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무료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시행 첫날인 지난 1일. 의료기관에 접종자가 몰리면서 예방접종을 등록하는 관리 시스템 접속이 지연되다 끝내 일시적으로 긴급 점검에 돌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접속자가 급격히 증가한 탓이라며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접속 지연으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환자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던 개원가의 불만은 가라앉을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일부터 전국 보건소와 1만5300여곳 지정 의료기관에서 만 65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무료 예방접종 대상자는 1950년 12월 31일 이전에 출생한 만 65세 이상 노인으로 약 660만여명이다.
이들은 오는 11월 15일까지 보건소나 주소지 관계없이 가까운 지정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독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무료 접종 첫날부터 지정 의료기관에 접종자가 몰리면서 예방접종 등록 시스템인 '질병보건 통합관리 시스템' 동시 접속자도 함께 증가해 끝내 시스템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선 의료기관에 따르면 접종 전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접종 대상자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접속이 안 되면서 환자들이 접종을 기다리다 끝내 화를 내고 돌아서는 경우가 빈번했다. 심지어 환자들의 불만을 견디다 못해 접종 대상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접종을 실시한 의료기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A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지난 1일 "노인분들이 오면 질병보건 통합관리 시스템에 접속해서 노인독감 접종 대상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오전 중에 시스템 접속이 됐다 안 됐다를 반복했다"며 "주소지에 관계없이 지정 의료기관에서 접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온 접종자들도 있었다. 무료접종 대상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시스템 접속이 되지 않아 기다리다가 화를 내고 돌아선 이들도 꽤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시스템 접속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단골환자는 일단 접종을 실시했다"며 "어쩔 수 없이 접종 대상자 해당 여부는 나중에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개원의는 "노인 독감에 따른 시스템 접속자 증가로 인해 국가필수예방접종까지 등록을 못하고 있다"며 "보건소에 전화해봐도 계속 통화 중이고 환자들은 병원에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국가가 시스템을 제대로 돌리지 못한 이유로 왜 의사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그는 "접속이 폭주할 것이라는 당연한 예측을 국가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1만 2000원이 아쉽긴 하지만 잘못도 없이 환자들에게 욕 먹어가면서 할 바에는 차라리 지정 의료기관 신청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오후 긴급 서버 점검에 돌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정 의료기관에 문자 메시지를 통해 "노인 인플루엔자 시스템의 급격한 접속자 증가로 인해 시스템이 지연되고 있다"며 "13시 20분부터 50분까지 긴급 시스템 점검 예정"이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시스템 상의 오류가 아니라 동시 접속자가 폭증한 탓이라고 해명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에러는 아니다. 서버를 4대 준비했는데 오전 9시가 넘으면서 동시에 2만 8000명까지 접속하다보니 서버가 감당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서버를 분산도 시켜봤지만 사용자가 워낙 많아 접속이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설정을 바꿔 더 받아들일수 있도록 해보고 안 되면 서버 추가까지 생각하고 있다. 서버를 긴급 수배 중에 있다"며 "접속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늦게라도 되는데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느리다보니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국가필수예방접종의 경우 올 때마다 접종하기 때문에 분산이 돼 서버에 자원이 남아돌았지만 노인독감은 시작과 동시에 전체 의료기관에 동시에 붙으면서 이런 현상이 생겼다"며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중앙집중식 시스템을 문제로 지목했다.
대한의사협회 손문호 정보통신이사는 "시스템을 중앙집중식으로 하니까 당연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라며 "초기에 몰리는 우리나라 특성상 2~3일이 지나면 서버가 평정 되는데 단기간에 발생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이사는 "애초에 서버를 분산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었다. 지사 쪽에 네트워킹이 돼 있어 필수정보에 대해서만 걸러서 중앙으로 들어가면 부하가 덜 걸린다"며 "중앙으로만 모으려고 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될 경우 국민 건강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물론, 의사-환자 간 신뢰도 깨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손 이사는 "반복적으로 이같은 전산 오류를 범하다보면 국민 건강도 그렇고 의사에 대한 신뢰도 깨질 수 있다"며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히 의료전산화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