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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서 ‘홀대’ 국산 의약품주입펌프 해외선 ‘극찬’

정희석
발행날짜: 2018-04-05 00:00:02

134억원 규모 공급계약…국내 가격산정 난항·해외수출 걸림돌

메인텍 이상빈 대표이사
국내 판로가 막혀버린 토종 ‘의약품주입펌프’가 정작 해외시장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계 최초 원천기술로 차세대 의약품주입펌프 ‘애니퓨전’(Anyfusion)을 개발한 메인텍(대표이사 이상빈)은 최근 해외 5개국 바이어들과 연이어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메인텍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3500대·700만달러) ▲UAE(180대·45만달러) ▲카타르(389대·80만5230달러) ▲인도네시아(50대·17만5000달러) ▲인도(3년간 4300대·430만달러)와 체결한 애니퓨전 공급계약 수량은 총 8419대.

계약금액은 약 1273만달러(한화 약 134억7200만원)에 달한다.

계약액 자체도 적지 않지만 애니퓨전에 들어가는 소모품 ‘카트리지’ 판매에 따른 수익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부가가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인도만 보더라도 애니퓨전 4300대를 공급하면 카트리지 사용량은 대략 3일에 1개 사용 가정 시 약 120개로 연간 총 51만6000개(120개×4300대) 판매가 가능하다.

카트리지 51만6000개 금액은 약 41억28000만원에 달한다.

또 전체 펌프 계약대수로 계산하면 약 81억원(120×8419) 규모다.

이상빈 대표이사는 “애니퓨전 해외 공급계약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며 “현재 독일 터키 일본 도미니카 이란 말레이시아 바이어들과도 공급계약을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굴지의 다국적기업은 물론 중국 딜러 역시 대규모 계약체결을 적극 요청한 상태다.

관련해 이 대표는 “유량 정량 조절기 ‘이지 레귤러’(EZ REGULAR)에 대한 높은 제품 신뢰도와 함께 오랜 기간 MEDICA·ARAB HEALTH·FIME 등 해외전시회 참가를 통해 애니퓨전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메인텍이 연간 300만개를 생산하는 이지 레귤러는 2002년 CE인증과 함께 독일 일본 미국 등 전 세계 45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제품으로 세계 최초 한 손 작동이 가능한 유량 정량 조절기.

특히 기존 링거 조절 장치인 클램프와 다르게 약물 양을 미세하게 조절해 약물 과다투여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애니퓨전은 FDA로부터 단 한차례 안전성 리포트를 받지 않은 이지 레귤러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외바이어들의 러브콜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빈 대표는 해외공급계약 체결에도 불구하고 깊은 고민과 아쉬움이 남아있다.

해외에선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판로가 여전히 막혀있기 때문.

인퓨전 펌프와 시린지 펌프 각각의 장점을 통합한 애니퓨전은 식약처 품목재분류 신청을 통해 ‘실린더식 의약품주입펌프’로 품목허가를 받아 고시됐다.

반면 펌프 핵심기술 카트리지는 ‘실린더 펌프용 실린더 카트리지세트’가 아닌 기존 품목분류상 ‘수액펌프용 수액세트’로 허가를 받았다.

이는 애니퓨전의 ‘도넛형 실린더 카트리지’가 실린더 내 두 개의 피스톤이 교차 회전하면서 주사기의 직진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 약물을 흡입·배출하는 세계 최초 원천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과 동일한 기술과 가치로 저평가됐다는 게 이상빈 대표의 항변.

펌프 자체는 신기술을 인정받아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정작 핵심기술인 카트리지의 경우 기존 제품과 동일한 품목허가로 최소한의 가격 산정기준만 인정받게 된 셈이다.

때문에 애니퓨전 카트리지는 현재까지 치료재료로 인정받지 못해 비급여 코드를 받을 수 없고 기존 제품과 동일한 코드 또한 사용할 수 없다보니 국내 의료기관에서 애니퓨전을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상빈 대표는 “애니퓨전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발했기 때문에 국내 산정가격을 기준으로 해외 표준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데 현재로선 기준가 자체가 없다보니 글로벌 수출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국내 의료기기산업 육성을 위해 신기술 국산 의료기기 개발부터 해외시장 진출까지 적극 지원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원천기술을 통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애니퓨전 같은 국산 의료기기가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건강보험 급여제도와 정책에 막혀 해외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원천기술로 개발한 국산 의료기기는 국내에서의 가격산정과 이를 통해 의료기관에서 실제 사용한 임상 데이터를 빨리 확보할 수 있어야 해외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정부가 원천기술로 개발된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때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이 보건의료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5개국 바이어들과 134억원에 달하는 애니퓨전 공급계약을 체결한 메인텍 이상빈 대표.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도 하건만 그는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기자에게 고백했다.

해외바이어들은 실시간 정확한 약물주입이 이뤄지고 잦은 수액세트·주사기 교체로 인한 불편함과 감염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애니퓨전의 혁신적인 안전성·유효성을 높게 평가해 메인텍에 공급계약을 제안한다.

하지만 정식 계약 체결에 앞서 제조국 의료기관에서의 실제 사용여부와 의료진들의 평가를 듣기 위해 한국을 찾지만 정작 메인텍이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다.

이상빈 대표는 국내 가격산정이 안 되고 사용하는 병원이 없는 이유를 나름 설명하지만 이를 이해할만한 바이어들은 많지 않다.

이로 인해 해외바이어들과의 공급계약 체결 직전 거래가 무산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메인텍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건신기술인증(NET)을 비롯해 2018년 의료기기 신흥국 지원사업·글로벌 의료기기 협력지원사업에 연이어 선정됐다.

뿐만 아니라 원천기술 개발과 국산 의료기기 세계화 등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대통령상 등 각종 정부포상도 수상했다.

수많은 정부 인증과 포상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 원천기술로 개발한 국산 의약품주입펌프가 정작 국내에서 그 가치와 가격을 인정받지 못해 해외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은 분명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