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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출산 인프라 "수련병원까지 분만 포기하는 현실"

박양명
발행날짜: 2016-11-10 12:11:51

월 20건 분만, 2천여만원 적자…분만 상대가치점수 6년간 제자리

지난해 기준, 96개의 산부인과 수련병원 중 최소 5개 병원은 아예 분만실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련병원까지 분만을 포기할 정도로 출산 인프라가 붕괴되고 있는 것.

산부인과 의사들은 출산 인프라가 붕괴됐다고 진단하고, 낮은 분만 수가와 높은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모성보호를 위한 출산 인프라,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렀다.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과 대한의사협회 주최,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주관으로 이뤄졌다.

최석주 사무총장
주제발표에 나선 산부인과학회 최석주 사무총장(삼성서울병원)은 각종 통계를 근거로 분만 출산 인프라 붕괴 현실을 보여줬다.

최 사무총장은 "학회 조사자료에 따르면 연령이 낮을수록 전문의 취득 후 처음부터 분만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여자가 남자보다 분만을 처음부터 하지 않거나 분만 의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높았다"고 운을 뗐다.

최 사무총장에 따르면 젼국에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은 2004년 1311곳에서 지난해 617곳으로 1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고위험 임산부를 치료해야 하는 종합병원과 수련병원의 분만실 및 산과 전문의도 부족하다. 분만이 가능한 종합병원은 2007년 133곳에서 2014년 90곳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산부인과 수련병원에서도 최소 5개 병원은 분만실 자체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최 사무총장은 "상급종합병원의 분만 포기 현상은 모성사망률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며 "고위험 임산부 치료를 담당할 상급종병의 진료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특히 광주, 충청북도, 제주는 수련병원 산과 전문의가 각각 5명, 4명, 2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출산인프라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 낮은 분만 수가와 높은 의료사고의 위험성이라고 보고 있다.

분만실을 유지하려면 3교대의 분만실, 신생아실, 병동 간호사, 식당 직언, 청소, 세탁직원, 야간당직의사, 마취과의사 등의 인건비를 비롯해 임대료, 관리비, 시설유지보수비, 재료비, 약품비가 필요하다.

최 사무총장은 "현재 초산 28만원 수준의 분만 수가로는 월 20건의 분만을 하는 기관일 때 평균 2300만원의 적자가 난다"며 "중대형 분만병원만 살아남는 생태계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수가'…"분만 수가 현실화 해야"

그렇다면 출산 인프라를 회복하고 저출산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적정 수가 보장과 안전한 분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최 사무총장은 "애완견 분만비보다 낮은 분만 수가를 적어도 분만실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가로 인상해야 한다"며 "분만 상대가치점수는 6년간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제왕절개 수술률이 오히려 증가했다"며 "의료의 질 저하와 신의기술이 적용되기 어려운 문제도 포괄수가제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을 위해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100% 정부 보장, 3000만원 보상액 인상 등의 대책을 내놨다. 고위험 임신 집중치료를 위한 환경도 필요하다는 게 최 사무총장의 주장.

해외 출신장료 정책을 발표한 대한의사협회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도 "출산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 기반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전공의 인센티브제 적용, 분만 관련 수가 개선, 응급진료 및 야간진료비 인상 등의 방안을 내놨다.

수요자뿐만 아니라 공급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고려하는 정책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범국가 대책도 필요, 그 대안은?

물론 범국가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최 사무총장은 "저출산 극복은 임신, 출산, 보육, 교육, 결혼, 취업, 주거 등 사회 전반적 문제들에 대해 국가와 범 사회적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저출산 문제를 '불법낙태'와 연결지으며 국가의 대책을 요구했다.

김 공동대표는 "저출산 현상과 임신중단 이유는 연결돼 있다"며 조건의 변화, 인신 전환 없는 저출산 대책은 가능하지 않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결정이 부담이나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낙태죄를 비범죄화하고 미혼모, 청소년, 장애인 지원 정책을 강화하며 안전한 출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문희 한국보육진흥원장은 아이를 기르기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 원장은 "우리나라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에 대한 지원체계가 보육서비스 지원에 집중돼 있고 이 외 정책은 미약하다"며 "보편적 현금지원제도는 실시하고 있지 않고 육아휴직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육아휴직 정책 대상 확대 ▲일가정양립 지원정책과 관련성 강화 ▲거점어린이집 운영 ▲국공립과 직장어린이집, 공립유치원 같은 공공인프라 확대 ▲보육교직원 보수교육 지원 강화 및 교육명령제 도입 ▲아동수당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산부인과의사회 이기철 부회장은 "인구 정책에서 결혼, 임신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둘째, 셋째 출산을 쉽게 하는 정책이 비용도 적게 들고 더 효과적"이라며 "성상담, 성치료 관련 진료를 급여화해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토론회에서 제시된 다양한 방안들에 대해 긍정적 검토를 약속했다.

보건복지부 우향제 출산정책과장은 "저출산 문제의 근본대책 중 하나가 출산인프라 구축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자연분만 수가 인상, 고위험 분만 등에 대한 수가가 신설되고 있고 관련 수가를 추가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왕절개 포괄수가제에 대해서도 "의료공급의 효율성, 의료질 향상을 위한 질 개선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