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전라북도다.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응급실 주취자 폭행이 전라북도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I병원에서 또 발생했다.
의사의 이름을 적어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응급의학과 의사는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전북 I병원 응급의료센터 L센터장은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데다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했다. 이 센터장은 폭행을 한 피의자를 현재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증거로 휴대전화 사진 및 동영상, 응급실 CCTV, 진단서 등을 제시했다.
그는 메디칼타임즈와의 통화에서 "응급실 의료진은 항상 폭행의 위험 속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직접적인 폭행을 당한 적은 처음"이라며 "주취자 폭행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던 과거 기록들 때문에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응급의학과 의사의 슬픈 현실이 돼버린 것 같다"며 "해당 환자가 다시 병원을 찾아 더 심한 행동을 할 것 같아 두렵다"고 덧붙였다.
사건은 지난 1일 밤 10시쯤 벌어졌다. 수부외상(골절)으로 I병원 응급실을 찾은 A씨는 입원을 원했다. 골절은 다음날 외래로 와서 진료를 보면 되기에 A씨를 진료했던 응급의학과 J과장은 "나중에 다시 입원 안 한다고 말을 바꾸면 안 된다"고 당부했고 A씨는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고 대답했다.
당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된 L센터장이 웃음을 터뜨렸고, 이 웃음이 A씨의 심기를 자극했다. L센터장은 "웃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상황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돌연 A씨가 L센터장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알려주니 적어 달라고 했고 L센터장은 적는 것을 거부하고 보고 있던 환자의 X-ray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A씨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바닥으로 넘어진 L센터장을 A씨는 발로 밟았다.
A씨는 "죽여버릴 거야, 칼로 찔러서 죽여버릴 거야"라며 L센터장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병원 경비가 중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폭언은 계속됐다. 당시 응급실에 머물고 있던 10명 이상의 환자들도 이 상황을 목격하며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L센터장은 현재 뇌진탕, 목뼈 염좌, 타박상, 코뼈 골절 및 치아 골절 의심 등 전치 3주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L센터장은 "가해자는 지금도 언제든지 병원을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칼로 죽이겠다고 살해 위협까지 했는데 너무 불안하다. 병실 문을 잠그고 있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절반 이상은 환자의 폭언, 폭행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노출이 안됐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만둘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L센터장의 입원으로 I병원 응급실 의료진의 진료 스케줄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24시간 운영되고 있는 I병원 응급실에는 L센터장을 포함해 7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다.
L센터장은 "CT 촬영 후 코뼈 골절을 확인해 입원을 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져 진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단 내일까지는 다른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대신 근무를 하기로 했다"고 했다.
의협 "정부가 나서서 의료인 폭행 방지 적극 홍보해야"
의협은 "응급실 등 의료기관에서 의료인 폭행이 이슈가 될 때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협회도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응급의료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있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발하는 것은 응급실 폭행의 심각성에 대한 캠페인 등 국가의 적극적인 홍보 부재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인 폭행은 결국 국민의 진료권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게 의협의 주장.
의협은 "폭행으로 의료기관의 진료기능을 제한하고 심하면 의료인력 손실로 인한 응급진료 폐쇄 등을 초래해 결국 국민의 진료권 훼손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에 문제가 발생하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의료인 폭행의 심각성을 적극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더이상 진료의사 폭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홍보, 계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