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Kidney)은 소변 형성을 통해 혈액에서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설하는 것은 물론 몸의 항상성 유지와 생명에 필요한 여러 호르몬 및 효소를 생산·분비하는 중요한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
콩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병하는 만성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CKD)은 주로 신장 손상과 상관없이 사구체 여과율(Glomerular Filtration Rate·GFR)이 3개월 이상 60ml/min/1.73㎡ 미만으로 감소된 상태이거나 3개월 이상 신장이 손상된 경우를 일컫는다.
소리 없이 찾아와 생명의 치명적인 위협을 초래하는 만성콩팥병(말기신부전증)은 국내 연평균 증가율이 8.7%에 달하며 매년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만성콩팥병 환자 수는 2013년 15만1511명에서 2017년 20만3978명으로 5년 간 약 34% 증가했다.
더욱이 미국신장환자등록시스템(United States Renal Data System·USRDS)에서 인구 100만 명 당 말기신부전(End Stage Renal Disease·ESRD) 환자 수 통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대만 일본 미국 싱가포르 포르투갈에 이어 6번째로 환자가 많았다.
만성콩팥병 환자는 신장 기능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말기신부전에 해당하는 5단계까지 진행된 경우 ▲혈액투석(Hemodialysis·HD) ▲복막투석(Peritoneal Dialysis·PD) ▲신장이식(Kidney Transplantation·KT)과 같은 신대체요법을 시행한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신대체요법을 받고 있는 국내 환자는 2017년 기준 총 9만8746명.
혈액투석이 7만305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장이식(1만9212명)·복막투석(6475명)이 뒤를 이었다.
특히 투석 환자의 90% 이상이 받고 있는 혈액투석은 확산(Diffusion)을 이용해 혈액을 몸 밖으로 유도하고, 반투과성 막으로 구성되는 인공투석기로 혈액을 정화하고 다시 체내로 되돌리는 치료법이다.
이 치료법은 소분자 요독물질 제거 효율성은 높지만 중분자 요독물질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또 환자의 혈압 저하와 불균형증후군 등 만성콩팥병의 합병증 위험이 높다는 단점도 지적돼왔다.
‘혈액투석여과’(Hemodiafiltration·HDF)은 이 같은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혈액투석과 혈액여과(Hemofiltration·HF) 방식을 결합한 신대체요법으로 등장했다.
이 치료법은 소분자와 중분자를 모두 포함해 보다 광범위한 분자량의 요독물질을 제거할 수 있고, 혈액투석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저혈압과 아밀로이드증 발생을 감소시키는 효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많은 양의 투석액과 보충액이 필요해 공급에 필요한 비용이 높아 보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최소 300ml/min 이상 혈류 속도를 올려야 시행이 가능해 혈관 상태가 좋지 못한 환자들은 사용할 수 없는 한계성 또한 제기됐다.
지난 10월 23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신장학회(American Society of Nephrology·ASN)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박스터 인공신장기용 혈액여과기 ‘테라노바’(Theranona)를 이용한 혈액투석치료 ‘HDx’(expanded hemodialysis) 연구결과가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끈 이유이자 배경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올해 ASN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HDx 치료법 관련 초록은 총 13건.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신장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장내과 전문의 콜린 허치슨(Colin Hutchison) 박사는 HDx 치료법이 혈액투석 환자의 중분자 및 큰 중분자 요독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인체에 필요한 알부민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기자는 최근 국내 신장내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HDx 치료법의 임상적 유효성을 설명하고 말기신부전증 치료 최신지견을 공유하고자 한국을 찾은 그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콜린 허치슨 박사는 “HDx 치료법이 소분자 요독물질 등 제거할 수 있는 용질의 제한점이 있었던 기존 HD·HDF와 달리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요독물질은 신장 기능 저하로 인해 체내 침착돼 손상을 유발하는 단백질.
요독물질이 과도하게 침착되면 요독증이 발생하는데 이는 말기신부전증에서 발생하는 합병증으로 심혈관 질환을 진행시키는 잠재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체내에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이 쌓이면 감염 및 심혈관계 질환 등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 위험률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대한신장학회가 국내 투석환자 주요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심혈관 질환(45.1%) ▲기타 요인(27.7%) ▲감염(25.2%) ▲간 질환(2%)으로 나타나 중분자 요독물질 제거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콜린 허치슨 박사는 “요독물질은 소분자에서부터 중분자·큰 중분자로 분류되는데 지난 20~30년 동안 전통적인 HD나 HDF 투석으로는 소분자 요독물질만 효과적으로 제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분자 요독물질에는 총 28가지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사이토카인(Cytokine), 아디포카인(Adipokine), 성장인자들(Growth Factors), 면역체계가 변형된 단백질 등 요독물질이 체내에 축적되면 만성염증을 일으키거나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혈액투석 환자에게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이 쌓이면 사망위험이 증가하게 된다”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3중 구조 투석막 테라노바 필터를 이용한 HDx 치료법은 투과성 및 투과 물질 선택성·생체적합성을 개선해 대표적인 중분자 요독물질인 베타-2 마이크로글로블린(β-2 Microglobulin)은 물론 유리경쇄(Free immunoglobulin light chain)·미오글로빈(Myoglobin)과 같은 큰 중분자 물질도 효과적으로 제거해 심혈관계 질환과 만성 염증 등 합병증과 사망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ASN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관련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해당 연구는 HD로 6개월 이상 치료 받은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HD와 MCO(Medium Cut-Off) 방식의 테라노바를 이용한 HDx 치료법의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 제거효과를 비교했다.
이 결과 미오글로빈 감소율은 HDX 치료법이 59%로 HD 36%에 비해 높은 제거효과를 나타냈다.
베타-2 마이크로글로불린 역시 HDx 치료법은 77%로 HD 69% 보다 감소율이 높았다.
기존 혈액투석막(highflux dialyzer)과의 비교연구 외에도 HDx 치료법 효과와 관련해 허치슨 박사는 “요독물질 제거효과 측면에서 봤을 때 HDF는 그간 HD로 걸러내지 못했던 25~55kD의 큰 중분자 물질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며 “하지만 HDF는 환자 혈류(Blood Flow)에 영향을 받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HDF 치료법은 환자 혈류가 최소한 분당 300㎖를 충족해야만 투석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서양인에 비해 체구가 작은 아시아인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 수가 더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치슨 박사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환자는 대략 50% 밖에 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혈류에 대한 최소 기준이 없는 HDx 치료법을 더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HDx 치료법이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기전은 무엇일까.
허치슨 박사는 고효율 혈액투석 필터 ‘테라노바’ 투석막에 그 답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투석막을 설계할 때 차이점을 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라며 “투석막은 수백 만 개의 섬유로 돼있고, 수백 만 개의 섬유 안에 더 큰 구멍(Pore)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투석막과 비교했을 때 HDx 투석막 안에 들어있는 구멍 크기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이 공간을 통해 큰 중분자 요독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투석막 총장이 15cm 정도인데 투석막의 지름 자체를 줄였다”며 “투석막의 구멍 크기는 커졌는데 폭이 줄어들면서 투석 시 오히려 분자를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여과시켜 밖으로 내보내 더 많은 중분자 요독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HDx 치료법은 혈액투석 환자의 중분자·큰 중분자 요독물질의 효과적인 제거에도 불구하고 일부 알부민(Albumin) 누출 가능성 우려가 있었다.
알부민은 체내 필수 요소 단백질로 혈청 알부민 수치가 낮아지면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지난 10월 ASN에서 허치슨 박사가 발표한 HDx 연구결과는 이러한 알부민 누출 우려를 씻어냈다.
허치슨 박사가 발표한 첫 번째 연구는 6개월 동안 HDx 치료법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했다.
이 결과, 1차 결과에서 연구 시작 시점부터 6개월 기간까지 알부민 수치는 2.9% 감소해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어떠한 환자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속적인 알부민 수치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으며, 2차 결과에서도 기능 및 영양 평가도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6개월 동안 HDx 혈액투석 치료를 받은 전 세계 6개국 56명 만성 환자의 알부민 수치를 평가한 두 번째 연구에서도 HDx 치료법은 투석 이전의 혈청 알부민 농도에 유의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점은 모집단의 50%가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대부분의 투석 환자가 빈혈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제제) 용량을 감량했지만 염증 표지와 헤모글로빈 수치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것.
허치슨 박사는 “HDx 투석을 통해 알부민 수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며 “기존 HDF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도 이 정도 수치의 알부민 유출은 있었기 때문에 HDx 치료법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ASN에서 발표된 HDx 연구결과는 안전성 평가 측면에서의 알부민 누출뿐만 아니라 혈액응고와 역여과(Back Filtration)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허치슨 박사에 따르면, 혈액응고의 경우 INR(International Normalized Ratio·국제정상화비)이나 aPTTR(Activated Partial Thromboplastin Time Ration) 관점에서 봤을 때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안전성 평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응고연쇄반응은(Clotting Cascade)은 혈액응고가 되는 현상이 연쇄적으로 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INR과 aPTTR은 응고연쇄반응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측정하는 일종의 표준 측정법.
와파린(Warfarin)이나 해파린(Heparin)을 투여했을 때 INR을 통해 간 기능이 얼마나 정상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측정한다.
또 aPTTR은 혈액응고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연쇄반응을 측정한다.
HDx 치료법은 이 두 가지 결과가 모두 안정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인체에 좋은 알부민이나 기타 단백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허치슨 박사는 또한 “그간 혈액투석이나 여과를 할 때 알부민 누출이나 혈액응고와 함께 요독물질들이 투석액에서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는 ‘역여과’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 연구팀은 HDx 치료법에서 역여과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소개했다.
임상근거를 기반으로 중분자·큰 중복자 요독물질의 효과적인 제거는 물론 알부민 누출과 혈액응고 및 역여과에 대한 안전성까지 입증한 HDx 치료법.
과연 혈액투석 환자 입장에서는 어떠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환자 입장에서의 변화 중 하나는 가뿐한 건강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허치슨 박사는 “중분자 요독물질이 제거되지 않을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사이토카인이다. 큰 중분자 요독물질인 사이토카인이 청소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감기에 걸린다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사이토카인이 축적됐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되면 구토를 느끼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근육통이 오게 되는데 HDx 치료법을 통해 사이토카인과 같은 큰 중분자 요독물질을 제거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컨디션이 더 좋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치슨 박사는 동료 신장내과 전문의들과 함께 운영 중인 클리닉 환자들을 통해서도 이 같은 효과를 입증할 수 있었다.
그는 “환자 10명을 선별해 총 6개월 동안 테라노바 필터를 이용한 HDx 치료법을 시행한 결과 연구가 끝나는 6개월 시점에서 환자들이 HDx 치료법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덧붙여 “현재는 다른 투석을 받았던 환자까지 포함해 클리닉 환자 모두가 HDx 치료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환자들이 HDx 치료를 받으면 본인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는데 한국에서도 발표된 관련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투석 환자들을 대상으로 증상 부담(Symptom Burden·본인이 가장 크게 느끼는 증상)을 물었을 때 가장 많았던 것이 가려움증(소양증)이었다. 이는 체내 요독물질이 축적되면서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로 HDx 치료법 시행 시 소양증이 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혈액투석(HD)·고유량 혈액투석(HDF)에서 인공신장기용 혈액여과기 ‘테라노바’를 이용한 HDx 치료법으로 점차 대체되는 상황에서 한국 의료진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콜린 허치슨 박사는 “신장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요배설량(Urine Output)이라고 하는데 기존 투석을 했던 기간이 최소 6개월이 지난 환자에서 요배설량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더 많은 중분자 요독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HDx 치료법을 우선 권고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HDx 치료법은 기존 HD·HDF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혈액투석 환자의 차세대 치료법이 될 것”이라며 “심혈관계 질환 예방이나 2차 면역저하 혹은 환자 삶의 질 측면에서 훨씬 더 개선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