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병·의원
  • 대학병원

"연명의료법, 해결할 쟁점 산더미인데…잿밥 싸움만"

발행날짜: 2016-12-08 05:07:13

허대석 의료윤리학회장, 연명의료관리기관 지정 둘러싼 경쟁에 일침

"환자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웰다잉을 위한 선언적 입법인데 징벌법 법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1997년 보라매사건(뇌출혈로 중환자실 입원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한 의료진이 살인죄로 고발, 대법원이 살인방조죄로 판결한 사건)이후부터 호스피스 제도를 주장해온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한국의료윤리학회장)는 7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법 제정 이후 후속논의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제기했다.

특히 최근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누가, 어디서 맡을 것인가에 대해 쟁점화 되는 것을 두고 강하게 우려했다.

"연명의료법 본질은 어디가고 '관리기구'에만 관심"

법에 따르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와 중앙호스피스센터 2개의 조직을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부터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다수의 기관이 서로 맡겠다며 나서고 있는 상황.

이를 두고 허대석 교수는 "법의 본질은 뒤로 한채 잿밥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명의료 규정에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에선 현재 논의 중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가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 수준의 법에선 해당 기관이 필요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호스피스센터 내 별도 조직으로 두면 충분하다"면서 "실제로 외국의 사례에서도 두개의 별도 조직을 두는 경우는 없다. 두 조직을 하나로 통합, 운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등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는 필요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선언적 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한 한국의 경우 관리기관을 두는 것은 일종의 '자리 만들기식' 논리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이런 식의 논의가 자칫 또 하나의 규제가 될까 염려스럽다"라면서 "관리기구는 법을 시행하는데 있어 제도적, 재정적인 지원기관이 돼야하는데 일각에선 징벌적 규제기관으로 법을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센터의 경우 말기환자가 중환자실 대신 호스피스로 가는 것을 유도하고 이에 필요한 수가 이외 인력, 전국적인 네트워크망 구축하는 등 조직이 필요한 사업적 영역이지만 연명의료는 이와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런 의미에서 연명의료를 위한 별도조직을 만드는 것은 넌센스라고 봤다.

그는 "연명의료는 선언적 의미의 입법으로 의료현장에서 적용하면 그만인데 여기에 사전의향서 등 각종 서류를 만들고, 전문의 인력기준을 설정하는 등 불필요하고 복잡한 규제만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
환자 가족이 연명의료결정서 작성하면 불법?

허 교수가 생각하는 가장 시급한 논의 과제는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 연명의료결정서를 작성할 수 없다는 점.

실제로 법조계에선 연명의료결정법을 보수적으로 해석, 관행적으로 해오던 말기암 환자에 대한 환자가족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불법적 요소가 높다고 보고 있다.

법 제2조, 제8조 2항에 따르면 환자가족 2명 이상이 요청하는 경우 연명의료 선택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긴 반면 제8조 3항에는 해당 환자에게 이를 설명하고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 연명의료결정서를 작성할 수 없게 돼 있는 셈.

허 교수는 "연명의료결정의 실질적인 상황은 대부분 이 경로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면서 "가족이 대리결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것이 불법적 의료행위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는 물론 의협, 의사 및 의료기관 모두 이에 대한 준비를 안하고 있으며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말기암환자 임종 2~3개월 전에 중단하면 불법?

또한 그는 말기와 임종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도 논의가 시급하다고 꼽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결정은 '임종과정'즉, 임종 2~3주전 즈음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를 법조계에선 보수적으로 해석, 말기암환자의 경우 임종 2~3개월 전에 항암제 치료를 중단하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법 시행 전에는 말기암 환자 혹은 가족의 요구로 임종 2~3개월 전에 항암치료를 중단할 수 있던 게 오히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제한을 받게 된 셈이다.

허대석 교수는 "말기환자에 대한 항암제치료 및 혈액투석을 중단하면 불법이 되는 법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연명의료관리기관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싸울 게 아니라 의료 현장에 닥칠 수많은 쟁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해야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