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부작용으로 실명까지 한 환자가 해당 감기약을 만든 제약사, 그에게 감기약을 판매한 약사, 감기약 부작용을 진단하지 못한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감기약 부작용을 짚어내지 못한 병원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었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이원형)는 최근 감기약을 먹고 부작용으로 스티븐존슨증후군이 생긴 환자 김 모 씨가 제약회사, 약사, 부산 K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씨는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아세트아미노펜 주성분의 '스파맥 정'을 이틀 동안 복용했다. 제품 안내서에는 약 복용시 주의사항이 들어있다.
사흘 후, 김 씨는 K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약을 먹은 후부터 근육통, 얼굴 주위 붓는 경향, 인후통, 무릎 안쪽으로 가려움증을 동반한 발진이 있다고 증상을 설명했다. 김 씨의 체온은 38.1도.
문진을 하는 인턴에게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말했으며 당뇨병, 고혈압 같은 과거력은 없다고 했다.
이에 인턴은 김 씨 증세를 급성 상기도 감염이라고 보고 클로낙 주, 페니라민 주사를 정맥주사하고 페니라민 정, 타세놀 이알서방정, 소론도 정, 타가메트 정, 코데날 액을 처방했다. 이 중 타세놀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다.
김 씨는 집으로 돌아와 K병원 인턴이 처방해 준 약을 먹은 날 저녁 P의료원 응급실을 다시 찾았다. K병원에서 치료 후 열, 인후통, 전신 가려움증 증세가 심해진 것. 다리쪽 발진과 가려움증도 시작됐고 상체쪽으로 심해져가고 있다고도 했다.
P의료원 의료진은 김 씨에 대해 디크놀 주, 페니라민 주사, 라니티딘 주를 정맥주사하고 아모크라, 케토라신, 스티렌을 처방했지만 김 씨의 증세는 더 심해졌고 급기야 의료진은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의심하고 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현재 김 씨 상태는 2012년 2월 기준, 양쪽 눈 모두 실명 상태다.
법원은 제약사의 제품 안내서에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라는 전문적 의학용어만 없을 뿐이지 부작용을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 기재돼 있고, 약사도 복약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스파맥을 판매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K병원 의료진이 문진을 소홀히 해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잡아내지 못한데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을 또 처방한 것은 과실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응급실 내원 당시 호소한 증상과 함께 감기약 복용 사실을 들은 이상 의료진은 약물에 의한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복용한 약 종류, 주성분, 복용량, 복용 시기, 복용 사이 간격, 함께 복용한 약의 존부 등을 자세히 문진했어야 함에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아세트아미노펜 부작용으로는 안면 부종, 두드러기 등이 있고 이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과 달리 비교적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응급실 의료진이 기본적인 문진의무를 다했다면 부작용 가능성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적어도 스파맥과 주성분이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약제를 처방하는 조치는 피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
재판부는 "스티븐존슨증후군은 빨리 진단하고 원인 약물을 바로 중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최선인 치료법"이라며 "조기 치료를 통해 피부 침범과 점막의 괴사, 병의 중증도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 의료진이 아세트아미노펜 부작용 발생을 염두에 두고 김 씨에게 약물투여 중단 등 적절한 조기 처치를 시행했더라면 김 씨의 예후가 양안 실명이라는 중증의 사건 장해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