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병·의원
  • 개원가

"다음 달 임신 순서는 김○○ 간호사입니다"

손의식
발행날짜: 2016-07-05 11:34:15

보건노조, 병원노동자 실태조사 발표 "모성보호 권리 취약"

<자료사진>
임신순번제 8.4%, 유·사산비율 2.9%, 생리휴가 사용은 연 평균 4.9일, 육아휴직 사용률 41.3%. 현재 대한민국 병원에 근무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는 수치다.

병원 등 보건의료 사업장은 여성근로자가 80% 이상으로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이지만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유지현)는 지난 3월~4월 두 달간 전국 11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 950명의 병원노동자를 대상으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5일 발표했다.

보건노조는 "출산과 육아를 위한 국가의 장려정책이 매년 강화되고 있지만 병원사업장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는 국가의 모성보호 정책들이 각 사업장에 적합하게 유연성을 발휘해 실행돼야 하나 틀에 박힌 정책들은 생색만 낼 뿐 정작 현실에서는 허울 좋은 정책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보건노조는 "특히 보건의료사업장은 통상근무자보다 3교대 근무자가 많으며 인력부족으로 인한 임신부 야간근로, 임신부 유·사산, 강제적인 피임으로 임신시기를 조절하는 임신순번제 등 취약한 모성보호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육아휴직 대상자 6474명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는 41.3%(2671명)에 불과하며, 이중 공공병원의 육아휴직 사용자는 46.2%인 반면 민간병원 육아휴직 사용자는 38.8%로 조사됐고 육아휴직 개월 수는 평균 10.8개월로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는 ▲인력부족으로 동료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사용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20.7%, ▲병원분위기상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이 23.8%로 높게 조사됐다.

또한 여성노동자의 생리휴가 사용일수도 월 1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나 병원사업장의 여성노동자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연 평균 4.9일(공공병원 5.2일, 민간병원 4.7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병원사업장의 임신출산과 관련된 실태조사에 의하면, 원치 않은 피임 사례가 3.8%, 임신순번제 8.4%, 임신 후 야간근무 3.6%, 임신부의 유·사산 사례는 2.9%로 조사됐다.

특히 원치 않은 피임으로 임신시기를 조절하거나 임신시기를 순번으로 정하는 사례는 병원사업장의 인력부족으로 인해 여전히 높은 비율을 보였다.

보건노조는 보건의료 여성노동자의 임산부 보호 및 모성보호가 이토록 취약한 것은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중 간호사의 법적 기준을 준수하는 의료기관이 13.8%에 불과한 것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봤다.

실제로 OECD 국가들의 경우 인구 1000명당 평균 간호인력이 9.3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평균 4.8명(간호조무사 포함)으로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부족한 병원인력 문제는 숙련도가 높은 젊은 여성노동자가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병원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보건조노 측의 주장이다.

2015년 기준으로 간호사 면허를 가진 간호사수는 30만 7797명인데 비해 실제 의료기관 근무자는 13만 5440명(면허보유 대비 44%)으로서 유휴간호사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

보건노조는 "정부가 병원 여성노동자의 일-가정 양립과 유휴간호사 재취업 장려를 위해 시간선택제, 야간전담제 등을 내놓고 있지만, 간호인력 확충과 근무조건 개선이 전제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고, 실패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정부가 내놓는 출산장려정책 또한 병원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게는 실효성 없는 속빈강정에 불과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이다"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9월 25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노동자가 근무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올해 3월 25일부터는 모든 사업장에서 시행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11.6%만 사용하고 있다.

보건노조는 "병원은 24시간 3교대 근무로 운영되는데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의 특성상 협업과 인수인계가 필요한데 임신부의 하루 2시간 단축근무는 이런 특성에 부합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며 "따라서 병원특성에 맞는 근무형태와 충분한 인력이 확보돼야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병원사업장에서도 실효성 있게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고 모성보호도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임신과 출산의 자율권 보장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인력을 모성정원으로 충원 ▲수유·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보육지원시설 의무적 설치 ▲여성노동자의 생리적 문제에 따른 건강권 확보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정착 ▲모성보호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사례 조사와 시정을 위한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병원업종 모성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고용노동부 및 관계부처 간담회를 통해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기 위한 '모성정원제'도 추진할 방침이다.

보건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인 병원의 육아휴직자수는 2015년 기준으로 부산대병원 129명, 충남대병원 64명, 경상대병원 67명, 전남대병원 178명, 전북대병원 101명, 경희의료원 62명, 원주연세의료원 77명, 아주대의료원 120명, 서울성모병원 144명, 이화의료원 70명 등이고, 제일병원 44명, 원자력의학원 63명, 동강병원 30명, 광주기독병원 43명, 홍성의료원 10명, 충주의료원 21명, 서울시북부병원 22명, 국립중앙의료원 29명 등이다.

보건노조는 "이처럼 육아휴직에 따른 결원인력 규모가 대형병원은 연평균 50명~180명에 이르고, 중소규모병원도 10명~50명에 이르지만, 인력이 보충되지 않거나 임시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병원에서도 공무원처럼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인력을 공석으로 두거나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모성정원제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노조는 "병원인력은 곧 환자의 안전과 생명이다"라며 "보건노조는 병원인력 확충으로 환자들의 안전과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모성보호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는 병원 여성노동자들이 임신과 출산의 자유 및 법적으로 보장된 모성보호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병원현장에 맞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올바른 정착과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