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만 65세 노인 대상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만에 일선 의료기관 백신 보유량이 소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개원가에 따르면 애초 질병관리본부가 청구물량의 절반 정도 밖에 공급하지 않은데다 긴급요청에 대해서도 요구 물량의 10%만 공급하고 있어 6일 현재 더 이상 접종이 불가능한 의료기관도 속출하고 있다.
부산 배산클리닉내과의원 김홍식 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김홍식 원장의 경우 이미 지난 2일 독감 백신이 소진됐으며 지난 6일까지 추가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초도 공급량은 병의원의 허수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질병관리본부가 일정 부분 공급을 조절해야 하는 부분은 공감하지만 긴급요청까지 외면하는 것은 접종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주장이다. 메디칼타임즈는 김홍식 원장을 통해 만 65세 이상 노인 무료 독감 예방접종의 현실과 질병관리본부의 수급 시스템이 가진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노인 무료 독감예방 접종과 관련한 백신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일선 의료기관의 불만이 높다.
접종기간이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니까 기간에 맞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가 출고를 조절하는 것 같다. 노인 독감 무료 예방접종이 시작된 10월 1일 꼭두새벽부터 접종자들이 몰려오는 상황인데 질병관리본부가 물량을 11월 15일까지 마냥 비축하다보면 나중엔 백신 폐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상황에 맞게끔 수급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일선 의료기관뿐 아니라 접종자들의 불평이 심각한 상황이다.
배산클리닉내과의원은 어떤 상황인가.
내 경우 지난해 유료 접종할 당시 65세 이상 300명 정도에게 독감 예방접종을 실시했고, 무료 접종을 감안하면 접종자들이 더 올 수 있다고 판단해 400개를 신청했다.
공짜라니까 무조건 물량을 당기기 위해 청구한 곳도 있겠지만 나는 정량대로 청구했는데 질병관리본부는 일괄적으로 50%를 줄여 200개만 보냈다. 어쨌든 200개를 받아서 지난 1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는데 그날부터 접종자들이 먼저 맞겠다고 밀려왔다. 하루에 100개 이상씩 놓다보니 접종물량이 이틀만에 바닥났다.
지난 2일 예방접종 관리 사이트를 통해 300개를 긴급요청을 했더니 질병관리본부는 10%인 30개만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마저 6일 현재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다. 접종을 할수 없는 상황이다.
접종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초반 접종에 몰리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의원이 아닌 병원에 다니는 분들이 많다. 평소에 병원에 다니던 이들이 접종 편의성 때문에 전부 의원으로 몰리고 있어 예측하지 못한 접종 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법에서는 예방접종을 거부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 사람들까지 다 접종을 하다보니 접종 물량이 바닥나 그 이후에 오는 사람들은 접종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 버렸다.
접종자들의 불만이 상당할 것 같다.
단골 환자는 단골 환자대로, 처음 온 접종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화가 많이 나 있다. 기존에 내 의원을 다니던 만성질환자들은 옆에 다른 의원에서 접종하라고 해도 안 가고 왜 자신들이 맞을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접종을 안해주느냐며 불만을 제기한다.
처음 온 이들은 왜 자기는 접종을 해주지 않느냐며 사람에 따라 접종을 차별하냐며 항의하고 있다. 이래저래 환자들로 욕만 실컷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는 무조건 11월 15일까지 조절해야 한다며 물량을 쥐고 있어 의사-환자 간 갈등만 심화되는 분위기다.
질병관리본부에서 공급하는 백신 외 다른 백신으론 접종할 수 없나.
병원 자체 백신으로는 접종을 할 수 없다.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보내준 백신으로 접종을 하고 접종자 주민등록번호나 인적사항으로 관리 사이트에 등록하면 숫자가 차감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백신을 200개 받아서 200명을 입력하면 그 이후에는 환자를 더 입력할 수 없다. 결국 내가 가진 백신으로 접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스템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의료기관에서 청구한 수 만큼 무조건 공급한다면 접종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많이 넣고 보는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 청구는 막을 수 없지 않나.
질병관리본부가 그런 상황을 고려해서 초도 청구량의 절반만 내주는 것은 좋다. 그런데 처음 공급한 백신이 소진되는 것은 예방접종 관리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자료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에 공급받은 물량이 소진된 의료기관의 추가 긴급요청에 대해선 빨리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물량이 많이 나가거나 이미 소진된 곳에 대해선 그에 맞춰 공급해야 하는데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일괄적으로 추가 요청의 10%만 주고 있다. 주변 의원에 알아보니 내 경우처럼 물량이 소진된 의원 뿐 아니라 물량이 남아 있는 의원에 대해서도 똑같이 10%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물량이 없는 곳은 상황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실제로 나가고 있는 추세를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반영한 추가 긴급공급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긴급공급을 위해선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할 듯 싶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지금은 긴급요청을 신청하면 질병관리본부에서 백신을 택배로 보내주다보니 신청 후 최소 3~4일이 소요된다. 그마저 10%만 보내주다보니 받으나 마나한 일이다.
내 경우만 해도 10월 2일에 300개를 추가 신청했고 질본에선 30개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6일 현재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접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있다. 예를 들어 보건소에 백신을 많이 공급해서 지역 의료기관에서 물량 소진 등 필요에 의해 백신 추가 공급을 요청하면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
보건소에 접종과 관련한 몇년 간의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접종자가 몰려 난리가 난다는 것을 안다면 1940년 생 이전과 이후로 나눠 순차적으로 접종토록 얼마든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조치가 전혀 없이 국민에게 무조건 10월 1일부터 일선 의료기관에 가면 편하게 접종할 수 있다고 해버리니까 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차라리 일선 의료기관이 자비로 백신을 구입해서 접종토록하고 나중에 비용을 처리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 요청에 대해 국민 세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 공급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는 공감한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에 대해 왜 조치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량이 소진돼 청구한 것을 몇일 뒤에나 보내주는 것은 긴급요청이라고 볼 수 없다.
의사협회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협회에서는 물량공급에 대한 개입도 없고 관심마저 없는 상태다. 그 사이 현장에선 환자들과 원장들의 갈등만 심해지면서 모두 고생하고 있다. 나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의사들이 비슷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