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어社 인공혈관 공급 대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의료기기 규제 완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기기업계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이유가 높은 규제로 인한 비용부담과 수익성 악화 때문으로 보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고어社는 한국시장 철수 당시 식약처가 3년마다 제조사가 있는 해외 공장에 방문해 이뤄지는 현지실사에 수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부담을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실사 비용을 포함해 허가를 받기 위해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자료 제출 등 각종 규제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규제에 따른 비용증가와 낮은 수가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인공혈관 공급을 중단하고 일정 분량의 소모품을 재고용으로 판매한 뒤 시장철수를 결정한 것.
의료기기업계는 의료기기 규제 강화가 업체들의 비용부담과 사업성 악화로 이어져 고어社와 같은 제품 공급 중단 사태를 재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대통령이 나서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천명했지만 오히려 식약처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식약처는 의료기기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 GLP(Good Laboratory Practice·비임상시험관리기준) 강화, 품목허가 갱신제 등 안전성 확보를 이유로 규제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업계는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와 GLP 강화가 업체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시험은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임상시험 자체가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요인이 있어 신중한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세계적 흐름은 불필요한 임상시험은 배제하고 리얼 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a·RWD)·모델링 앤 시뮬레이션(Modeling & Simulation)과 같은 임상시험 대체수단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일부 고위험 의료기기를 제외하고는 ‘본질적 동등성’을 통한 안전성·유효성 입증이 가능해 이미 대다수 나라가 이를 적용하고 있다.
더욱이 최초 개발업체의 제품 허가 시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임상시험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은 이미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에 대한 또 다른 임상시험 실시로 후발업체의 시장진입을 가로막고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GLP 규제 강화 역시 영세한 제조사들에게 큰 비용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의료기기제조사 대표는 “GLP 시험검사 일부 항목은 2배에서 5배까지 비용이 올랐다. 더욱이 치료재료는 제품군이 많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제품 몇 개를 팔아야 시험검사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아무런 문제없이 내수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해왔던 제조사 입장에서는 두 배 이상 오른 비용을 부담하며 또 다시 시험검사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업체 관계자는 “해외로 수출하는 제조사는 해당국 요구가 있으면 GLP 시험검사를 받겠지만 굳이 내수시장에서만 판매하는 제품까지 모두 GLP 성적서를 받도록 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로 비용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규제기관인 식약처가 의료기기 안전성 확보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며 “하지만 제조사들의 현실과 의견을 반영해 적용 가능한 선별적 규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7월 대통령은 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식약처 행보는 이와 반대로 규제 강화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가 고어社 인공혈관 공급 재개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의료기기 규제 총량이 늘어나고 선별적 규제 적용 없이는 제2·제3의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게 의료기기업계 현장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