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플이 아이폰으로 개인 의료정보를 모으는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 헬스IT 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애플보다 앞서 개인 의료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융·복합 신산업에 대한 보수적인 국내 정서와 법적 제도적 한계 때문에 관련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이기 때문.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산업부가 선제적 대응에 나서 이미 2015년 산학연 컨소시엄을 꾸려 개인건강기록(Personal Health Record·PHR) 플랫폼 사업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PHR은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EMR)을 비롯해 IoT(사물인터넷) 헬스케어기기로 측정된 혈압 혈당과 같은 건강데이터와 웨어러블기기에서 생성되는 활동량 등 라이프로그(life-log), 유전체데이터 등 우리 몸이 평생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총칭한다.
사업단은 3개년 계획을 세워 국내에서 상용화된 라이프시맨틱스 PHR 플랫폼 ‘라이프레코드’(LifeRecord)에 대한 고도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질병 분석 및 예측시스템인 ‘아데니움’(Adenium)을 탑재하고 PHR을 분석해 ▲암 재활 ▲호흡 재활 ▲영유아 성장 케어 등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서비스를 개발해 분당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등 대형병원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핵심 솔루션 ‘라이프레코드’는 클라우드 기반 PHR 플랫폼으로 지난해 의료법 시행령 개정으로 의료기관들이 자체 보관해 온 EMR을 외부 클라우드에 보관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사업단 주관사이자 라이프레코드 개발사 라이프시맨틱스 송승재 대표는 “라이프레코드는 각 의료기관에 흩어진 EMR을 비롯해 서로 다른 IoT 헬스케어기기와 애플 헬스킷, 구글 핏, 삼성 S헬스 등 글로벌 디지털 헬스 플랫폼 건강데이터까지 다양한 국제표준 기술로 연동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프레코드는 특히 개인 스스로 자신의 EMR뿐만 아니라 라이프로그 등을 클라우드에 수집 저장해 관리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외부 헬스케어서비스 사업자(3rd Party)에게 API(데이터와 서비스 연계)를 지원한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 PHR 플랫폼 라이프레코드가 상용화 및 활성화되기까지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국내에서 라이프레코드와 같은 PHR 플랫폼으로 개인이 자신의 PHR을 통합 관리하고 필요할 때 활용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는 EMR의 외부 클라우드 보관이 허용돼 의료기관끼리 전자적으로 진료정보를 교류하는 시대인데도 환자가 자신의 진료기록을 의료기관으로부터 전송받아 열람할 수 있는 규정은 의료법에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
법에 쓰여야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일변도이다 보니 의료기관도 관행적으로 오프라인으로만 진료기록을 발급해주는 상황이다.
더욱이 의료기관이 휴·폐업하면 보건소로 의무기록을 옮기거나 보건소장 허가를 받아 의료기관 개설자가 직접 보관해야 하는데 장소 한계 등으로 보건소 이관율이 저조해 체계적 관리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보존기간이 지난 진료기록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폐기되기 때문에 진료기록을 찾고 싶어도 못 찾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이유다.
반면 미국의 경우 2012년부터 재활군인이 자신의 PHR을 편리하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블루버튼(Blue Button) 서비스를 도입해 개인 전자의료정보에 대한 관리 권한을 환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총무성 역시 고령자 건강관리를 위해 개인과 의료 관계자가 건강데이터를 공유해 이용하는 의료정보 관련 네트워크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IoT가 어우러진 PHR 플랫폼과 같은 ICT 융·복합 신산업에는 법으로 금지하지 않으면 모두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구조가 단순한 전통산업에서는 법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명시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융·복합시대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환자가 자신의 진료기록을 전송 받아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한국형 블루버튼 서비스를 도입한다면 오프라인 진료기록 발급에 따른 환자 불편을 덜뿐더러 환자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보건의료산업의 ICT 융·복합 산업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