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에서 의사가 되려면 적성검사와 면접에서 반드시 통과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에는 특별한 소명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회나 국가가 의사들이 국민에게 공공서비스 제공을 바란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래서 의대 적성검사를 통해 사업과 어울리는 사람에게는 불합격 통지서를 보낸다고 한다. 면접에서 돈을 벌고 싶다고 하면 경영학과에 가라고 하고, 명예를 원한다고 하면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권한단다. 의사는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사에 대한 생각이다.
만약 메르스나 말라리아 같은 감염질환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의사가 제일 먼저 그 현장에 도착해 원인을 파악하고, 그 질환에 대한 치료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어떤 지역에 원인 미상의 질환이 발생했을 때도 의사나 간호사, 의료기사는 그 현장에 가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료업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 중에 미국에서 학교 성적은 좋은데, 의대 시험에 탈락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의사가 학교성적만으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중국에서도 의대는 가장 머리가 좋은 수재나 천재가 들어가지만 머리만 좋다고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도 좋지만 자기가 치료 할 환자에게 아주 친절하고 공공서비스 개념이 필요하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따뜻함과 친절함, 공공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의사라는 직업으로는 앞으로 단순히 '돈'을 벌기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수가가 너무 낮아 직원 월급 주기도 힘들고, 해마다 인건비는 늘어나고, 직원 구하기도 힘들다. 또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보험사 등은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의사를 현지조사, 검찰조사, 세무조사를 통해서 행정처분, 면허정지, 벌금, 감옥에 보내는 일을 나서서 하는 환경이다. 모든 제도가 여러 가지 이유와 법으로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사회가 원하는 공공의료를 하는 가난한 의사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 군인과 의사만큼 깨끗하고, 정직하고, 소심하고, 준법정신이 강한 직업군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 사회가 왜 의사에게만 그렇게 엄격하고 독하게 구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한다. 의사에게 치료받지 않고, 의사 도움을 안 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보는데…
대한민국에서 지금의 의료보험 제도로는 병의원이 돈을 벌기가 어렵다. 그동안 잉여가치로 병원을 키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병원 시설이나 기계에 투자할 돈을 벌기가 점점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대형병원 중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병원이 서울아산병원인데, 흑자 이유가 진료 때문이 아니라 장례식장을 비롯해 식당가, 커피숍 같은 편의시설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큰 병원들도 모두 적자인데 의원급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렇게 계속 적자가 누적된다면 앞으로 병의원은 영세해 질 것이고, 의료수준도 낮아질 것이며, 의료진의 질도 낮아질 것이다. 의료에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나라 의료는 30년 정도 후에는 낙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만큼은 바라지도 않지만 병의원이 이익을 내는 합법적 구조를 용납하는 제도나 법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의사가 편범을 쓰지 않고도, 소신 있는 진료만 해도, 범법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원한다.
의사가 될 때는 모두 선량한 의도나 소명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우면서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된 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를 잘 치료하고,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런 소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과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의사는 일단 돈을 벌면 일정수준의 지출도 필요 하니까 제일 먼저 차를 바꾼다. 그 외에는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해서 더 좋은 기계를 사는 등 병원시설에 투자한다.
내가 아는 의사 중 재테크에 능숙한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의사들이 강남에 사는 이유는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사에게는 자식의 성적이 중요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사는 사업을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예체능을 하는 자식을 원치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직업, 특히 의사로 키우고 싶어 한다. 의사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모든 의사는 환자를 보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의사나 혹은 모든 직업의 사람들이 소신껏 살고, 그래도 밥 먹고 살고, 사기꾼이나 도둑놈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