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 이후 예과 1학년으로 별 생각없이 지내던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세계 의대생 총회 참여였다. 국제보건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했기에,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이하 의대협)에서 올린 세계 의대생 총회 한국 파견단 모집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떨어지더라도 붙을 때까지 매년 지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운 좋게 파견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 해 2016년 세계 의대생 총회는 멕시코에서 열렸다. 세계 의대생 총회는 여러 주제로 나뉘어 주제마다 세션이 있었고, 그 중 인권 및 평화 부서로 파견됐다.
세계의대생협회는 각 나라의 의료계 학생들의 학생 협회가 모여 이루어진 단체로, 세계의대생 총회를 연 2회, 매번 다른 나라에서 연다. 총회의 많은 시간이 학생들이 진행하는 학생세션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중 두 개 세션이 기억에 남았다.
첫 번째 세션은 '너가 누리는 것들은 마땅히 누리는 것인가?'라는 이름으로 Privilege, 특권에 관한 세션이다. HIV positive 인 난민, 남자 위주의 직장에서 레즈비언 여자 등 소수자의 역할을 가정하고 여러 상황이 주어져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알아보는 Privilege walk 로 시작했다.
이후 Norm(비공식적으로 정상이라 여겨지는 행태), stereotype(특정 집단에 대한 일반화된 생각), prejudice(stereotype 에 기반한 감정), discrimination(prejudice에 기반해 불이익을 주는 것) 등의 개념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ally(협력자)가 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는 world trade, 세계 무역을 해보는 세션이다. 그냥 무역 시뮬레이션을 예상했는데 상당히 골 때리는 시간이었다. 각 팀은 종이, 가위, 자 등으로 삼각형, 원 등을 만들어 진행자들에게 팔면 점수를 얻는다. 팀마다 종이, 가위, 자 배분이 달랐다.
진행자는 상당히 편파적이어서 어떤 팀은 굉장히 점수를 후하게 주고, 어떤 조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받아주지 않았다. 종이를 많이 가진 조는 가위, 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고 (손으로 자른 것은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가위 가진 조가 종이 가진 조를 착취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불공정한 세계 무역 안에서 개발도상국이 경제적으로 이용당하는 그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인권 및 평화 세션은 이 세상이 정의롭고 별 탈 없이 돌아가는 줄 알았던 그 당시의 나에게, 인권의 개념은 존재하지만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인권은 단순히 동동 떠있는 개념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인권 및 평화 세션의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대생들로써 자신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며, 이를 세계 의대생 총회에서 나누었다. 세션 진행자는 학생들이었고, 프로그램은 강연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행자와 참여자 간 의견교환이 활발했다.
세계 의대생 총회는 내 대학생활의 전환점이 됐다. 총회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 의대생들에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의대협 활동을 시작했고,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완벽하게 생각했던 세계의대생협회의 한계도 느끼고 (가장 아쉬웠던 점은 총회가 유럽 국가 중심으로 움직이고, 아직도 인종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 없는 점들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의대생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청사진에는 세계의대생협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의대생들이 더 건강한 세계를 위해 미래 의료계 리더로서 준비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think global) 주위 사회의 문제들에 행동하는 (act local) 단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일매일 본과 수업에 시달리면서도 대한민국 의대생들이 어떤 비전,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행동해 나가야 할 지 생각하며 희망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