 관련 해외학술대회 참가비용을 지원하거나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
X사는 의사들에게 해외학회 참가비용을 지원함에 있어 협회 공정경쟁규약에 따라 지원하려는 학술대회만을 지정해 협회에 지원금을 제공했다.
이에 협회는 대한외과학회에 참가자 선정을 의뢰해 해당 학회로부터 선정된 참가자 명단을 받아 해당 참가자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2017년 1월 10일부터 3일간 계속되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되는 외과 관련 학술대회 일정을 고려해 4박 5일 동안 시드니에서 머물게 되며, 여기에 소요되는 ▲교통비 ▲등록비 ▲식대 ▲숙박비는 협회 세부운용 기준에 규정된 한도를 준수하고 있으나 의사 1인당 지원되는 금액은 100만 원을 초과했다.
이 사례의 경우 김영란법을 근거로 처벌이 가능할까?
그는 먼저 ‘의사들에 대한 해외학회 참가지원이 적법한지’ 여부를 따졌다.
우선 Y제품 사용량에 따른 지원이 판촉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따졌을 때 X사가 자사제품 사용량에 따라 의사들의 해외학회 참가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그 비용을 지원했기 때문에 판매촉진 목적으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이 분명해 위법에 해당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Y제품 및 외과 관련 학술대회에 외과 관련 시술을 위해 Y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의사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적법하다는 의견이다.
또 X사가 해외학회 참가의사를 직접 선정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볼 때 X사가 의사들과 직접 연락해 참가여부를 결정·통지하고 그 결과를 협회·외과학회에 알려줬기 때문에 협회 규약에 따른 절차는 형식적인 것일 뿐이고 X사가 학술대회 참가의사들을 선정하거나 선정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어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의사들과의 연락은 참가자 수 확인을 통해 지원규모를 확인하려는 것에 불과하고 공정경쟁규약에 규정된 바에 따라 신고절차를 거쳤고, 해당 학술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참가자 선정을 위임받은 외과학회 선정절차도 거쳤기 때문에 적법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X사가 참가의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용을 지원했는지 여부를 놓고도 위법과 적법 주장이 충돌한다.
먼저 위법의 근거로는 형식적으로 X사가 협회 지원금을 기탁하고 협회가 외과학회를 통해 해당 학회 참가의사들에게 참가비용을 지원했지만 실질적으로는 X사가 참가의사에게 직접 학술대회 참석비용을 지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X사는 공정경쟁규약 및 세부운용 기준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협회에게 지원금을 기탁하고 협회가 해당 학술대회 주최 측 위임을 받아 외과학회를 통해 참가비용을 지원했으므로 지원방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적법성을 주장하는 근거다.
박 변호사는 이 사례에서 X사와 의사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따져보았다.
우선 사립대학병원 의사도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졌을 때 처벌 근거는 청탁금지법이 학교법인 임직원을 공직자 범위에 포함시키기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공직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학교법인 임직원이라 해도 모두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며, (학교법인 임직원은) 교직원과 같이 교육적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만 해당되기 때문에 면책 근거가 된다는 것.
더불어 공정경쟁규약 상 한도를 준수한 경우에도 처벌대상인지 여부도 처벌과 면책 주장이 상충된다.
처벌 근거로는 학교법인 임직원에 해당하는 의사들이 1회에 100만 원 초과 금품을 받았기 때문에 청탁금지법의 처벌대상이며, 공정거래규약 및 세부운용 기준 규정 한도는 위법에서 정하는 예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한도를 준수했더라도 마찬가지라는 해석이다.
반면 청탁금지법 제8조 제3항 제8호는 “다른 법령, 기준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은 수수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공정거래규약 및 세부운영 기준은 공정거래법에 근거를 두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은 규정이기 때문에 예외에 해당돼 면책된다는 주장이다.
이밖에 X사가 학술대회 참가지원을 한 것이 청탁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금품 수수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비록 X사가 협회에 지원금을 기탁하고 외과학회를 통해 해당 의사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다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X사가 지원대상 의사를 선정하고 참가비용을 지원했으므로 X사와 의사 간 금품을 직접 수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X사가 협회에 지원금을 기탁했을 뿐이고 협회가 외과학회를 통해 해당 의사에게 비용을 지원했기 때문에 X사와 의사 사이에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면책 주장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