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소녀 민하(가명)는 늘 학교 친구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1형 소아당뇨를 가지게 된 본인을 마치 전염병 환자를 보듯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채혈과 인슐린주사를 위해 양호실에 가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데 괜한 꾀병을 부린다는 친구들의 오해가 싫었다.
설령 양호실에 가더라도 1형 소아당뇨에 대해 잘 모르는 보건교사가 스스로 주사를 놓는 본인을 이상하게 볼까봐 겁이 났다.
민하는 또한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오래달리기를 해 본적이 없다.
체육교사 역시 1형 소아당뇨에 무지했기 때문에 아이를 무작정 모든 활동에서 배제시켰다.
10살 때 1형 소아당뇨를 진단받은 김민하씨는 올해 30살이 됐다.
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학교 시간강사로 근무 중인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형 당뇨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학교 화장실에 숨어 인슐린 주사를 맞는 아이들의 현실만 봐도 그렇다.
그는 1형 당뇨환자로 살아오면서 올바른 혈당관리와 인슐린 주사방법을 제대로 물어볼 수 있는 의사를 만나기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10살 때 1형 소아당뇨를 진단받은 그는 2년간 인슐린 주사를 맞다가 12살이 될 무렵 인슐린 펌프를 차기 시작했다.
인슐린 펌프는 복부에 꽂은 바늘을 3일에 1번 주입 세트를 교환하면서 좌우 위치를 바꿔줘야 피하지방 뭉침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주사부위가 뭉쳐있을 경우 인슐린이 잘 흡수되지 않아 혈당조절에 이상이 생겨 혈당 수치가 높게 측정될 수도 있다.
김씨는 “배꼽에서 2.5cm 떨어진 바깥쪽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하지만 12살 작은 아이의 몸에 주사바늘을 꽂을 수 있는 부위가 얼마나 많겠느냐”며 “내 기억에 덜 아팠던 부위에만 주사바늘을 계속 꽂았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인슐린 펌프 주사부위가 뭉치고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등 불편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슐린 펌프를 5년간 사용하고 17살에 췌장 이식을 받았지만 거부반응 때문에 19살 때 다시 인슐린 펌프로 돌아왔다.
이후 대학 입학을 앞두고 다시 아침·저녁 2회 혼합형 인슐린주사요법을 했지만 혈당조절에 어려움을 겪자 다회인슐린요법으로 현재까지 혈당관리를 하고 있다.
그는 처음 1형 소아당뇨를 진단받은 후 10대·20대를 거치는 동안 인슐린 펌프·혼합형 인슐린·다회인슐린요법에 대해 의사들로부터 충분한 교육과 설명을 듣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과 1형 당뇨 환우회 카페 등에서 정보를 얻어 본인에게 맞는 올바른 혈당관리와 주사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형 당뇨 환자가 전체 국민 중 1%가 채 안 된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환자 수가 적다보니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임상정보가 많지 않고 당연히 관심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대부분은 1형·2형 당뇨환자를 함께 본다”며 “어차피 병원도 수익을 창출해야하는 기업인만큼 1형 당뇨 환자만 봐서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1형 당뇨를)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그는 다리 한쪽이 마치 두꺼운 풍선에 물을 꽉 채운 듯 눌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심하게 붓는 증상 때문에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을 찾았다.
병원 내분비내과 의사가 처방한 약은 신경안정제. 해당 약을 복용한 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6개월간 처방약을 복용했지만 좀처럼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환우회 카페를 통해 알게 된 1형 당뇨를 전문으로 보는 전문의가 있는 다른 상급종합병원을 찾아간 뒤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증상은 다회인슐린요법으로 바꾸면서 일시적으로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아 생긴 것으로 본인에게 맞는 주사요법을 처방받자 곧 괜찮아졌다.
의사가 왜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는지 지금도 의아할 뿐이다.
일평균 3~7회 인슐린주사를 맞고 있는 김민하씨는 3개월마다 소모성 재료 처방전을 받고 당화혈색소 수치 확인을 위해 병원을 정기 방문한다.
또 6개월 또는 1년에 한번 안과를 방문해 망막검사를 받고 말초신경 등 합병증 검사도 받는다.
김씨는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발병하는 ‘지방비대증’(Lipohypertrophy)과 같은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설명과 교육이 병원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지방비대증은 인슐린을 같은 부위에 반복적으로 주사할 때 지방 덩어리가 쌓여 형성되는 일종의 주사 합병증.
이는 인슐린 흡수를 저해하고 더 많은 인슐린 사용을 증가시키며 혈당가변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저혈당을 유발시키는 등 당뇨환자들의 치료효과를 떨어뜨린다.
문제는 지방비대증의 명확한 발병 원인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지방비대증과 연관된 여러 위험요소들은 다양한 임상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주사부위를 순환하지 않고 같은 부위에 반복 주사했을 때 피하지방층에 반복적인 트라우마가 생기고, 여기에 인슐린 제제 자체가 갖고 있는 성장 촉진 요소들이 더해져 마치 상처가 아물 때 새살이 돋아나듯 지방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증식돼 발생한다는 것.
동일부위 반복주사 외에도 펜니들을 재사용하면 지방비대증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방비대증 예방을 위해 주사부위를 살펴보고 올바른 인슐린 주사방법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교육해야 할 의사·간호사들의 인식은 높지 않은 현실이다.
그는 왼쪽 복부에 지방비대증을 갖고 있다. 20대 초반 처음 지방비대증이 생겼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단순히 인슐린 주사를 많이 맞아서 고무 같은 느낌의 멍울이 생긴 것으로만 생각했다.
병원에 물어봐도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고 인터넷 검색은 물론 환우회 카페에서도 지방비대증 정보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병원 의사나 간호사한테 물어보면 여러 부위에 돌려가면서 주사를 맞으라는 말만 들었을 뿐 지방비대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며 “심지어 어떤 의사는 해당 부위에 오이 마사지를 해주라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답답한 마음에 피부과에서 비만치료와 고주파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며 “지금도 지방비대증 예방책은 없는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방비대증에 대한 정보 부족은 1형 소아당뇨 아이들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
그가 활동 중인 환우회 카페에서는 한때 헤파린 겔이 화제가 됐다.
헤파린 겔을 딱딱하게 멍울진 부위에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면 효과가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 방법은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형 당뇨를 갖고 있는 김민하씨의 삶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날그날의 음식, 활동량, 수면, 스트레스 정도 등 몸 상태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혈당 변화에 마음 조이며 여전히 남들의 눈을 피해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유병기간 20년차인 그녀의 삶만큼이나 1형 당뇨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의사들의 인식 또한 변화가 없기는 매한가지.
1형 당뇨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환’이 아닌 마치 전염병에 ‘걸리게 된, 앓게 된’ 것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환자들에게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가야할 몸의 고통만큼이나 마음의 상처가 되고 있다.
의사들 역시 날로 발전하는 인슐린 제제가 환자 몸에서 어떻게 얼마나 작용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주사부위를 살펴보거나 인슐린 효과를 높이면서 근육주사나 지방비대증을 피할 수 있는 올바른 주사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인슐린 제제라도 환자가 잘못된 주사방법을 시행한다면 인슐린 흡수와 작용을 저해해 혈당조절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방비대증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의사와 간호사가 1형 당뇨환자들에게 올바른 인슐린 주사부위와 방법을 설명하고 교육하는 세심한 배려만이 지방비대증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