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 개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뿌리' 논쟁이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국가가 세운 병원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공공의료'를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올해부터는 아예 연세대 창립기념식을 제중원 개원 기념일에 맞춰서 열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설립자 에비슨과 알렌이 제중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뿌리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
제중원 설립일은 1885년 4월 초.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은 지난 3일 제중원 132주년 기념식과 함께 학술강좌를 개최하며 '제중원=국립병원'이라는 공식을 분명히 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성수 교수는 "중세 시대에는 국가가 의료의 생산과 유통 전 부분에 관여했다"며 "국가의 개입이 공공선(公共善)의 획득이었다"고 말하며 제중원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백재승 의학역사문화원장도 "서양 의학 도입을 통한 의료 선진화와 전통시대 공공의료 계승이 제중원의 사명"이라며 "132년이 지난 현재 급변하는 의료환경 속에서도 국공립병원이 반드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숙명적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세대는 매년 5월에 열던 창립기념식을 아예 제중원 개원 기념일에 맞춰 4월 두 번째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연세의료원 전시관에서는 제중원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13점의 역사기록화 전시회도 열린다.
세브란스병원의 주장은 제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국권이 추락하면서 병원 운영 지원이 부실해지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며 "제중원의 두 번째 도약기를 이끈 이가 바로 1893년 부임한 에비슨"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에비슨은 제중원 운영 정상화를 위해 운영권을 미북 장로교 선교부로 이관해 완전한 선교 의료기관으로 재편하고 미국에서 만난 세브란스에게 병원 설립기금을 기부받아 새로운 병원(세브란스기념병원)을 건립했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은 1904년 새로 지어진 세브란스기념병원이 제중원의 정신을 그대로 승계한 증거로 '세브란스병원 정초식 초청장'을 꺼냈다. 초청장에 제중원은 곧 세브란스기념병원이라는 말이 들어있다.
초청장에는 '남대문 밖에 새로 짓는 제중원(세브란스기념병원) 기초의 모퉁이 돌을 놓겠사오니 오셔서 참여해 주시기 바라옵니다'라고 나와있다.
박창일 연세대 재단이사는 "연세대 태동의 핵심인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은 기관"이라며 "제중원이 오늘의 연세대를 든든하게 바치는 정초석이기에 제중원 개원일을 기려 창립기념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