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추경예산 편성으로 시작된 소아독감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가 소아독감 NIP를 공식 발표하기 전 이미 제약사들은 백신을 의료기관에 개별 공급을 한 상황이었고 정부는 부랴부랴 물량 확보가 가능한지 파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NIP에 참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의원들이 속출고 있는 것. 소아청소년과만 혜택을 보는 제도라며 과별 이기주의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소아독감 NIP 참여 의원은 4000여곳. 이 중 절반 이상은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이다. 전체 소청과 의원 약 98%가 참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아독감 NIP 홍보 자체가 일선 개원가에 부족해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백신을 확보할 기회마저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A가정의학과 원장은 "영유아 접종을 소청과에서 주로 하지만 내과, 일반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다른 진료과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며 "소아독감 NIP 접종일을 약 일주일 여 앞두고 정부가 발표하기 전까지 다른 과는 전혀 몰랐다"고 토로했다.
이어 "미리 영유아 예방접종을 한 의원은 오히려 난처해졌다"며 "약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약을 구하고 싶어도 이미 공급이 1차적으로 끝난 상황이라 구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B이비인후과 원장은 "소아용 백신은 0.25cc만 써야 하는데 소청과에 우선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과는 백신을 구하지도 못해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특정과 챙겨주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국가 정책이 전문가 의견을 듣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NIP 사업 참여를 위해 성인용 백신 0.5cc를 한시적으로라도 소아 환자에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 C가정의학과 원장은 "관행적으로 성인용 백신 0.5cc에서 절반만 소아 환자에게 주사를 하기도 한다. 실제 성인용 백신에서 절반을 눈금으로 표시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사업이 시작된 만큼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한시적으로라도 이 같은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텐데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사업 참여 기관을 늘려서 환자 쏠림 현상 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료과 이기주의라는 지적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관계자는 "생후 6~12개월의 영아는 특히나 소청과 의사들이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대상"이라며 "독감 예방접종도 엄연히 소청과 의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 "갑작스러운 예산 편성에 백신 가격 민간 수준"
갑작스러운 추경예산 편성에 따라 일부 의료기관들의 불만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는 상황. 실제 질병관리본부는 내년 6세미만 소아독감 NIP 포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질본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소아독감 NIP 문제는 소청과의사회를 비롯해 대한의사협회와도 꾸준히 얘기해오던 부분"이라며 "9월 초 예비비 편성이 결정됐고, 중순 이후 구체적인 안이 최종 확정됐다. 그때는 이미 소아 백신이 일선 의료기관에 다 배분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물건이 배분된 상황에서 어디에 얼마나 배분됐는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사적 계약이 진행된 만큼 파악이 쉽지 않다"며 "그 때문에 올해는 백신 비용도 (약 1만원으로)민간 수준으로 높게 책정됐다"고 덧붙였다.
내년부터는 백신가가 더 낮아질 것이며 참여기관 숫자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질본의 생각이다.
하지만 성인 백신 절반 사용을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안정성 문제로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질본 관계자는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서는 백신 수급에 문제가 있으면 판단해서 쓰라고 위임을 해줬는데 정말 백신 수급이 부족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같은 0.5cc라도 3가와 4가가 있어 헷갈릴 수 있고, 소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중간에 선이 그어져 있는 백신도 3가로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은 성인에게만 쓰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