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4·13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 공천 결과를 지켜본 국회와 복지부 내부에서는 "의사는 가고, 약사와 간호사 시대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큰 파문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순위 번복이다.
지난 20일 당선권(A 그룹) 10번 내에 이름을 올린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62)이 다음날 자정을 넘겨 29번으로 밀려났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 비례대표 후보 공천 칸막이 반발과 김종인 대표 회무 거부, 비상대책위원회 자진 사퇴 그리고 중앙위원회 비례대표 후보 투표 등 하루 밤 사이 벌어진 사태로 의료계는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다.
한의사협회와 약사회 그리고 치과의사협회와 간호협회 등 의약 4단체장의 김숙희 회장 공천 반대 기자회견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약사 출신 유영진 전 부산시약사회 회장(58)은 20번을, 간호사 출신 이수진 보건산업노조연맹 위원장(46)은 21번으로 최종 낙점돼 당선권(15번 내외)에서 다소 멀어졌으나, 김숙희 회장 보다 우월한 순위에 배치됐다.
의사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은 야당 내부의 높은 점수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는 쓴잔을 마셨다.
여당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결과는 더욱 가혹했다.
약사 출신 김승희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62) 11번, 간호사 출신 윤종필 전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62) 13번, 세월호 사태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순례 여약사회 회장(61) 15번 모두 사실상 당선권(20번 내외)에 안착했다.
제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사-약사 역전현상 불가피
의사는 전 새누리당 재정위원장과 병원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철수 원장(72)이 18번으로 의료계 체면을 세웠다.
여야를 합쳐 최소 약사 출신 2명, 간호사 출신 1명, 의사 출신 1명의 여의도 입성이 확실시되는 형국이다.
종반으로 치닫는 제19대 국회에서 의사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문정림(새누리), 신의진(새누리), 김용익(더민주) 등 3명이, 간호사 출신 국회의원은 신경림(새누리), 약사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총선 결과를 단정할 수 없으나 제20대 국회에서 의료인과 약사 출신 비례대표 역전 현상은 자명하다는 관측이다.
복지부는 약사 중심 제20대 국회 상임위 구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A 공무원은 "의사와 약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전문성에 입각해 보건복지위원회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여야에서 의사와 간호사, 약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번 비례대표 순번으로 분명해졌다. 처방전 리필제와 성분명 처방 등 약사들의 숙원사업인 약사법 개정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B 공무원도 "비례대표 순번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가 맥없이 쳐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의사 출신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의약단체 반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의사협회 위기대응과 정치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김숙희 회장 공천 과정 뒷얘기를 놓고 많은 설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비난의 화살은 의사협회 추무진 집행부로 향하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정당 정치의 민낯이 드러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의사 출신 후보를 지키기 위해 의사협회가 무엇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면서 "각 지역구에서 발로 뛰는 500명의 중앙위원들은 의사 출신 후보가 누군지 모르니, 투표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리더그룹인 시도의사회장협의회가 의협 집행부 일괄 사임 후 재신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추무진 회장을 겨냥한 마지막 경고라는 관측이다.
한편, 25일 마감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후보 중 의사 출신은 ▲새누리당:신상진(3선, 서울의대, 성남중원), 박인숙(초선, 서울의대, 송파갑), 윤형선(고려의대, 인천 계양을), 홍태용(인제의대, 경남 김해갑) ▲더불어민주당:이용빈(전남의대, 광주 광산갑) ▲국민의 당:안철수(초선, 서울의대, 노원병), 이동규(계명의대, 대전 서구을), 유덕기(가톨릭의대, 서울 도봉갑) ▲복지국가당:이상이(제주의대 교수, 마포갑) ▲무소속:이강수(조선의대, 정읍고창) 등 1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