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1000만원 청구하면 100만원은 삭감된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모르고 피해 보는 의사들이 너무 많다."
경상남도의사회 옥경혜 보험이사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다. 전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도 아니다. 건강보험 청구프로그램 개발업체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의료계와의 유일한 접점이다. 그런데 그 이력이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낯설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옥경혜 보험이사는 현재 한 달에 40~50통씩의 삭감이나 현지조사 관련 상담 전화를 받고, 5~6곳의 의원을 방문하며 보험 업무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경남의사회는 2012년 박양동 회장의 회장 취임과 동시에 삭감 관련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회원이 없도록 보험 상담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보험 파트를 강화했다. 옥 이사는 박양동 회장의 제안으로 3년 전부터 보험 실무 간사로 경남의사회에 합류했다 올해 박 회장이 재임을 확정하면서 보험이사로 승진했다.
옥 이사는 "처음 1~2년은 한 달에 한 곳도 안 가고 상담 전화도 없고 했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늘더라"며 "심평원, 건강보험공단 등을 상대하는 대외업무도 같이 증가하다 보니 이사라는 직함이 필요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남의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1년 사이 보험 업무 관련 전화 상담은 총 484건, 출장상담 31건, 원격상담 5건이었다. 서비스 초기에는 심사 삭감 분석만 했었다면 최근에는 비급여 부분,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 여부, 간호인력 신고 등 상담분야가 넓어졌다.
옥 이사는 4년째 보험 분야 상담을 하면서 "의사들이 청구와 관련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피해 보는 의사가 굉장히 많다"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매달 삭감 금액이 누적돼 (삭감)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하고, 자꾸 삭감을 당하다 보니 삭감을 피하려고 법 위반인지도 모르고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상담사례를 꺼내 놓으며 의사들도 급여 청구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비뇨기과 의원이 소변검사 후 현미경 검사로 급여를 청구해야 하는데, 요일반검사 7종으로 착오 청구했다. 선배 의사에게 듣고 요일반검사 7종 세부내역에 현미경 검사라고 돼 있어서 해당 코드를 입력한 것이라고 했다. 두 개 코드의 금액 차이는 60원이었다.
건보공단은 이 비뇨기과 의원이 착오청구한 금액을 모두 환수해가겠다며 현지 확인을 나왔다.
옥 이사는 "이 비뇨기과 의원은 현미경 검사를 안 한 게 아니고 진료기록이 다 있었다. 순전히 착오청구 한 것이었다"며 "사후 청구니까 차액만큼만 환수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옥 이사는 의원에 해결책을 제시했고, 이 의원은 수천만원의 환수 위기를 60만원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일이 잘 해결되고는 원장이 너무 기쁘다며 제일 먼저 의사회로 전화를 했다"며 "전화에서 그치지 않고 고마움을 담은 편지까지 보내줬다. 그 편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보다 의사회라는 단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경남 진주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직원이 진료일수 입력 과정에서 하루에 2000명을 진료했다고 잘못 입력했다. 그것도 무려 1년이나 됐다"며 "직원에게 청구를 다 맡겨놓고 있던 터라 원장도 뒤늦게 알게 됐다. 차등수가제가 적용돼 이 의원은 한달에 수백만원씩 손해를 본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옥 이사는 심평원 지원에 직접 전화했다. 심평원의 답변은 3개월치만 이의신청 했을 때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옥 이사는 즉시 관련 자료를 출력해서 박양동 회장에게 보고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심평원 지원을 찾아가 "이의 신청을 할 문제가 아니라 누락 청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6개월간 이어진 이의제기 끝에 이 소청과 의원은 1년간의 손해 분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옥 이사는 "개인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을 경남의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굉장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의 활약은 경남을 넘어 다른 지역에도 알려졌다.
옥 이사는 "현지 조사 등이 의사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화 상담만으로도 의지가 된다고 하더라"며 "대전, 울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어떻게 상담을 하고 있는지 경남의사회 시스템을 묻는 전화를 받는다"고 귀띔했다.
이어 "의사들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지만 의사가 아니라서 안 좋은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격려를 받는다"며 "봉사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일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삭감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