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과 처치, 기능행위에 8500억원을 투입해 외과계 원가보상률을 90%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는 지난 2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제2차 상대가치개편 추진계획안을 보고했다.
총 8500억원은 검체와 영상 등 검사 관련 진료과 수가인하분 5000억원과 건강보험 재정 3500억원을 합친 액수이다.
복지부 보고안건 상정 전까지 병리과와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검사 관련 진료과 수가인하가 의료계 쟁점이었다.
하지만 건정심 보고 후 상황은 돌변했다.
건강보험 재정 투입분 3500억원을 회수하겠다는 복지부 입장이 공식화됐기 때문이다.
회수 액수와 방법, 시기 등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년 3월 건정심 의결안건 상정까지 공급자와 가입자, 공익 등과 논의를 지속한다는 복지부 입장이다.
이러다보니, 진료과 간 불균형 해소와 고난도 술기 원가보상률 제고라는 제2차 개편방안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체와 영상 수가인하분 5000억원은 별도로 하더라도 건강보험 투입액 3500억원을 의과에 줬다 다시 뺏는 웃지 못 할 '촌극'이 연출된 셈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료단체가 닭짓했다', '아랫돌 빼서 웃돌 막기' 등 비판과 푸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 투입분 3500억원을 환수해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지난 2014년 제2차 상대가치개편 방안을 논의한 상대가치기획단 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획단 위원들은 상대가치점수 조정으로 진료과 간 불균형 해소라는 대전제에 찬성했으나, 재정 투입 없는 점수조정은 의미가 없다는 의료계 의견을 수용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투입된 재정은 환산지수(수가계약)를 통해 환수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복지부 정통령 보험급여과장은 "과거 상대가치기획단 회의 결과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되, 향후 환산지수를 통해 환수한다는 단서가 붙였다"면서 "규모와 방법, 시기 등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추후 의료계와 가입자 등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환수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투입 분을 전액 환수하기 위해서는 4년 동안 매년 환산지수 약 0.24% 차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단체가 내년 5월말 유형별 환산지수 협상에서 일정부분 인상률 삭감을 전제로 건보공단과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아직 3500억원 전액 환수로 못 박고 있지는 않다.
상대가치점수 조정에 따른 빈도증가율이 높은 유형에서 낮은 유형으로 이동하면 건강보험 지출 감소와 더불어 상대가치 영향을 받지 않은 요양병원과 포괄수가 등 정액수가 대상 의료기관은 환산지수 차감으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정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지만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제2차 상대가치개편 방안 논의에 처음부터 참여한 공익위원인 연세대 정형선 교수(건정심 소위원회 위원장)라는 '복병'을 만났다.
정형선 교수는 상대가치기획단에서 논의한 건강보험 재정투입의 전제조건을 상기시키면서 총점 고정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손실이 예상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별도 환산지수 계약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복지부가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과거 상대가치기획단 합의를 져버릴 수도 없고, 환산지수 차감을 통한 전액 환수 시 상대가치 개편 효과 퇴색과 의료계 반발을 간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제2차 상대가치개편 방안만을 접한 의사들은 '복지부 장단에 놀아났다'는 비판 목소리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의료단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의료계 관계자는 "상대가치기획단이 환수에만 합의했지만, 환수 규모와 시기, 방법은 정한 것이 없다. 전액 환수는 불합리한 발상으로 상대가치개편 기대효과가 퇴색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복지부가 내년 3월 건정심 의결안건 상정 전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상대가치개편은 총점 고정 원칙을 고수해 진료과 간 갈등을 유발하면서, 환산지수 협상 시 원가보상을 요구하면 상대가치점수에 이미 반영됐다는 모순된 논리를 펼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