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오피니언
  • 젊은의사칼럼

성형외과 아침은 매일같이 드레싱 전쟁

박성우
발행날짜: 2016-05-25 05:00:30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35]

드레싱 전쟁

의학 용어 중 한글로 바꾸면 어색한 말들이 많은데 드레싱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드레싱은 수술 부위, 상처 등 필요한 부위에 소독을 하고 적당한 물품을 이용해 밀봉하여 감염을 막고 치유를 돕는 술기를 일컫는다.

나는 드레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드레스는 여성들이 입는 옷의 종류인데 드레싱이 옷을 입히는 것이니 의학적 견지에서 옷을 입히는 과정일까 싶었다. 마치 샐러드를 만들 때 야채 위에 뿌리는 소스를 드레싱이라 일컫듯 말이다.

인턴 근무 초반에 "환자분 드레싱 좀 할게요"라고 하면 환자가 무슨 말인지 모를까 싶어서 "환자분 상처 소독 좀 할 게요" 라고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소독도 하고 다른 추가적인 일도 하니 소독보다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의 드레싱이 맞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과에서 드레싱은 인턴의 몫이다. 중심정맥관, 가슴관, 담도배액관 등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관들 및 욕창, 상처, 물집 등의 상처들에 대한 드레싱도 주로 인턴들이 한다. 하지만 성형외과의 경우 드레싱 자체가 치료에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직접 한다.

창상 치유에 전문화된 영역이어서 병동 입원 환자와 타과 의뢰 환자 모두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다. 다른 과에서 해결되지 않는 상처들은 다 성형외과로 오는 것 같았다.

다리 전체를 소독하고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아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엉덩이에 깊은 욕창을 드레싱하려면 낑낑거리며 환자의 체위를 이리저리 변경해야 한다.

반창고를 붙이듯 스윽 하는 간단한 드레싱은 기대하기 힘들다. 본원에는 화상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았는데, 화상 전문병원에서 전신 화상 환자를 드레싱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아침마다 성형외과 병동에서는 드레싱 전쟁이 일어난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해서 1시간 넘게 전공의 선생님들과 인턴 3명이 들러붙어 정신없이 진행된다.

한 명은 다리를 받치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사진을 찍고 있다. 한명은 드레싱이 끝난 환자를 병실로 모셔다 드리고 다음 환자를 처치실로 이동시켜 드레싱을 준비한다. 아침마다 드레싱 전쟁을 치루고 나면 큰일을 하고 운을 떼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고약한 고름 냄새도 살이 썩은 냄새도 익숙하지 않았다. 움푹 파여 근육이 훤히 보이는 상처들, 감각이 저하된 당뇨환자의 족부 궤양은 죽은 조직을 박박 긁어내고 나면 밑에서 빨간 피가 송송 맺힌다. 과연 상처가 나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난 3주 동안 환자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는 것은 보았다. ‘온 병원의 상처를 보러 다니는' 성형외과 일도 의미가 있었다.

명성에 걸맞을 정도로 힘들었던 성형외과 인턴이었기에 시간이 흐른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해부실습 준비를 위해 병원에서 잠시 나와 의과대학 건물로 향하는 사이 잠시 여름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서늘한 수술실 안에서 지내느라 느낄 수 없었던 2011년의 여름. 곧 지하 2층 해부 실습실에 가서 준비를 해야 했지만 매미 우는 소리마저 반가웠다.

[36]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