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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미래’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정희석
발행날짜: 2017-06-05 00:00:57

ICT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예방 중심·의료비 절감 ‘정밀의료’ 구현

비트컴퓨터 전진옥 대표가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열풍을 넘어 광풍 수준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 IBM 왓슨(Watson)과 구글 알파고(AlphaGo)로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을법한 4차 산업혁명, 과연 헬스케어와 의료영역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지난달 29일 제10회 의료기기의 날 세미나와 이달 2일 한국에프디시법제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각각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연구부원장과 비트컴퓨터 전진옥 대표·가천길병원 이언 교수가 연자로 나서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헬스케어가 예방 중심 개인맞춤형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를 어떻게 실현할지 전망했다.

이를 토대로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온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더 나아가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짚어봤다.

‘어느덧 현실로’ 4차 산업혁명…디지털 헬스케어 부상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다보스 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의 진화”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과 함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와 같은 정보가 결합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사람과 사물, 공간 등이 인터넷을 매개로 연결돼 정보의 생성 수집 공유 활용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초연결사회’로의 진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여러 산업군 중 헬스케어와 의료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IBM에 따르면 개인이 일생동안 일상생활과 환경적·사회경제적 요인을 통해 생성하는 의료정보는 1100테라바이트(Terabytes·약 1조 바이트)에 달한다.

책으로 환산하면 3억권 이상 분량이다.

여기에 각종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한 유전체 데이터 6TB와 의료기관에서 수집되는 의료데이터 0.4TB까지 합치면 그 양은 더 많아진다.

이처럼 개인의 운동·식이·영양·환경 등은 물론 생체·유전체와 의료기관 진료정보 등 각종 정보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집 ▲저장 ▲분석·가공되고 인공지능을 통해 개개인의 맞춤화된 알고리즘에 따라 예방·진단·치료·사후관리 등 ‘정밀의료’를 실현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급부상하고 있는 정밀의료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구현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원격의료 등 ICT와 융합된 디지털 기술을 통한 건강관리 및 의료서비스를 총칭한다.

기존 치료 중심에서 예측 가능한 예방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 질과 서비스 향상은 물론 의료비 절감의 해결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정보 처리에 의해서(Information-driven) ▲증거에 기반해(Evidence-based) ▲성과 중심으로(Outcome-driven) ‘의료 생태계’를 변화시켜 의료비 감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건강보험회사 애트나(Aetna) CEO는 “헬스케어 시스템은 매년 우리가 지불하는 의료비의 30%에 해당하는 765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낭비하고 있다”며 의료비 절감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교수는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가 정밀의료에 관심을 두고 투자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ICT 발달에 따라 아직 제한적이긴 하나 기존과는 다른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개발돼 현실에 적용되고,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증명된 정량적 데이터를 토대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정의와 범위. 전진옥 대표 발표 자료 중 발췌.
이어 “그 연계선 상에서 주요 국가 정책 당국자 및 의료계는 ICT와 긴밀하게 융합해온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질과 서비스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을 줄임으로써 환자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제고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밀의료 실현 ICT 핵심 기술 ‘빅데이터·클라우드’

기존 사후치료 방식에서 예방 중심 개인맞춤형 정밀의료 실현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ICT 기술과 디지털 헬스케어와의 직간접적인 융·복합이 필수적이다.

이 가운데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는 ICT 핵심 기술이다.

개인의 의료기관 진료정보뿐 아니라 유전체 정보 및 건강정보(Life Log) 등 다양한 정보가 통합·수집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도출되는 정밀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앞서 IBM는 전 세계 기준 1만6000곳의 병원이 환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490만명의 환자들이 2016년까지 원격검진장치를 사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의료기기는 초당 1000건, 하루 8만6400건의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정부가 나서 개방형 의료 빅데이터 포털서비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의료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홈페이지와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을 통해 주요 의료 통계, 환자 의료 이용, 질병·행위별 의료 통계, 의료자원 등 총 118종 153개 항목에 대한 조회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보건의료 빅데이터 기술과 활용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뒤쳐져있다.

국내 보건의료 빅데이터 기술력은 미국(100점)과 비교했을 때 68.2%에 불과하다.

빅데이터 활용수준 또한 미국(100점)과 비교해 61.5점에 그치고 있다.

비트컴퓨터 전진옥 대표는 “4차 산업혁명 근간은 결국 데이터 수집·저장·분석을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에서는 빅데이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빅데이터 활용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약 30%에 불과한 현실”이라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기술과 법·제도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등을 활용한 의료와 산업의 융합을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 클라우드시장 성장세…서비스 상용화 활발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의료 ‘클라우드’ 도입이 요구된다.

클라우드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중앙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인터넷으로 접속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

‘Fast Follower’ 한국과 달리 ‘First Mover’ 미국 일본에서는 의료 클라우드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만 하더라도 의료 데이터에 대한 높은 보안 수준 준수를 요구해 클라우드시장이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 등이 정보보안 및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엄격한 법 규정인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건강보험 이전 및 책임법) BAA(Business Associate Agreement·비즈니스 파트너 계약) 체결 및 규정 준수를 약속하고 클라우드시장에 뛰어들면서 관련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의료 클라우드시장은 2013년 9억300만달러에서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2020년까지 3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업계 또한 다양한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있다.

미국 Practice Fusion社는 2014년 5월 ‘Insight’ 서비스를 런칭했다.

이 서비스는 실시간 수집되는 미국 내 의료기록 빅데이터 및 관련 통계를 무료로 공개한다.

익명화된 DB를 기반으로 미국 전역에서 어떤 질병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또 특정 약이 특정 인구에 대해 얼마나 어떻게 처방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빅데이터를 실시간 제공하는 것.

현재 8100만명 이상 환자 기록을 보유하고 11만2000명 이상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역시 전자의무기록과 의료영상을 클라우드로 제공하는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 컨설팅회사 시드 플래닝에 따르면, 일본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시장은 2013년 718억엔에서 매년 25% 성장해 2020년 1928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확대는 개인 진료정보 저장과 활용을 위한 제도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0년 환자 진료기록 등 의료정보를 의료기관 내 서버가 아닌 외부 데이터센터 저장을 허용했다.

이를 통해 민간사업자들은 외부 데이터센터에서 의료정보를 관리하고 인터넷을 통해 활용하는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더불어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재해지역 많은 환자 진료기록이 손실된 이후 그 대책으로 의료 클라우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의료 클라우드서비스는 대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후지쓰는 2013년 1월 의료기관 대상으로 재택 의료·개호지원서비스 ‘왕진선생’(往診先生)을 선보였다.

NEC는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지역 진료소 전자의무기록과 의료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진료정보 공유·클라우드 활용 걸림돌 걷어내야

국내에서 클라우드는 다양한 산업군에 적용됐지만 예외적으로 의료분야에서 만큼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실제로 국내 전자차트(EMR)·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업체가 클라우드 기반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지만 법적 한계에 부딪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개인정보에 대한 높은 보안 수준 요구와 환자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내 서버에만 저장토록 강제한 의료법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진료정보 공유 및 외부 저장 관련 법 조항. 전진옥 대표 발표 자료 중 발췌.
국내 의료기관 디지털정보화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의료기관 간 환자 진료정보 교류는 여전히 아날로그 형태에 머물러있는 이유다.

과거 의료법 제23조, 시행규칙 제16조 전자의무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EMR)은 반드시 병원 내 서버에 보관·저장토록 강제했다.

당연히 U-Clouding 서비스는 불가했다.

하지만 2016년 2월 5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전자의무기록의 관리·보존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에 관한 기준’에 관한 고시 제정을 통해 2016년 8월 6일부터 의료기관 의무기록의 외부 보관이 가능해졌다.

클라우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물꼬가 트인 셈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다.

클라우드를 통해 다양한 진료정보를 수집·저장할 수는 있지만 정작 이를 열람해 활용할 수 있는 ‘기록 열람’이 가로막혀 있었던 것.

의료법 제21조는 기록 열람과 관련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오프라인 상에서 제3자 대리열람은 인정하나 유무선 통신 열람을 불허하는 것이기 때문에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활용의 원천적인 차단을 의미한다.

비트컴퓨터 전진옥 대표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보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시 제정을 통해 환자 의무기록의 외부시설 저장이 가능해졌지만 유무선 통신으로 기록 열람을 할 수 없다면 결국 데이터 활용이 불가능하고 의료 클라우드 또한 활성화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까지 클라우드(외부) 보관 의무기록 열람 범위를 유무선 통신 방식으로 확대 허용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관련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환자 개인정보에 대한 철저한 보안과 정보보호는 그 어떤 산업적 이익보다 우선돼야 할 가치다.

하지만 개인정보의 저장 수집 활용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와 통제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구현되는 정밀의료 실현에 분명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미 시작된 미래’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세계 각국이 정밀의료에 앞 다퉈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예방 중심 개인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과 이를 통한 의료비 절감에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의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ICT 기술 발전과 디지털 헬스케어 활용이 법적 제도적 장애물 때문에 세계 각국보다 더 이상 뒤쳐져서는 곤란한 이유다.

다보스 포럼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렇게 예측했다.

“Fast Follower 전략도 통하지 않을 만큼 창의성을 갖춘 선두그룹과 후발주자 간 격차가 심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