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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위기관리 1순위는 '건강'…"있을 때 지키자"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7-08-19 05:30:33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27)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27)

2014년 6월부터 약 3개월간 약간의 미열과 가끔 고열이 있었다. 내 나이 만 50세였다. 만성 피로도 생기고, 어떤 날은 열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돼 거울을 보면 얼굴이 딸기색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에서 김이 날 것 같았다. 갱년기니까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진료가 끝나면 링거에 항생제를 섞어서 맞고 주말이 되면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링거를 맞으면서 쉬었다. 그렇게 열이 났다가 식었다 하기를 3개월.

원인미상열(FUO, Fever unknown origin)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암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를 되돌아 보았다. 뜻은 좋았지만 아무것도 세상에 남길 것이 없었다. 개업한 지 20년 정도 됐지만 돈도 모은 것이 없고, 자식에게 남길 것이 은행 빚밖에 없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교육을 마저 마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종신보험을 들기로 했다. 내가 죽으면 자식에게 10억원씩 갈 수 있는 종신보험이었다.

그 사이 피검사와 암검사를 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고, 간기능 검사상 SGOT/SGPT가 100정도 나왔다. A, B, C형 간염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 그러는 도중 가슴 깊은 곳의 근육이 간헐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클리닉에서 IMS, TPI, 도수치료, 고주파 치료를 받았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통증치료를 잘 한다고 하는 의사를 찾아서 영등포까지 찾아가기도 하고, 주위 준종합병원에서 암검사로 CT, MRI를 하고, 우리병원 검진센터에서 위와 대장내시경, 복부초음파, 유방초음파 등도 했다. 그런데도 진단이 안 나왔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진단이 안 나오니 걱정됐다. 환자들이 병원 쇼핑을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은 아픈 데 진단이 안 나오니 답답해서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고, 좋다고 하는 것은 사게 되는 모양이다. 나 또한 의사임에도 귀가 엄청나게 얇아지고, 좋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하고, 사게 됐다.

매일 진료를 100명씩 보고 밤에는 링거를 맞으면서 3개월간 끙끙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지인이 병문안을 왔다. 나는 그 날도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이불을 확 제치면서 간호사를 불러 열을 재라고 했다. 39.5도였다. 나도 놀랐다. 그렇게 고열인데, 나는 3개월간 나의 열을 한 번도 재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가 있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검사를 했다.

결과는 만성 기관지염(Acute bronchitis). 약을 3일치 주면서 3일 후 외래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게 새벽 5시에 다시 집으로 왔다.

그런데 그 날 아침 친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FUO가 2주이상 이어지면 입원 적응증이 된다고 입원 준비를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길로 입원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Esophageal sono를 보고 급성 심내막염(Acute endocarditis) 진단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선천성심장질환(VSD)+폐동맥협착증(Pulmonary stenosis) 때문에 감염이(Vegatation) 생기고 급성 심내막염으로 이어진 것이다.

균 배양 검사를 하니까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이라는 순한 균에 감염 돼 다행이었다. 페니실린 K를 4시간 간격으로 2주 이상 맞아야 한다고 했다. 항생제를 맞는 날부터 다시는 열이 나지 않아 너무나 좋았다. 열이 잡히니 감염내과에서 심장내과로 전원했고, 다시 흉부외과로 전원 해서 심장 수술을 하자고 의료진이 제안 했다.

결국 나는 선천성 심장기형과 그로 인해 생긴 부수적인 수술을 모두 시행하기로 했다. 2014년 10월 8일, Open heart surgery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흉부외과 선배가 그 수술의 치사율이 4~5%정도가 된다며 예방적으로 수술을 하는 거라면 나중으로 미루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 했다. 죽을 수도 있는 수술이었다.

수술 전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내가 못 깰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마지막 전화를 했다. 친척 어른들에게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덤덤하게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수술 후 폐에 부종이 있다고 이뇨제를 투여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운 없는데 이뇨제로 하루에 1kg의 체중을 줄여대기 시작했다.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그래서 행동도 느려지고, 말도 느려졌다. 2~3분이면 먹는 밥을 30분이 되어도 다 먹지 못했고, 병실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30분은 걸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나에게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늘도 우울하고, 나의 마음도 우울했다. 아무것도 재미있는 것이 없었고, 어떤 것도 나를 웃게 하지 못했다. 세상일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 꿈, 정의, 목표 같은 것은 이미 달나라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아픈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건강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환자들이 왜 짜증을 내는지, 왜 옷을 갈아입는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왜 무표정한지, 그리고 왜 의사를 좋아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지, 왜 말도 안 되는 것을 믿는지, 모두 이해 됐다. 아파보니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과 쭉정이같은 사람이 구별 됐다.

그리고 꼭 아픈 부위에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픈 부위와 관계 없는 부위에 통증이나 증상이 먼저 시작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진단명이 심내막염인데, 심장에 대한 증상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았고 숨이 차지도 않았다. 원인미상열과 간기능 증가, 가슴 깊숙한 곳의 근육통, 만성피로가 전부였다, 증상보다 정확한 검사가 더 중요했다.

정말 좋은 의사가 되려면, 아픈 것이 낫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죽음 근처까지 갈 정도로 아파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건강을 다시 찾는다면 정말로 중요한 일부터 하고,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과 지내는 시간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건강도 돈처럼 쓰면 없어지고 닳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건강과 체력도 아끼고 관리를 해야한다.

내가 자식을 끝까지 돌보고 싶다면, 먼저 나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내가 건강을 돌보지 못해서, 자식에게 교육을 끝까지 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부모로서 직무유기인 것이다. 내가 계획한 것을 다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나의 삶이 끝이 난다면 나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신이 나에게 건강을 다시 되찾도록 도와주셨고,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팠을 때 했던 마음, 건강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하지는 못 하고 있지만, 다시 생계형인 일중독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고, 나의 인생관도 바뀌었다.

매사에 감사하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나의 노후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잃은 후에야 깨닫게 되지만, 어떨 때는 그것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절대로 그 기회가 헛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건강은 특히 그렇다. 이미 잃어버린 후에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모든 것처럼 있을 때 잘 하고, 있을 때 지키고, 있을 때 고마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