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제조업 대국 중국이 4차 산업혁명 혁신기술 ‘굴기’(堀起·우뚝 일어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양자컴퓨터·항공우주·신소재는 물론 바이오·인공지능(AI)·빅데이터·헬스케어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기업이 뒷받침 해 4차 산업혁명시대 글로벌 패권을 잡겠다는 의지다.
중국은 혁신기술 개발을 통해 선진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시장지배력을 높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이하 4차위) 산하 헬스케어특별위원회·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 민간위원과 정부 지원단 공무원들은 최근 중국 정부의 4차 산업 정책 추진과 기업들의 혁신기술 개발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한·중 민관 전문가 교류를 통한 양국 4차 산업혁명 발전을 위해 4차위 위원·직원을 중국에 초청했다.
위원과 직원들은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5박 6일간 중국 충칭(Chongqing)·청도(Qingdao)·심천(Shenzhen)을 방문해 4차 산업과 접목된 인공지능·빅데이터·스마트시티·헬스케어 등 산업계 동향을 파악했다.
기자는 이번 출장에 동참한 헬스케어특별위원회 이진휴 위원을 만나 중국 4차 산업혁명 혁신기술 개발 현주소를 들어보고 나아가 한국과의 정책적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출장으로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99.9% 깨졌다”고 운을 뗀 이진휴 위원은 인상적이었던 장소로 심천에 위치한 ‘화웨이’(Huawei)와 ‘BGI’(Beijing Genomics Institute)를 꼽았다.
1987년 설립된 중국 네트워크·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는 최근 스마트폰 사업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2위 제조사로 성장했다.
2017년 기준 연매출 6000억위안(한화 약 1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72위에 올랐다.
전 세계 18만 명 이상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클라우드·빅데이터·IoT 등 B2B 사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진휴 위원은 “중국이 워낙 대국이라 화웨이 캠퍼스 규모가 큰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며 “정작 놀란 점은 ‘흑조’(黑鳥)였다”고 말했다.
동양에서는 길조가 아닐뿐더러 흔히 접할 수도 없는 흑조가 왜 회사 호수에 있었을까.
회사 직원 설명은 이랬다.
“화웨이 설립자가 직원들이 평소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보면서 창의적인 사고로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흑조를 수입해 호수에서 키우고 있다.”
이 위원은 “흑조는 화웨이 경영진들의 창의적 혁신에 대한 절실함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예”라며 “창의적 혁신을 꾀하기 위한 기업의 고민과 노력은 결국 좋은 성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창의적 혁신을 위한 정책적 유연성은 세계 최대 유전자 검사업체 중 한 곳인 ‘BGI’에서 엿볼 수 있었다.
1999년 베이징에서 설립돼 2007년 심천으로 이전한 BGI는 설립 초기 국제 과학 연구 ‘Human Genome Project’에 중국 대표기관으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주로 헬스케어·농업·목축·환경 분야 유전자 기반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장비 중 절반을 보유하고 있고 100개 이상 국가·지역에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진휴 위원은 “BGI는 독특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이 회사는 민간 기업인데 중국 정부로부터 ‘유전자은행’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유럽·중국 단 3곳에만 있는 유전자은행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특히 공익적 공공성 때문에 정부가 운영한다”며 “중국은 정부보다는 민간영역에서 유전자은행을 더 잘 운영·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 BGI에 위탁운영을 맡겼다”고 덧붙였다.
미국·유럽에만 있던 유전자은행을 아시아 최초로 중국이 설립한 것도 놀랍지만 한국보다 오히려 정책적 유연성을 가지고 민간에 위탁한 것 자체가 더 놀랍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유전자 분석은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실현을 위한 핵심 기술”이라며 “또 유전자 정보는 과거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석유와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은 이미 유전자은행을 통해 세계 최대 유전자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정부 중앙서버에 저장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유럽보다 기술 및 비용측면에서 훨씬 경쟁력이 있다”며 “특히 중국은 유전자 정보와 빅데이터를 결합해 4차 산업 헬스케어영역에서의 지배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4차 산업혁명 혁신기술 개발은 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민간투자사들의 자본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중요한 점은 민간투자사들이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정부 정책에 부합하면서 투자업체 수익창출을 위한 노하우 제공과 자문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것.
충칭시에 위치한 ‘동승항강그룹’은 민간투자사로 사물인터넷·클라우드 컴퓨팅·빅데이터·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스마트카운티 등 특화지식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과거 중국 하이난 등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부동산 투자를 막자 눈을 돌려 4차 산업 관련 스타트업 등에 투자를 해왔다.
이진휴 위원은 “동승항강그룹은 자동차 자동주차, 택시 위치추적단말기 정보시스템 등 중국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혁신기술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며 “민간투자사 입장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도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또는 스타트업들의 사업 계획을 분석해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금 투자에 나선 것”이라며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공익적 사업이라도 민간투자사를 참여시켜 그들의 수익모델 창출을 위한 제안과 자문 및 노하우를 접목해 수익사업으로서의 가치 또한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 혁신기술 개발, 중국은 ‘필수’ 한국은 ‘선택’
중국 정부가 4차 산업 혁신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적·정치적으로는 자문화 중심주의적 ‘중화사상’(中華思想)과 중국적 세계화를 꿈꾸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꼽을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시대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4차 산업 혁신기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진휴 위원 또한 이러한 분석에 동의했다.
그는 공공기관을 방문했을 때 한 공무원에게 중국 정부가 4차 산업 혁신기술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중국의 대외정책 중 하나가 일대일로다. 이를 통해 가난한 제3세계 등 많은 나라를 도와주고 싶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4차 산업 혁신기술 개발을 통해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저력이 필요하다.”
이 위원은 “중국은 4차 산업 혁신기술 개발 필요성에 대해 정부와 국민 모두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며 “이 점이 한국과 중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도 정부 주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며 “하지만 정책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보니 혁신기술 개발을 위한 제도개선 제안을 했을 때 정부기관이 수용 또는 부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 당이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고 또 ‘선시행·후규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정부 부처·산하기관은 물론 민간기업과 국민 모두가 4차 산업 혁신기술 개발을 지원·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즉, 중국은 4차 산업혁명시대 혁신기술 개발을 ‘필수’로 인식해 수용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선택’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진휴 위원은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규제·제도혁신 해커톤만 보더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 부처가 반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아무런 결론을 낼 수 없다”며 “만약 동일한 상황이라면 중국은 어떠한 형태든 결론을 내서 신속히 정책을 추진하고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출장을 통해 조만간 중국이 4차 산업 혁신기술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 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기술은 국경이 없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 앞서 있는 혁신기술을 공유해 상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의 풍부한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할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령 세종시·부산시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의 경우 샘플 사이즈가 작다”며 “양국 간 협력을 통해 중국 지역에 시범도시를 선정해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