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기업도시 내 위치한 인성메디칼.
이 회사 송인금 회장은 1984년 인성교역을 설립해 치료재료를 수입 공급하다 1993년 인성메디칼로 법인 전환 후 2000년부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2015년 원주로 본사를 이전한 인성메디칼은 수액세트, 인라인필터, 혈관삽입용 카테터, 이식형 의약품 주입기 등 ‘치료재료 국산화’를 실현한 국내 제조사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인성메디칼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국내사는 영세하다’라는 공식을 깨고 기술과 품질로 경쟁하는 정공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공법은 의료기관 협업과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뇌실 내 약물주입기구’는 국립암센터와 공동 개발한 제품이다. 서울아산병원과는 비만 관련 십이지장에 삽입하는 비혈관 스텐트를 공동 개발 중이다.
의료기관과의 협업은 제품 개발 초기단계부터 의사들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반영해 제품화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제 임상에서의 사용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는 다국적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여 품질로 경쟁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인성메디칼은 2012년 설립한 전담연구부서를 2014년 부설연구소로 승격시켜 현재 대표이사 직속기관으로 둘 만큼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연구개발 인력은 약 30명, 매년 전체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의료기관 협업과 연구개발 투자는 치료재료 국산화를 넘어 독자적인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10년 출시한 4등급 이식형 의약품 주입기 ‘휴먼 포트’(HUMAN PORT)다.
이 제품은 중심정맥 카테터로 암 환자에게 장기적으로 항암제·영양제 등을 주입할 때 사용한다.
휴먼 포트는 인성메디칼이 다국적기업 바드(BARD)·비브라운(B.BRAUN) 등 전량 수입제품에 의존했던 국내시장에서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제품이다.
이밖에 독자적인 기술로 최근 자체 개발한 ‘휴먼 카테터’(HUMAN CATHETER)는 직경이 0.33mm의 신생아 혈관용 말초정맥 카테터로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생산원가·규제비용 증가…선별적 규제 완화 절실
수입의존도가 높은 척박한 국내시장에서 치료재료 국산화에 앞장서온 인성메디칼은 최근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생산원가 증가는 물론 의료기기 규제 강화로 인력 및 비용부담까지 커졌기 때문.
오너 2세로 2010년 입사해 2018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송준호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의료기기제조사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쏟아냈다.
송 대표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RA(인허가)·QA(품질관리)와 같은 인력 채용도 힘들지만 더 큰 어려움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라고 밝혔다.
이어 "생산원가는 늘어나는데 보험수가에 원가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을뿐더러 판매가 또한 떨어지다보니 제조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지난해 7월 정부가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규제 총량은 늘어나 제조사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의료기기 GLP(Good Laboratory Practice·비임상시험관리기준)를 거론했다.
오는 5월 전면 시행되는 GLP는 의료기기제조·수입 인허가를 위한 생물학적 안전에 관한 시험 시 안전성과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
비임상시험실시기관에서 수행하는 시험의 전 과정 및 결과에 관련된 계획·실행·점검·기록·보고 등 모든 사항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제조·수입업자는 식약처 허가 신청 시 GLP기관에서 발급한 성적서 제출이 의무화된다.
문제는 GLP 시험검사가 규모가 영세한 제조사들에게 큰 비용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
송준호 대표는 "GLP 시험검사 일부 항목은 2배에서 5배까지 비용이 올랐다. 더욱이 치료재료는 제품군이 많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제품 몇 개를 팔아야 시험검사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솔직한 심정으로 의료기기단체가 나서거나 의료기기업체끼리 뭉치든 아니면 원주기업도시가 됐든 공익적 목적으로 시험검사기관을 만들어 제조사들의 GLP 시험검사 비용부담을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기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와 관련해 제조사들을 위한 선별적 규제 완화 필요성도 제기했다.
기존에는 후발업체 제품이 이미 시장에서 허가받은 제품과 비교해 구조·원리 등 '본질적 동등성'을 입증하면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한 기존 기술로 인정해 허가과정에서 임상자료 제출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최초 개발업체는 제품 허가 시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허가를 받는 반면 후발업체의 경우 최초업체 정보로 쉽게 허가를 받고 있다는 역차별 이슈가 제기되자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
송 대표는 "규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의료기기 안전성을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다만 국내 제조사가 다국적기업 눈높이에 맞춘 규제 수준을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인력·자금력이 부족한 국내사들의 현실과 의견을 반영해 적용 가능한 선별적 규제를 시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의료기기업체 오너 2세로 경영 일선에 나선 송준호 대표는 앞으로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1등을 하는 건 힘들다. 1등을 긴장시키는 존재감 있는 2등이 됐으면 한다. 특히 매출보다는 매년 1~2개씩 치료재료 신제품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척박한 국내시장에서 계속 살아남는 게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