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 전략을 구축하고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분야 전문가를 위촉해 4차 산업 생태계 조성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전문성을 특화해 위원회 산하 ‘헬스케어특별위원위’를 꾸려 미래 맞춤형 의료를 위한 전주기적 지원방안을 논의 중이다.
헬스케어특위는 의료기기 등 분야별 프로젝트팀을 가동해 제품 연구개발에서 출시까지의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해 ▲제도개선 ▲규제개혁 ▲네거티브 규제 ▲규제 샌드박스 ▲사회적 합의 등 다각적 검토를 진행 중이며, 올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의료기기업계는 이를 통해 보건의료 환경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해 국내 보건의료산업 발전과 의료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 생태계 조성 핵심 축이자 수혜자가 돼야 할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은 기존 제도가 걸림돌로 작용해 현 정부의 노력을 퇴색시키고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가까운 미래보다 당장 생존에 큰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국내 의료기기제조업체 ‘알로텍’은 환자 2차 감염을 예방하는 ‘일회용 의료 핸드피스’를 개발했지만 보험급여 등재에 발목이 잡혀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알로텍이 원천기술로 개발한 일회용 핸드피스는 일회용 주사기와 같이 기존 장비가 아닌 의료소모품 개념으로 한번 사용 후 폐기하기 때문에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더욱이 기존 재사용 핸드피스 대비 100분의 1 가격과 무게는 2분의 1 수준 파격적인 스펙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환자 2차 감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혁신적인 의료기기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제품은 별도 사용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연히 해외 바이어들은 수입계약 체결을 위해 한국 판매실적 및 판매가와 병원 래퍼런스 등을 요구하지만 제시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알로텍은 국내 판매는 물론 해외수출까지 판로가 막히면서 매출 자체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은행차입금 상환 연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메인텍’ 역시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의약품주입펌프는 하나의 펌프로 인퓨전과 시린지 모드를 사용하는 세계 최초 ‘실린더식 의약품주입펌프’로 기존 인퓨전·시린지펌프 단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혁신적인 국산 의료기기로 평가받았다.
특히 의약품주입펌프 중 유일하게 ±1% 이내 실시간 정확한 약물주입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실린더 펌프용 실린더 카트리지 세트는 최소 3일에서 최대 30일까지 사용 가능해 잦은 수액세트·주사기 교체로 인한 불편함과 감염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해당 제품은 식약처 품목허가 이전 이미 다수의 해외수출 계약이 이뤄질 정도로 원천기술을 인정받아 의약품주입펌프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메인텍 역시 신기술 입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급여등재에 제동이 걸려 수입국에서 요구하는 제조국 기준가격과 사용여부 등 자료 제출을 하지 못해 해외수출 난관에 봉착했다.
알로텍과 메인텍은 공통적으로 기존 치료재료 수가 패러다임에 막혀 국내 판매 지연과 해외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걸 맞는 혁신 신기술 의료기기 개발을 주문하고 있지만 현행 제도를 고려할 때 과연 국내 의료기기업체가 막대한 연구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도전에 나설지 의문이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을 모방해 안정적으로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관련해 의료기기 인허가·규제전문가 모임 ‘의료기기규제연구회’와 함께 앞서 살펴본 두 회사 사례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첫째, 원천기술로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이라도 판매를 위한 치료재료 등재과정에서 가산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전이 없다.
즉, 무조건 중분류에 따른 단일상한가를 적용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술력 우대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물론 경제성 평가를 통한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충분한 임상과 입증 관련 방대함 때문에 영세한 신규 의료기기업체가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
둘째, 제품이 개발되고 출시 후 판매가 이뤄지기까지 사용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의료기기는 환자 안전성이 중요한 만큼 기존 제품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로 변경 시 저항이 높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금력과 영업력이 취약한 의료기기업체는 기준가격·사용여부 등 증빙을 요구하는 수입국 요청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가 요원하다.
셋째, 급여제도 경직성으로 인해 신기술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지원이 충분하지 않다.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은 자본력이 부족해 제품 당 여러 편 논문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근거중심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기가 결코 녹록치 않다.
물론 원인으로 분석된 요인마다 나름 합리적 이유가 있다.
우선 혁신 제품 가산수가는 혁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보니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 쉽지 않다.
사용자 진입장벽이 높은 것 또한 구매자 판단에 의한 사적 부분을 정부가 강제할 수 없을뿐더러 자국기업에 대한 과다한 우대로 비쳐져 자칫 통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밖에 급여제도 경직성과 관련해 임상지원이 제한된다는 점은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고 특정 제품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으며 신의료기술 평가기관이 갖는 설립 목적과 사회적 합의에 의한 판단 범위를 넘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정부는 국내 의료기기업체가 신기술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과 함께 제도적 정책적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현실적 솔루션을 제안하자면, 가산수가는 혁신형 제품 혹은 기업을 산정 기준으로 삼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복지부가 추진 중인 ‘의료기기육성법’에 명시하면 충분히 시행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자국기업 특혜 시비로 인한 통상 문제 회피를 위해 다국적기업이 국내 제조 혹은 연구시설을 설립할 경우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존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진행 중인 첨단의료기기 지원법안이나 체외진단법에 법적 근거를 명시해 명확한 선정 기준을 정한다면 절차적 합법성을 통해 공정한 운영이 가능하다.
또 제품 개발 후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일단 연구개발 단계에서 사용처가 될 수 있는 연구중심병원과 초기 공동개발 인프라를 만들고 해당 제품에 대해 일정 기간 이상 사용 시 정부 지원을 해주는 체계를 구축해 해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입자 요구사항인 국내 병원 사용여부 및 임상 래퍼런스 문제를 해결해 업체 수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 자금을 투입한 제품은 공공병원에서 일정 비율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제품 개선의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밖에 급여제도 경직성은 예비급여제도를 적극 활용해 일단 시장 진입을 쉽게 하고 재평가를 통해 3년 혹은 5년 이내 재산정한다면 기업들의 수출 문제도 해결하고 자생력도 키워 주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의료기기업계에 글로벌시장에서 다국적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원천기술 기반의 국산 의료기기 개발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적인 신기술로 개발한 국산 의료기기가 정작 현행 보험제도 장벽 때문에 국내 판로와 해외수출 길이 막힌다면 이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심정지’ 위기로 생사기로에 서 있는 국내 의료기기업체에게 정부 차원의 ‘심폐소생술’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