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에서 동료 의사와 신경정신과 의원을 개원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원장. 당시 월평균 수입은 3768만원이었고 이 중 약 절반은 J 원장의 몫이었다.
하지만 J 원장의 개원 단꿈은 3년여 만에 끝났다. 서울 S병원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러 두 발로 걸어들어갔다가 다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개원하기 전부터 J 원장은 양팔 바깥쪽과 왼쪽 목 부위에 저린 증상이 있었다. 참고 참다가 통증이 심해져 2003년 8월 상급종합병원인 S병원 정형외과를 찾았다.
당시 진단명은 제5~6번 목뼈 사이 척추증 및 왼쪽 제5 경추근 병증이었다. J 원장은 근처 의원에서 견인치료, 물리치료를 받으며 통증 관리를 했다.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약 반년 만에 J 원장은 다시 S병원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때 의료진은 통증클리닉에서 척추신경근차단술을 권했다.
MRI 검사 결과는 목뼈 4~5번 추간판탈출증, 목뼈 5~6번과 6~7번 추간판부분탈출증, 퇴행성 관절로 인한 척추공간협착 등이었다.
신경전도검사도 했다. 왼쪽 제5경추부 신경근증이 있다고 의료진은 말했다.
J 원장은 검사를 한 당일 마취과 전문의에게 목뼈 경막 외 신경차단술(C-ESI)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막 외 신경차단술을 한번 더 받았다. 일주일 후에는 왼쪽 견갑상 신경차단술도 받았다.
세 번에 걸쳐 신경차단술을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는 목뼈 5번 신경근차단술을 하자고 했다.
의료진은 조영제 0.5ml를 주입해 신경근의 엑스선 투시로 신경근의 해부학적 모양과 양상 등을 확인하면서 바늘을 추간공의 후방 아래쪽 횡돌기 홈봉을 목표로 삽입한 후 스테로이드제제(triamcinolon 20mg)와 국소마취제(lidocaine 1cc)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연결해 천천히 주입했다.
J 원장의 비극은 여기서 발생했다.
주사제를 주입한 후 정 원장이 호흡마비, 의식소실, 전신마비 등 완전 척수 마취 내지 경막외마취의 소견을 보인 것이다. 목 부위 이하 사지마비 증세도 나타났다.
응급조치 후 CT 검사를 해봤더니 뇌 연수부터 목뼈 3번까지 광범위한 척수경색이 발생했다. 경부 MRI 검사에서도 연수와 경수, 흉수까지 확산성 부종이 관찰돼 척수경색 소견을 보였다.
J 원장은 현재 목뼈 3번 이하 모든 운동신경과 감각이 소실됐고, 입을 움직여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다. 호흡부전, 연하장애, 사지마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J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신경근차단술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진이 목뼈 5번에 주사를 놓는다는 것이 3번에 주사한데다 주삿바늘을 너무 깊숙이 찔러 마취제, 스테로이드 등의 주사약물이 경막 내부까지 들어갔을 가능성 크다"고 주장했다.
또 "시술 당시 사용한 바늘이나 조영제, 마취제 등으로 척수 동맥을 과다하게 압박해 손상시켰다"고 덧붙였다.
병원 측은 "시술과 상관없고 정 원장이 기존에 갖고 있던 동맥경화와 혈전 증상이 주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불가항력적 사유에 기인한 것"이라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1심부터 2심, 대법원, 파기환송심까지 내리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했다. 설명의 의무도 위반했다고 봤다. 파기환송심 결과까지 12년이 걸렸다.
특히 파기환송심은 1심 재판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한 금액 10억여원보다 약 1억원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J 원장이 여태껏 개원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앞으로 계속 개원을 했다면 얻을 수 있는 재산을 1심과 달리 계산한 것이다.
재판부는 "시술 부위인 경추부 신경근 동맥이 압박되거나 손상됐을 때 척수경색 및 이로 인한 마비 증상이 나타난다"며 "S병원 진료기록상 J 원장은 동맥경화 내지 혈전증 기왕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추간판탈출증 때문에 신경근차단술 도중 갑자기 척수경색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며 "신경근 동맥을 바늘이나 조영제 등으로 지나치게 압박, 자극해 동맥 수축이나 동맥 경련을 가져왔고 이 때문에 발생한 척수경색으로 J 원장에게 사지마비 등의 장애를 입게 했다고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진의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의료과실"이라며 "S병원은 시술 종료 후 사지마비 증상 원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