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눈가와 미간 보톡스 시술 문제는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나 전문가 단체가 모여서 합의할 문제가 아닌가요. 전문적인 문제에 사법기관이 나서서 형벌권을 실현하려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대법원 권순일 대법관은 19일 환자의 눈가와 미간에 미용 목적으로 보톡스 시술을 한 치과의사 A씨 상고심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에서 검사 측을 향해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1심과 2심 법원은 A씨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 100만원을 선고했다.
허수진 검사는 "의료 직역의 영역간 다툼이 너무 많다"며 "유관기관과 협의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갈등이 있었던 부분"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각 단체가 모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속적인 영역 다툼 속에서 이번 판결을 통해 각 직역의 영역을 확고히 해주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밝힌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치과의사의 적법한 진료범위는 어디까지인가'다. 좁게는 '치과의사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안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의사는 "미용목적의 보톡스 시술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치과의사는 구강악안면외과의 역사를 꺼내며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법리적인 부분에서도 양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의료법에 치과의사 업무 명확…치아 및 구강질병 예방"
의사들은 의료법에서도 치과의사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해수 검사는 "의료법에서 치과의사는 치과의료, 구강보건지도를 한다고 돼 있다"며 "치과 의료 행위는 치아를 포함한 구강을 대상으로 한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법령에 해당한다. 치아 및 구강 질병을 예방하는 경우에 한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에 따르면 치과의사의 치료 범위는 치아를 포함한 구강과 턱 골격 체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안면부 보톡스는 치과의사의 고유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치과 의료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법 내용과 취지, 유관기관의 해석, 치과학의 개념 정의와 외부 사례, 의료 직역별 전문성 등을 종합하면 충분히 면허범위가 구분된다"고 밝혔다.
참고인으로 나온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 피부과 강훈 교수도 치과의사는 치아와 구강조직 질환 및 손상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 교수는 "구강악안면외과가 치과의 한 전문과목이므로 치과의사가 안면 전반에 대한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구강악안면외과는 순수한 치과 영역인 구강외과가 수련기간 연장이나 의학 영역에 대한 수련과정은 전혀 추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라며 "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미국, 유럽 등 외국의 구강악안면외과는 의학의 한 분야인 악안면외과와 치의학 한 분야인 구강외과가 융합된 전문과목이다. 영국을 비롯해 대부분 유럽 국가는 구강악안면외과 요건으로 의사와 치과의사 면허를 모두 요구하고 있다.
치과의사도 양악과 구순구개열 수술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강 교수는 "의학과 치의학이 중첩되는 분야가 있다는 소린데 양악과 구순구개열 수술은 치아와 구강 구조 관련 부분에서만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현실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눈가와 미간 주름은 표정 근육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치아나 구강 구조와 기능, 저작근육 등과 전혀 관련 없다"고 말했다.
또 "치대 교육과정에 보톡스 시술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할 수 있다면 의사에게도 치과 진료를 당연히 허용해야 한다"며 "오래전부터 의대도 치과학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2시간여에 걸친 공개 변론을 모두 들은 의협 추무진 회장은 "우리나라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며 "면허 제도를 두는 이유가 있는데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영역이 중첩되는 부분은 협진 등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안면 치료했다…간접적 인정 조항 많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전사적으로 "치과의사가 미용목적의 안면 보톡스 시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공개 변론에 앞서 따로 기자간담회까지 열고, 공개변론장에는 수십명의 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치협 김철환 학술이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1년 일부 의사들이 조직적으로 보톡스 시술을 하는 치과의원을 보건소에 고발했다"며 "협회로 민원이 들어온 곳만 30여곳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대부분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일부가 기소됐고, 대법원까지 오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재해상보험, 한국소비자원 등에 공식 공문을 보내 확인한 결과 치과의사가 휘말린 의료분쟁에서 보톡스 관련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의사들이 진료영역을 호도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최남섭 회장도 "의사만 의료인이 아니다. 법에는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의료행위 문제를 형사적 문제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민 정서상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협 법률 대리를 맡은 김수형 변호사(김앤장)는 "의료법 상 치과의사 면허 범위에 안면이 들어가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간접적으로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알 수 있는 조항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치과의사 시험과목 시행규칙에 구강악안면외과가 있고, 진료과목에도 구강악안면외과가 포함돼 있다. 전문의 전문과목으로 구강악안면외과를 분류하고 있다"며 "명백하게 치과의사의 의료행위 범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 규정에 의해 안면부는 치과의사 면허범위 밖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치과계 참고인으로 나선 서울아산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부규 교수는 치과의사가 안면 치료를 하고 있다는 '역사'카드를 꺼냈다.
그는 "치과는 외과에서 분리된 학문"이라며 "의과보다 4년 먼저 치과에서 턱얼굴성형외과학회를 시작했고 성형외과학회 발기인에도 서울대 치과교수가 2명이나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의학은 구강 악안면의 해부, 신경, 생리, 병리 및 전신 의학을 배우는 학문으로 의대와 같은 교재로 전신기초의학을 배운다"며 "치과의사는 보톡스 부작용에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치과치료는 공포심, 출혈, 부종 등 환자의 전신부작용 가능성이 많은 분야고 국소마취제와 근관세척액 등 치과 약물 중 위험한 약제들이 많다.
이부규 교수는 "치과의사는 역사적으로 안면부 환자를 오랫동안 봐 왔다"며 "재건의료행위와 미용성형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용과 치료 목적으로 진료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과와 치과는 뿌리를 같이 한다"며 "치과의사에게 안면 보톡스 시술을 금지하면 기존 치료 목적의 진료도 위축되고 안면 외상 처치의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