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핵심 정책인 문재인 케어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는데 의료전달체계, 여기에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까지 맞물리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어 그 어떤 논의도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회장 선거 출마 여부를 의료전달체계와 연결 지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전달체계 개선에 '선거'를 공식적으로 끌고 들어와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사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2015년 메르스 유행을 겪으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메르스 환자 한 명이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2016년 의료공급자와 환자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물이 약 2년 만에 나왔다. 그 사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정권이 바뀐 것. 새 정부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케어를 야심 차게 발표했다.
여기서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꼬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의료전달체계와 문재인 케어를 연결해서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한 것. 수가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한 전달체계 논의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개원의는 "의료전달체계 권고문의 목적은 의료질향상지원금 처럼 특정 병의원에만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라는 불안감을 드러냈다.
결국 2년 동안 이뤄진 논의는 일단 공중에 붕 뜬 상황이 됐다.
협의체에서 마련한 권고문은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 ▲의료기관 기능 강화 ▲환자 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 간 협력-정보제공 강화 ▲의료기관 간 기능 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합리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 등 5가지 대전제를 두고 이를 위한 세부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와 인센티브, 종별가산 등을 연결 지어서 이야기하는 데 있다. 인센티브를 이야기하니 결국 적정수가, 문재인케어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료계에 적정수가를 보장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적정수가의 개념부터 정부와 의료계가 달라 합의점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권고안은 권고에 그칠 뿐이다. 강제성이 전혀 없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돼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각론까지 붙들고 늘어진다면 나무에 집중하게 돼 숲을 볼 수 없어진다. 권고문은 장기적 관점으로 큰 틀을 정하는 데서 끝나야 한다. 1차, 2차, 3차를 종별이 아닌 기능별로 구분해 각 기능의 역할을 확실히 정립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구체적인 수가와 가산 문제는 나중 문제다. 정부는 의료계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전문의가 의원을 개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1차 의원 운영자로서 외과계 전문의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외과계 개원가가 '입원실'을 선뜻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는 1월 말까지 의료계에서 절충안을 마련해 올 경우 재논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겨뒀다.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발전적 논의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