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이윤성 원장이 3월 29일 노인요양병원협회 춘계 학술세미나에서 "요양병원 대부분이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적용대상 환자 17만명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감안할 때 적으면 3만명, 많으면 5만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은 김 할머니 사건이나 보라매병원 사건과 같이 인공호흡기를 이미 적용한 환자에서의 인공호흡기 중단뿐만 아니라,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아니하는 ‘유보’결정도 다루게 명문화되어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지, 어떤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할지 결정하는 것을 돕는 중요한 법이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모든 사망환자에서 발생하는 심정지의 순간에 심폐소생술등의 연명의료를 시행할 것인지, 유보할 것인지 결정한 판단 근거도 문서화하여 보관해야하는 법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6년 기준 280,827명이 사망했다. 이중 74.7%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했으니, 매년 21만명이 병원에서 임종하고 있다. 그리고 연명의료결정은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 인 "임종과정"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1년에 3 - 5만 명만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대상이며, 16-18만명은 아니라는 주장은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21만명의 환자 중에서 16-18만명은 회생가능성 여부판단을 통한 임종기 결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장의 이번 발표는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인이 임종기로 판단하지 않으면, 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즉 환자가 요양병원에서 사망했어도, 법적으로 임종기를 거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법대로 임종기를 판단하면 복잡한 서식을 써야 하고 처벌의 위험도 무릅써야 하지만, 사망은 했지만 임종기를 거치지 않았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법은 왜 만들었고 누구를 위해 만들었단 말인가. 연명의료결정법 어디에도 요양병원이 이런 방식으로 법적용을 피해갈 수 있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2016년 65세이상 사망자 21만 716명중 사망 한 달 전에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5만 9852명이었다. 의료기관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기 어려워, 1519개 요양병원 중 14곳 (0.9%)만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부터 연명의료결정기관으로 지정되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요양병원이 연명의료결정을 이행할 자격조차 없기 때문에 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서히 악화되는 만성질환자가 대부분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들 중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두어도, 요양병원은 연명의료결정 이행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가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두었는지 조차 확인할 방법도 없다. 이들 환자에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삽관해서 대형병원 응급실로 전원해야 하는 것인지? 요양병원에서는 의료진의 재량으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기준이 없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사망하는 환자에게는 연명의료 의사를 물어서 기록을 남길 의무가 없는 것인지? 환자의 의사 확인 없이 연명의료 시행여부를 의료진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 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되었지만, 정부기관 발표자마다 법 해석을 달리 하고 있으니,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해있던 환자가 임종과정에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을 원하면 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대형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한다. 실제 처벌을 두려워한 요양병원에서 대형병원 응급실로 임종기 환자를 보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1990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 (환자자기결정권에 관한 법률)은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요양시설에서도 적용되고,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의 국가지침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의료결정 프로세스 지침)은 가정이나 간병시설에서 임종하는 환자까지 포괄한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환자에 국한하여 연명의료결정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기관에서 임종하는 환자도 일부만 법 적용대상이고 대부분은 아니라는 발표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환자 중 어떤 환자가 법 적용대상이고, 어떤 환자는 법적용에서 제외되는지 명확한 기준을 밝혀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런 주장을 할 때는 요양병원에서 임종하는 환자들에 대한 연명의료결정 원칙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법 시행 두 달이 지났건만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불편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그 좋던 입법취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와중에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려는 자는 처벌받을 수 있고 법을 피해가는 자는 면책 받을 수 있다고 정부산하 공공기관장이 발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대부분의 요양병원이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면 의료현장에서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내용으로 법안을 고쳐야지 요양병원 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 대상이 아니라는 말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장소에서나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고 임종할 수 있게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