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로 의료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일명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5년 기준 63.4%로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료비의 본인부담금이 높아져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가구가 많아진다.
실제로 연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해야하는 소위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하는 가구의 비율이 3.7%로 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높다.
그런데 재난적 의료비의 고통이 주로 저소득 층에 집중되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가구 중 무려 18.4%가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한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저소득층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는 말 그대로 한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경상의료비 증가폭은 OECD 국가 중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둘러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의료비 상승은 우리사회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가계가 직접부담하는 의료비 비율이 줄어들지 않으면 그 피해와 고통은 주로 저소득층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재난적 의료비의 정부지원 확대방침이나 의료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 방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려면 간과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는 건강보험재정 확충과 수가 현실화다.
우리나라의 경상의료비 지출(2016년)은 GDP 대비 7.7%로 OECD 회원국 평균인 9.0% 보다 현저히 낮다.
따라서 이제는 건강보험의 저수가 정책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규모에 걸맞게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원가 이하의 보험수가를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건강보험 국가 지원금과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마련할 수 있다.
이 중 건강보험료 인상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 누진적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즉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의료보험 보장률이 높아지면 의료비의 직접 부담금이 줄어 들게 되어 저소득층은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
또 의료기관은 안심하고 환자를 위한 진료를 소신껏 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료의 인상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일차의료의 역량강화와 지원이다
일차의료 기능이 만성질환의 관리와 합병증 예방에 가장 비용 효과적이라는 것은 많은 연구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또한 인구 고령화로 만성질환의 적절한 관리가 매우 중요한 의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일차의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일차의료의 기능을 강화해 의료비를 줄이고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일차의료의 주된 기능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생기기 이전에 개인별 건강위험요인을 관리하고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일차의료의 역량 강화는 정부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인 국민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를 위해 일차의료의 기능과 특성에 맞는 지불제도 개선과 함께 양질의 일차의료의사 양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차의료가 강화되면 소득 계층별 의료서비스의 형평성이 향상된다.
셋째는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의료기관의 종별, 그리고 기능별 특성에 따라 진료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의료자원의 효율성을 증대 시킨다.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채 의료보험 보장률이 높아지고 환자의 직접 부담금이 낮아지면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과 의료기관별 경쟁은 보다 심화되어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과 의료비 낭비가 커질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더구나 의료서비스의 질보다 양에 의해 의료비가 지불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케어의 첫 출발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은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대한가정의학회는 문재인 케어가 보다 잘 준비되고 성공해 소득계층별 의료서비스의 형평성이 향상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