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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선택 기로에 있다면? "사람을 살리는 일인가"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7-04-11 12:00:56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16)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16)

살다보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상당히 많다. 이 일을 할 것인가, 저 일을 할 것인가? 이 아이템을 도입해야 하나? 이 기계를 사야 하나? 이 수술을 해야 하나, 저 수술을 해야 하나? 이 길이 맞나, 아니면 저 길이 맞나? 하루에도 여러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의사로서 살다보면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다. 어떤 순간에는 아무도 대신해 주지 못하고, 나 혼자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럴 때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 환자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실력이나 도덕성은 아주 중요하다.

몇 년 전 동네 병원에서 지방흡입술을 하다가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장 파열이 원인이었다고 들었다.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X-ray를 찍어보고,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환자가 사망하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럴 때 의사 체면이 구기는 것은 순간이고,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영원하다. 환자를 종합병원에 후송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인가, 환자를 해치는 일인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면 당연히 환자를 신속하게 종합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최악의 상황도 생각하고, 환자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

수년전, 종아리 퇴축술로 환자에게 발목이 처지는 현상(Foot drop, 족하수)이 와 TV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해당 수술은 종아리의 아킬레스 건 근처 신경을 알코올로 녹여 종아리의 볼륨을 줄이는 수술이었다. 즉 신경을 손상시키는 수술이다. 한 때 강남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수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수술은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수술이다. 즉 반드시 해야 하는 수술보다는 삶의 질을 위해 미용목적으로 하는 위험도가 있는 수술이다.

또 환자가 상담을 왔을 때 환자가 원하는 것이 나의 능력에 부치는지, 환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 판단을 해야 한다. 환자가 돈을 쓰겠다고 왔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환자를 보내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를 의료사고가 날 경우를 생각한다면 환자의 목숨이나 안전을 담보로 모험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의사는 무슨 일인가 할 때 상당히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 한다. 그 결정을 한 다음 그 수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한다. 외국에도 가 보고, 다른 의사들의 수술도 보러 가고, 그리고 나서 그 수술을 할 것인지, 어떤 규모로 할 것인지,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모두 심사숙고한 후 시작한다.

얼리 어댑터(Early adaptor)인 의사에게는 그 수술이 우리나라에서 하는 첫 수술이거나 첫 시도일 수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새로운 수술을 하나도 할 수 없고, 어떤 새로운 처치도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처음에는 다른 의사가 하는 것을 여러 번 본 후 다른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한다. 특히 위험한 수술일수록 더 신중하게 하고,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서 한다. 그런데도 의료사고는 발생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가끔 물어보는 하현철 원장이 있다. 인턴 동기인데 똑똑하고 현명하다. 그는 일반외과 의사인데, 수술할 때 보면 정말로 신중하게 수술 한다. 쌍커풀 수술을 몇 시간씩 하는 걸 보고 '헐~' 하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렇게 신중하게 하니까 수술의 실수가 적다. 그리고 환자가 그런 의사의 신중한 태도를 보고, 수술의 결과가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별 일 없이 지나간다.

내가 무슨 기계를 살 지, 새로운 수술을 도입할 지, 내가 무슨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면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면 하지 마라. 사람에게 이로운 일이면 하고, 사람에게 해로운 일이면 하지 마라. 재건하는 수술이면 하고, 파괴하는 수술이면 하지 마라. 즉 수술을 할 때 재건 수술이나 치료(reconstructive surgery or procedure)인가 파괴적 수술이나 치료(destructive surgery or procedure)인가 하는 것을 보고 뭔가를 파괴하는 수술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술 후 후유증이 안 남는 수술이면 하고, 후유증이 남는 수술이면 하지 마라. 후유증이 영구적일 수 있다면 절대로 하지 마라."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작은 민들레 홀씨가 시궁창에라도 꽃을 피운다. 그러니 뭔가 선한 것을 내 놓아야 한다. 경제의 논리로 말하자면 이익을 따라야겠지만 진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성, 문화, 기술, 선함이 있어야 한다."

오늘 무슨 일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이 행동이 사람을 살리는 일인지, 해하는 일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