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가 지난 9일 "공정위 사정 칼날 '한국지멘스헬스케어' 겨냥" 기사 보도 이후 봇물 터지듯 공중파·일간지 등 많은 매체가 연이어 관련 소식을 전했다.
사건의 핵심은 지난달 초 한국지멘스에서 분사한 의료부문 '한국지멘스헬스케어'가 한국지멘스 시절 CT·MRI를 판매하면서 일부 중소병의원에 소프트웨어(SW) 사용권만 제공하고 소유권은 주지 않는 등 불공정행위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된 것.
특히 이번 조사는 서울 소재 영상의학과의원이 공정위에 2차례 민원을 제기한 끝에 이뤄졌다.
메디칼타임즈는 해당 영상의학과의원 관계자를 만나 공정위에 지멘스를 고발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지멘스 장비는 언제 도입했나.
2006년 6채널 CT 'Somatom Emotion 6'을 도입했다. 이 장비는 심장을 찍을 순 없지만 그 외에 복부 쪽 CT 검사는 모두 가능하다. 의원 입장에서 심장을 찍을 게 아니라면 이 제품이 가장 최선의 장비라고 판단했다.
지멘스 CT를 선택한 이유는 잔 고장이 없고 내구성이 좋다는 주위 평가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MRI는 GE헬스케어 장비를, CT는 지멘스 장비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믿었던 지멘스로부터 배신을 당한 셈이다.
공정위에 지멘스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시기가 언제인가.
지난 7월 22일 1차로 민원을 제기했다가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혐의 없음' 회신을 받았다.
이어 대학병원·중소병의원과 지멘스 간 매매계약서와 함께 터키 공정거래위원회 결정문과 미국 FDA 규정 등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지난 9월 9일 2차 민원을 접수했다.
2차 민원접수 후 공정위 담당자로부터 이번엔 조사가 이뤄질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공정위에서 다른 말은 없었나.
구체적인 증거를 더 수집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2013~2014년 실제로 지멘스에 서비스키(라이센스키) 제공을 요청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말이다.
서비스키는 장비 유지보수에 필요한 프로그램 이상여부를 점검하고 오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소프트웨어 '패스워드'(비밀번호)로 이해하면 된다.
이걸 수집하는 게 쉽지 않다. 상당수 중소병의원들의 경우 서비스키를 지멘스 측에 요청한 사례도 거의 없을뿐더러 서비스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지멘스와 계약을 끝내고 타 서비스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서비스키에 대한 존재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정위에 지멘스를 고발한 이유는.
2006년 지멘스 CT를 도입하고 1년 무상 하자보증기간이 끝난 후 2007년 유상 워런티 비용으로 디텍터를 포함한 월 1250만 원의 견적서를 지멘스 대리점으로부터 제안 받았다.
당시 1250만 원은 비용부담이 컸기 때문에 디텍터를 제외하고 월 850만 원에 계약을 맺고 올해 3월까지 유지보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조차 비용이 부담돼서 올해 3월 지멘스 측에 계약 중단을 알리고 타 업체에 유지보수 서비스를 요청했다.
새로운 업체와는 4월부터 디텍터를 포함해 월 650만 원에 계약을 체결하고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아왔다.
문제의 발단은 2006년 장비 구매시점부터 올해 3월까지 지멘스에서 유지보수 서비스를 담당했기 때문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4월 타 A/S업체와 계약을 하면서 2006년 당시 의료기기 매매계약서 내용 중 '소프트웨어의 모든 권리는 SIEMENS에 있다'는 조항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CT 장비 유지·보수를 위해 서비스키가 있어야 하고 이 서비스키가 없으면 장비 오류 메시지 등 기본적인 점검 및 유지보수를 할 수 없는데 지멘스 측에서 매매계약서상 소프트웨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새로 계약한 서비스업체에 물어보니 CT 장비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암호가 걸려 있어 사용자 또는 제3의 A/S업체가 사용할 수 없고 일반적인 진단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
심지어 이 업체는 지멘스로부터 CT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이용해 점검한 것이 저작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장비를 구매했지만 정작 소프트웨어 권리가 지멘스에 있다는 조항 때문에 유지보수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타 업체로부터 유지보수를 아예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006년 매매계약서 작성 당시 소프트웨어 권리에 대한 내용은 인지하지 못했나.
장비 가격이나 부품 및 납품 기일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매계약서 전체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고, 설마 그런 조항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또 계약서상 소프트웨어를 사용권과 소유권으로 나눠 놓은 것인데, 소프트웨어를 무기한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복잡한 문제가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공정위에 2차 민원을 제기할 때 여타 다국적기업 매매계약서와 해외사례도 함께 첨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멘스를 포함해 GE헬스케어·도시바 등 다국적기업과 대학병원·중소병의원 간 국내 의료기기 매매계약서 사본을 함께 제출했다.
국내에서 지멘스 다음으로 시장점유율이 높은 GE헬스케어는 우리도 MRI 장비를 쓰고 있지만 모든 의료장비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키를 개방한다.
도시바 역시 대학병원이건 중소병의원이건 매매계약서상 소프트웨어 권리를 제조사가 소유한다는 조항은 없다.
유일하게 지멘스만이 일부 중소병의원과 작성한 매매계약서를 이유로 소프트웨어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대학병원과 작성한 매매계약서에서는 그런 조항이 없다.
국내 매매계약서와 더불어 서비스키에 대한 터키 공정거래위원회 결정과 미국 FDA 규정도 함께 제출했다.
터키 공정위 결정을 보면, 터키시장에 진출한 지멘스·GE헬스케어·필립스·도시바·히타치 등 주요 다국적기업들은 무상으로 서비스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장비 관련 기술용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비밀번호와 접속을 위해 필요한 동글(Dongle) 및 유사한 장치를 합리적 시간 내 제공하는 것이 경쟁구도 구축을 위해 필요하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미국 FDA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서비스키를 제공하라는 명시적인 자료를 찾진 못했으나 "설치 및 수리하는 업체는 제조사가 제공한 지시서와 과정표에 의해서 설치해야 하고, 제조사는 적절한 설치를 위해 가이드라인과 과정표를 배포해서 장비를 설치하는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멘스는 기술서비스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서비스키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지멘스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엔지니어들이 기술서비스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걸 방해하고 소규모 기술서비스업체 시장진입을 어렵게 함으로써 지멘스 장비를 구매한 소비자는 전적으로 지멘스에 의존하게 하려는 것이다.
특히 지멘스는 장비와 소프트웨어 일부만을 판매했으니 장비 구매자라할지라도 함부로 유지보수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드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지멘스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취지에 반하고 있다고 판단해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의사단체에 협조를 구하진 않았나.
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 측에 여러 회원들이 겪고 있는 피해인 만큼 앞장서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문제 해결에 노력해주기를 요청했다.
한 임원에게는 계속 업데이트된 자료를 보내주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 임원은 이 문제를 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 정기회의에 안건으로 올린다고 이야기는 했는데 이후 안건으로 올라갔는지 안 올라갔는지는 '노코멘트' 했다. 뭔가 곤란한 상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개원의 특성상 각자 생업이 바빠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회원들을 위해 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가 나서줘야 할 사안임에도 별다른 답변을 받은 것도 없고 오히려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다.
공정위가 지멘스의 불공정행위 혐의를 조사 중이다.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나.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 예측보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공정위가 제대로 조사해주고 판단해줬으면 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판단할 문제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 또한 검토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가면 사법부나 행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개인적으로 싸워야하는데 최대한 많은 병의원들을 유도해 집단소송으로 끌고 갈수도 있다.
많은 영상의학과의원들이 지멘스에 대한 반감이 큰 만큼 소송에 참여할 원장님들이 꽤 많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