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가 밀려드는 오전 진료시간. 의원 문을 열고 4~5명의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선다. 현지조사를 나왔으니, 자료 조사를 할 방 하나를 마련해달라고 한다. 왜 나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은 수군거린다. "무슨 잘못을 했나 보다"라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슬쩍 들린다. '작은 동네에 소문은 금방 퍼질 텐데…'하는 걱정이 앞선다. 직원들도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부끄럽고 비참하다.
이는 현지조사를 당했던 개원의들이 현지조사관을 처음 만나는 순간의 풍경과 당시 그들이 느꼈던 심정이다.
현지조사를 받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압박감이 큰 상황. 특히 개원의들이 강압적으로 느끼는 조사과정은 어떤 부분일까. 메디칼타임즈는 실제 현지조사 경험이 있는 개원의에게 물었다.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압박감이 가중됐다.
가장 큰 심리적 압박감은 진료가 한창인 시간에 조사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조사관이 의원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수시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자료를 요청한다. 환자가 있을 때도 진료실 문은 벌컥 열린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A의원 원장은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자료를 계속 요청하는 것도 부담인데, 한창 환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진료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자료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말 그대로 진료방해"라고 토로했다.
이어 "세무 조사를 와도 관련 자료만 갖고 가기만 한다던데 현지조사관은 며칠씩 의원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뭐 잘못한 거 있냐고 묻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B의원 이 모 원장은 2009년 현지조사를 3번이나 받은 경험을 꺼냈다.
그는 "갑자기 6명의 조사관이 들이닥쳐서 현지조사를 나왔다고 하는 순간부터 위압감은 시작된다"며 "이유를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날까지도 뭐 때문에 왔는지 설명을 안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또 "그들도 업무시간이 진료시간과 겹치니까 출퇴근을 일주일 내내 같이하며,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는다"며 "언제 갈지도 모르고 수시로 자료를 요청하니 피가 바짝바짝 마르더라. 환자는 물론 직원들 앞에서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협조 안 하면 1년 면허 정지됩니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사실확인서 서명을 거부하면 조사관에게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1년간 면허정지'라는 말이다. 이도 현지조사가 강압적이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다.
3년 전 현지조사를 경험한 서울 C의원 채 모 원장은 "왜 현지조사를 왔는지 얘기도 안 하고 무작정 자료를 달라고 해서 이의를 제기했더니 협조 안 하면 1년 면허 정지라는 답변이 돌아오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끼리는 사실확인서에 서명을 하지 말라는 지침도 있을 정도인데 막상 그 상황에 닥쳐보면 서명을 안 할 수가 없다"며 "면허 정지될 수 있다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컸다"고 털어놨다.
"자꾸 이의제기하면 다른 부당청구도 있는지 볼겁니다"
현지조사 내용에 대해 자꾸 이의 제기를 하면 다른 허위부당 청구 내용이 있는지 볼 거라는 압박도 있었다.
10년 전, 경기도에서 산부인과 개원 1년 만에 현지조사를 받았던 박 모 원장은 나름 급여기준을 고려해서 청구했다 현지조사를 당했다. 800만원 환수에 5배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까지 받았다.
그는 개원 초 같은 유방암 검사를 하더라도 단순히 검사를 하러 온 사람에게는 비급여로 3만5000원 상당의 검사비를 받았다. 대신 유방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는 유방암 검사 후 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양복을 입은 4명의 현지조사관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원장은 "왜 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건지 말해주지 않고 방을 하나 마련해달라고 했다"며 "조사관들이 요구하는 자료 내용을 들었을 때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스스로 눈치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유방암 검사를 급여로 청구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아파서 오는 사람에 대해서만 급여를 청구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의했더니 자꾸 이의를 제기하면 다른 부당청구 내용이 있는지 볼 거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현지조사관은 박 원장의 의원에 일주일을 머무르며 유방암 검사 청구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 갔다.
박 원장은 "조사관들이 계속 차트를 찾아오라고 요청하고, 왜 이렇게 급여 청구했냐는 질문까지 수시로 이어지니 진료를 못 볼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를 상대로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닌데 과징금 처분까지 받아 수천만원을 내야 했다"며 "너무 분통이 터져서 복지부까지 직접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돈 문제보다는 비참함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지조사 제도가 임상현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장은 "정말 악의적인 목적으로 청구하는 의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에 대해 과징금,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가 아니다"라며 "거짓 청구, 청구 대행업체를 통해 허위 청구를 하는 의사들에게는 과징금을 10배, 20배 부과해도 할 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조사를 직접 하는 직원들도 워낙 베테랑이니 의사가 고의로 청구를 했는지 직접 나가서 병원 분위기와 자료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50이 넘은 장년층 의사들은 수시로 바뀌는 청구코드 자체를 숙지하는 데 어려움을 넘어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며 "잘 모르고 실수 청구한 것은 과징금 처분보다는 지도, 계도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