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약제급여목록에 신규 등재되는 암젠의 희귀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제 '블린사이토(성분명 블리나투모맙)'.
최근 급여 고시된 개정안에 따르면, 블린사이토는 2차 또는 3차요법으로 필라델피아염색체 음성(Ph-) 재발 또는 불응성 전구 B세포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 치료시 급여를 적용받는다.
블린사이토는 암젠이 작년 11월 한국 출범을 공표함과 동시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첫 허가를 받은 품목이다. 해당 질환에 딱히 치료 옵션이 없었던 상황에서 경제성평가를 면제받은 약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블린사이토가 강조하는 게 CD19 항체와 CD3 T세포를 연결하는, 최초의 '이중특이성 T세포 관여항체(BiTE)'라는 대목이다.
이러한 블린사이토의 국내 론칭을 맞아 실제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자 호주 피터 맥컬럼 암센터 데이비드 리치(David Ritchie) 교수(前호주·뉴질랜드 혈액학회 회장)가 최근 방한했다.
현재 호주에서는 블린사이토의 대표적 다기관 무작위 임상인 TOWER 연구와 동일한 조건의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환자지원프로그램(patient access program)이 운영되는 상황.
메디칼타임즈는 리치 교수를 만나 블린사이토의 실제 처방 사례와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들어봤다.
그동안 재발 및 불응성 성인 ALL 환자엔 세포독성항암제가 유일한 옵션이었다.
-실제 임상현장에서 치료가 어려운 성인 ALL 환자를 꼽자면, 기존 세포독성항암제 치료에도 관해에 도달하지 않는 불응성 환자와 관해에는 도달하지만 재발하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세포독성약물에 치료 반응률이 낮고, 또 다른 치료제로 교체투여한다 해도 반응률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린사이토 도입 후 치료환경은 어떻게 변했나?
-대표적인 TOWER 연구는 재발 및 불응성 환자, 동종조혈모세포이식술(allo-HSCT)을 받은 후에도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는 호주의 환자지원프로그램 대상군과도 일치한다.
여기서 블린사이토의 역할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블린사이토는 기존 치료옵션에 비해 관해 도달률을 개선했고, 미세잔존질환반응(MRD) 달성률도 높았다.
특히 질환의 진행을 늦춰 조혈모세포이식 혹은 기타 다른 치료 대안을 검토할 시간을 벌어준다. 치료 옵션에 대한 희망이 없던 환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치료제라고 볼 수 있다.
호주에서 블린사이토의 처방 상황은 어떤가?
-TOWER 연구 환자모집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라면, 호주의 환자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블린사이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블린사이토 치료 접근성에 큰 제한이 없는 것이다.
해당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은 연령, 병의 특징, 병기, 재발까지의 기간 등 본인의 상태에 따라 일정한 조건만 만족시키면 된다.
실제 치료사례를 소개한다면.
-호주 사막지역(outback)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젊은 남성 환자 케이스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20대 후반에 불과했다. 전통적인 세포독성항암제 요법을 통해 관해가 됐으나 재발의 위험이 있었다. 결국 여자형제로부터 이식까지 받아야 했다. 이후 6년간 관해가 유지됐지만 6개월 마다 실시한 정기 모니터링에서 재발이 확인됐다.
그즈음 TOWER 연구가 시작됐다. 이 환자는 블린사이토 치료를 받은 첫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블린사이토 치료 1주기, 즉 4주 내에 종양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X-ray 촬영 결과에서 종양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더니 치료 1주기 CT 촬영에서는 이미 종양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에도 유지요법을 시행해 완전관해에 도달했고 현재 백혈병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블린사이토의 어떤 작용기전이 주효했다고 생각하나.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때, 블린사이토의 작용기전을 면역학적인 '스피드 데이팅(Speed Dating)'이라고 소개한다.
블린사이토는 흥미로운 구조를 띄고 있다. 한 쪽에서는 백혈병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하는 단백질인 CD19를 인식하고, 나머지 한쪽은 면역 T세포 표면의 CD3이라는 단백질을 특정한다.
때문에 블린사이토를 통해 우리 몸의 T세포와 백혈병 세포가 서로 가까워지게 되고, 백혈병세포와 인접하게 된 T세포가 독성을 나타내 타깃 세포를 사멸시킨다. 한마디로 블린사이토는 백혈병세포와 T세포 간의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스피드 데이팅'을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는 '면역관문억제제'와 어떤 차별점을 갖나.
-면역관문억제제(immune-checkpoint inhibitor) 계열의 치료제는 쉽게 말해 암세포가 잠재워놓은 면역세포들을 깨워서,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방식의 접근법이다.
이를 종양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이라고 하는데, 면역관문억제제들은 종양 주위 세포를 조절하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고형암에 더 효과적이다. 때문에 현재까지의 연구에서 면역관문억제제들은 폐암, 흑색종 등의 고형암에서 주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은 암세포가 몸의 거의 모든 곳에 퍼져있기 때문에 그러한 접근방식이 덜 효과적이다.
블린사이토는 면역관문억제제와 달리 골수, 혈액, 간, 비장, 폐 상관없이 모든 면역시스템을 한꺼번에 깨워서 암과 싸우도록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접근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 특히 블린사이토는 CD19가 발현되는 백혈병 세포에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린사이토 허가사항에는 45kg 사용 제한이 따른다. 미만 환자에 치료대안은 무엇인가?
-체중 제한이 유효한 우려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독성의 우려 때문에 사용범위에 제한을 두는 것 같다. 일부 국가에서는 허가범위 상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도 블린사이토를 사용할 수 있다.
소아는 대다수가 45kg 미만이기 때문에 체중 제한에 대해서는 TOWER 연구 등 관련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해야만 한다. 다만, 체중 제한과 관련한 우려는 호주, 캐나다, 미국 등과 같이 환자의 체격이 비교적 큰 나라보다는 아시아지역에서 더 클 것이다.
블린사이토를 사용할 때 우려해야 할 이상반응이라면.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싸이토카인유리증후군(CRS)의 발생 가능성이다. 블린사이토가 면역시스템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다 보니, CRS는 블린사이토가 작용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덱사메타손 치료를 통한 전처치가 있으면 CRS의 위험은 관리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신경독성이다. 신경독성 관련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 자체는 매우 낮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의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내용은 뇌와 관련된 신경부작용은 조짐이나 징후가 미세해 사전에 포착하기 쉽지 않다.
뇌와 관련 신경독성이 나타났는 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같은 글자'를 쓰도록 시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글씨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의료진에게 보고를 하도록 한다.
전반적으로 사용경험에 비추어 볼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거나 부작용 때문에 투약을 중단해야 했던 증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해당 환자에서 기존의 치료이력이 블린사이토 치료에 문제되지는 않았나?
-TOWER 연구에서 재발 및 불응성 환자, 치료 후 관해에 도달했지만 재발한 환자 등 3가지 환자군을 대상으로 했지만, 아직 각 환자군 별 하위분석 결과는 없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세포독성항암제 치료에 불응한 환자는 블린사이토에 대한 치료 반응이 좋았다. 또 기존에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경우에도 기존의 치료 이력이 블린사이토 치료에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들 환자들은 이미 한 차례 이식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추후에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경우 이식과 관련된 위험은 있지만, 블린사이토 치료 이력은 이후 이식을 받는 데 저해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결국 TOWER 연구에 참여한 재발, 불응성 및 기존에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후 재발한 환자들 모두 안심하고 블린사이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블린사이토는 고가의 약제임에도 유효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아 국내에서 보험급여를 획득했다. 먼저 사용해본 전문가로서 비용효과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규제기관에서 제약사와 함께 구매가를 산정할 때, TOWER 및 ICT 연구 등의 근거 데이터가 중요시 되는데, 블린사이토의 경우 사실상 유일한 완치요법인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한 '가교요법'으로 사용된다.
환자들이 이식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제요건은 완전 관해로, 일단 완전관해를 달성하면 이식 성공률은 크게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블린사이토를 이용해 관해에 도달한 후 이식으로 넘어갈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얻은 관해를 계속 유지하면서 정상적 삶을 살 수 있다면 비용효과성은 자명하게 입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