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표 전 광주광역시의사회 회장이 대한의사협회 제29대 대의원회 의장으로 출마하면서 내 건 슬로건이다. '생(生)의 본질을 찾자'라는 그의 좌우명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대한의사협회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틀인 '대의원회'. 집행부를 견제하며 의사 회원 의견을 반영하는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2000년 의약분업 이전부터 의약분업 반대를 외치며 협상과 투쟁에 몸을 담았던 홍 후보는 "의사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협 시스템의 일대 변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무를 경험하면서 그는 '의약분업 후 의협은 정치세력화를 외치고 투쟁과 협상을 계속 해왔지만 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내린 답이 '의협 구조의 노후화'였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의협 대의원회 의장 선거에 출마한 홍경표 후보(58, 전남의대, 내과 전문의)를 만나 더 강한 의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장 선거는 오는 22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리는 제70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치러진다.
-의협 구조가 노후화됐다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변혁을 말하는가.
숱한 협상과 투쟁을 해왔지만 결코 원했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대의원회는 각 지역 대의원이 모여 민초의사의 의견을 대변하는 집단인데 1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에서는 짧은 시간에 쫓겨 극히 소수가 발언하고 대부분이 단순한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평소에는 운영위원회가 좌지우지하고, 운영위 내에서도 소수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힘을 하나로 모아 효율적이고 강력한 집단을 구성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의협의 구조가 너무 낡았다. 강력한 회장만으로는 과거의 전철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구조가 노후화돼 있으면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바꿀 수 없다. 집행부, 대의원회, 시도의사회, 민초의사의 역할과 기능을 정비해 서로 유기적인 협동체가 돼야 한다.
대의원회가 제 기능을 찾아 의협이 강력한 집단으로 재탄생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의협이 강력한 집단이 되기 위한 대의원회의 역할은.
회장과 의장을 동격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관 상 모든 책임은 회장에게 있다. 회무에 과도하게 참견하거나 발목을 잡는 대의원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대의원회와 집행부는 상호보완의 관계다. 대의원회는 회원 전체 뜻을 수렴해 집행부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라고 결정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 집행부가 수임 사항을 소홀히 하거나 칼끝이 오히려 동료에게 향하는, 회원이 원하지 않거나 피해를 보는, 민심과 동떨어진 경우에는 방관해서 안된다.
-구체적으로 민의를 어떻게 반영하겠다는 것인가
전국의 건의안을 광범위하게 수렴한 후 그 의견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지 않고 중요성과 시급성을 따져 분류, 집행부 수임사항으로 정해야 한다.
또 운영위원회를 재정비해야 한다. 244명이나 되는 대의원이 있지만 평소 대의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중요한 이슈가 있는지 대부분 모르고 있다. 총회가 임박해 두꺼운 책자를 받아보는 게 전부다. 기본적으로 대의원 전체가 함께할 수 있는 대화방을 개설해 운영위 논의 내용을 시시각각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도록 할 것이다. 중요한 안건은 설문조사도 진행해 집행부에 전달하도록 하겠다.
광주시의사회장 당시 의사회 임원, 산하 구의사회 임원 등 3개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의사회 회무 내용을 공유했다. 덕분에 전문가평가제 같은 민감한 정책들을 주도적으로 시행할 때도 분란이 없었다.
-28대 대의원회에서는 회장 불신임안 상정 등으로 임시대의원총회가 자주 열리면서 대의원회 구성에 대한 잡음이 많았다. 단적인 예가 대한의학회 배석 부분이다.
의학회가 대의원회에 얼마나 참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학회에서 참석하는 대의원이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회의 내용과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활동이 불성실한 대의원에 대한 제제방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장 선거 때마다 선거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선거 제도 개선도 대의원회에서 해야 할 일이다.
회장 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하자, 회비 납부와 관계없이 모든 회원에게 투표권을 주자 등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많은 개선책이 나오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은 하루아침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3년의 시간이 남았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 1년은 문제점을 파악해 다양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다음 1년은 모든 회원의 의견을 종합해 수정한 다음 공청회를 거쳐 최종 개선안을 대의원총회에 상정할 것이다.
-정책 개발을 위해서도 대의원회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의료정책연구소와 KMA policy 특별위원회, 집행부의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당면한 의료정책에 효율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또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이면서도 각종 대외 업무 대결에서 논리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KMA policy는 의료 관련 모든 정책, 제도, 권고안 등을 모두 포괄하는 방대하고 중요한 작업임에도 위원회에 대한 지원이 취약한 상황이다. 집행부와 의료정책연구소의 협조를 받고 있지만 회장과 연구소장 의지에 따라 사정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이 따로 또 같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회원 이익 추구를 위한 '실리적 정책'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KMA policy 특별위원회는 의사회 권위를 확립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운영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 지원도 명문화해야 한다. 집행부는 회장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게 KMA policy에서 정한 큰 정책방향의 틀에 따라 회무를 집행해야 한다.
-의사들의 전반적인 정서와 대척점에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회원이라는 데 대한 편견의 시선이 있다.
의사 대부분이 의약분업에 관심 없었던 1998년, 국민건강을 위한 의약분업 연구모임 일원으로 활동했다. 의권쟁취 투쟁위원회가 생기기 훨씬 전 주로 개원의로 구성된 모임이다. 제4차 의약분업추진위원회 회의 결과에 분노하며 투쟁을 선도한 모임이기도 하다.
당시 의쟁투 모든 구성원이 내가 인의협 회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만큼 의사 권익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도록 해온 활동으로 다수의 의사 동료에게 확실히 검증을 받았다고 자신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회무에만 충실할 것이다. 항상 회원 전체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어떤 비난과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
-의협 새 집행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회원은 어리석지 않다. 단지 인내하고,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침묵하는 다수 회원의 뜻을 잘 읽어서 반영하고 뜻에 따라서 현명하게 회무를 해 나가길 바란다. 현실에 급급하기보다는 다가올 위기를 미리 예방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세대교체가 돼야 하고 낡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변화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