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끼리도 비밀유지에 따라 약가를 공유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러한 가격만 가지고 약가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 신약의 약가가 OECD 회원국 평균가격의 '반값'에도 못미친다거나, '한국은 급여기간이 600여 일 정도로 300일인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의 주장에 최근 복지부가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은 "(OECD 약가의 경우에도) 이중가격제가 일반화된 외국에서 실제 약가를 알수 있는 것은 회사밖에 없다"면서 "이외 사례에서도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정리가 돼야 하는데, 한 번 나왔던 자료가 재탕되면서 결국엔 정부정책을 문제 삼는다"고 강조했다.
쟁점은 KRPIA가 2016년 4월 내놓은 '제약산업발전과 환자접근성 향상을 위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있다.
KRPIA측은 우리나라 신약의 약가 수준은 OECD 회원국 평균가격의 45% 수준으로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주장하는 한편, "2008년부터 2015년 한국에서 건강보험급여를 신청했으나 등재되지 못한 66개 품목에 대해 2015년 A7국가의 조정 최저가를 기준으로 2016년 1월 1일자로 급여된다고 가정했을 때, 2020년의 누적 재정 영향을 분석한 결과 재정 증가폭이 1.0%(약 1600억원)으로 산출된다"고 밝혔다.
또 신약으로 인해 기존 의약품 사용이 대체되는 상황을 가정한 경우 재정 증가폭이 0.75%(약 1200억원)으로 집계된다고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RPIA가 내놓은 2016년도의 해당 연구가, 앞서 공개한 2014년도 연구를 그대로 가져와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2014년 당시 연구를 진행했던 성균관약대 이의경 교수도 본 연구에서 정확한 약가를 알지 못해 일괄적으로 20% 수준을 깎아서 약가를 적용했다는 한계를 밝히기도 한 것.
A7국가 조정 최저가와 관련해, 미국의 경우 급여시스템이 없어 참조 가격이 과잉책정될 수 있다는 의문도 제기된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박지혜 행정사무관은 "A7조정평균가는 선별등재하기 전에는 가격자체로 썼다면 지금은 참조가격이다. 경제성평가면제제도가 생기면서 최종가는 아니지만 A7조정 최저가를 평가가격으로 참조하는데 국가, 산출방식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단에서는 OECD 가격을 보게되고, 심평원은 참고를 위한 가격인데 실상 미국은 유럽과 가격 차이가 많다. 어떻게 하는게 참고의 취지에 맞느냐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더해 급여기간이 600여 일 정도로 외국에 비해 지체된다는 주장에 통계적인 오류도 지적됐다.
곽명섭 과장은 "600일이라는 부분을 두고 외국과 국내 사례는 100%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비교 기준을 명확히 하고 동등한 상태에서 평가를 해야하는데, 실제 외국은 약의 허가단계와 보험급여 단계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명확히 정리가 안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신청주의'로서 식약처 시판허가를 받은 후 급여 신청을 하는데 600일 정도가 걸린다고 얘기하지만, 이 기간 안에는 급여신청을 하지 않은 기간까지 포함된다"면서 "심지어 어떤 제약사는 글로벌 경영전략 상 한국의 급여시기를 조정할 수 있어 급여신청하지 않은 기간까지 더해지는데, 이러한 부분은 정부나 급여 관계자가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혁신신약 약값 고공행진…"약가 협상, 한국만의 문제 아니다"
세계보건기구 정책포럼 "혁신적 가치 반영 약가 책정 실현불가"
출시 신약들의 약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제약사와 정부의 약가협상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의약품의 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약가의 투명성은 보장하는 게 맞다는 데 전 세계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입을 모으는 것.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공정약가 책정과 관련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의약품의 경우라도) 제약사측이 원하는 혁신적 가치를 반영한 약가 책정은, 실현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고 밝혔다.
WHO 필수의약품 국장인 수잔 힐(Suzanne Hill) 박사는 "혁신 신약의 비싼 약값 문제는 심각한 글로벌 이슈로까지 부상하고 있다"면서 "세계보건기구의 필수의약품 목록에도 다양한 약들이 포진해 있지만, 이들의 고비용 논란은 결국 환자 접근성을 제한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각국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공정약가정책 포럼'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해외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WHO 한 관계자는 "동일 약물이라도 국가별로 약가 설정 방법을 모르고, 또 서로 다른 약가가 책정되는 것은 공정 약가 설정에 장애물이 된다"면서 "보건당국은 신약의 약가 책정이나 신약 연구 아젠다 세팅을 두고, 지금보다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박지혜 행정사무관은 "국제회의 가보면 작지만 잘사는 나라인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브루크 등은 국가 신약 문제가 커지다 보니 공동입찰 등으로 구매력 자체를 높여서 제약사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는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며 "이는 보험 재정이 한정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별로 약가제도와 수준, 상황이 다르지만 신약의 고가화가 되는 것에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