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대학병원 몇 곳의 관행수가 절반 수준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됐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상대가치점수를 도입하면 저수가는 그대로 이어졌다. 2017년, 정부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라는 말로 의사를 희생시키려 한다."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이 단단히 뿔이 났다. '문재인 케어'는 의사의 세 번째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제15차 서울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김숙희 회장은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이유를 들며, 앞으로 의료계 지도자들이 해야 할 역할까지 전했다.
김 회장은 "보장성을 강화해 환자들이 어렵지 않게 최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반대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도 "의료계 희생을 전제로 한 정책이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까운 예로 최근 건강보험료율 결정을 위해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다. 김 회장은 의협 부회장으로서 건정심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상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건강보험료를 매년 평균 3.2% 내외로 올려야지만 2022년에 건강보험 재정이 10조원 정도 남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2.04%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지금 못 올리면 나중에 올려야 하는 데 그게 더 어려운 문제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공급자에게는 건강보험료율을 3% 이상 올려야 한다고 해놓고는 건정심 당일 2차에 걸친 투표 끝에 2%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지부를 비롯해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모두 2%에 표를 던졌다"며 "4시간 동안 환자도 못 보고, 수술도 미루며 공급자가 나서서 (건강보험료) 인상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3%로 올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정부에 배신당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새롭게 도입한 개념인 '예비급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 회장은 "예비급여를 해서 환자 본인부담을 90% 내도록 할 수도 있다는데 이게 어떻게 완전 급여인가"라며 "모든 것을 급여권으로 들어오게 해서 수가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름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일 뿐 결국 비급여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며 "비용의 90%를 환자한테 내라고 하면서 완전, 전면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이미 저수가로 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된 상황에서 '적정수가'에 대한 개념을 달리하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복지부는 지난 2일 오후 대전에서 전국 시도의사회장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의-정 의료수가 원가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적정수가 개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숙희 회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부터 저평가 돼 있는 기존 수가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책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복지부는 각론이 없으니 앞으로 논의하고 협의하면서 결정하자고 하는데 그동안에도 쭉 해왔던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수가를 현실화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얘기하지만 그 자체가 막혀 있다. 재정이 없기 때문"이라며 "복지부는 앞으로 급여화를 할 때 관행수가 보다 터무니없게 급여를 책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기존 수가를 올릴 수 있는 재정추계는 안 돼 있다"고 꼬집었다.
또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에서 진찰료 인상도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이 아니라 순증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심평원 등에서 적정수가 개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적정수가 안에 의사들의 지적재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환자 진료에 대한 스트레스, 의료사고 가능성, 위험도 등을 상대가치점수에 모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회장, 투쟁-협상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물밑작업해야"
정부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의협 집행부의 적극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투쟁과 협상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며 "추무진 회장이 대통령, 장관도, 국회도 만나겠다는 의지를 갖고 물밑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언론에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도 현재 의료계 동향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협이 활발한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의사 회원이 12만명 이상이고 직역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모든 회원을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의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지역의사회는 중앙회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서울시의사회는 문재인 케어 문제점을 알고 긴급간담회, 성명서 발표, 비대위 구성을 제안했다. 회원이 협력하고 단합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도 서울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통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며 "투쟁, 협상을 병행해야겠지만 파업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의협은 철저한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자료를 축적해 큰 그림에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각론은 지양해야 한다"며 의협 집행부에 당부했다.
김숙희 회장은 16일 열릴 예정인 대의원회 임시총회에서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임총에서 정식 비대위를 결성할 텐데 비대위 결정 후에도 뾰족한 수가 나올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아직도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자체를 모르는 회원들도 있기 때문에 지역 의사회가 회원에게 문제점을 홍보하고 알리고, 대의원들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참석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 미니 궐기대회 "합리적 개선 필요"
서울시의사회는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학술대회에서 미니 궐기대회를 진행했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은 '보장성 강화전에 적정수가 제시하라', '수용할 수 없는 전면 급여화 즉각 철회하라', '말로만 하는 보장성 강화 한국의료 무너진다'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정부 정책의 부당함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김종웅 부회장은 "의사를 희생양으로 내모는 불합리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며 "그 전에 적정수가를 보장하는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과 병원의 분쟁과 불신을 실시하기에 앞서 동네의원은 1차 의료기관의 역할에 충실하고 3차 의료기관은 중증질환과 연구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