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이하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언론을 통해 일부 다국적기업들의 부당 영업행위 정황이 드러나고 공정위 조사까지 이뤄지자 업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이경국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는 10일 협회 윤리위원장·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장과 만나 규약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7일 메디칼타임즈 보도(누가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개정을 보이콧하나) 이후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며 “그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윤리위원회 설득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규약 개정 핵심은 의료기기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 제11조(교육·훈련)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수입품목 허가를 받은 후 시판 전까지 의사들의 국외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항공료·숙박·식대 등 출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규약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돼왔기 때문.
교육·훈련을 빙자해 의도적으로 1등급 또는 국내 판매 계획이 없는 제품 허가를 받고 정작 수입은 하지 않으면서 이 기간 출장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소위 ‘리베이트성 허가’를 바로잡아야한다는 업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협회 윤리위원회(위원장 김영민·지인씨앤티 대표)가 지난 2월 11일 개최한 회의에서도 이 같은 정황을 엿볼 수 있다.
기자가 입수한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한 위원은 국외 교육·훈련 후 제품 출시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해당 업체의 다른 제품에 대한 교육·훈련을 제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제품 출시에 대해 업체별 사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외 교육·훈련 제지는 현실상 어렵지만 특정 제품의 교육·훈련 빈도수를 확인해 해당 업체에 공지하고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보완책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회 내부규정을 규약 세부운용기준에 추가하는 것이 복지부·공정위 등 정부부처와 규약을 운용하는 타 협회와의 논의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일부 의견에 부딪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국외 교육·훈련 세부운용기준을 바꾸는 것이 정부부처 및 타 협회와 논의가 필요해 어렵다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는 “국외 교육·훈련 규정은 의료기기업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타 협회와 협의할 사안 자체가 아니다”라며 “윤리위원회가 개정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경국 회장 역시 “국외 교육·훈련의 경우 제약사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타 협회와 상의할 필요가 없다”며 “내부지침을 보완·개정해 복지부·공정위에 변경승인 신고 후 바로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국외 교육·훈련 규약 개정은 앞서 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회가 마련한 세 차례(2017년 1월 13일·4월 14일·2018년 1월 12일) 관련 내부지침과 세부운용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마련해 복지부·공정위에 변경승인 신고를 거치면 시행 가능하다.
특히 수입허가 후 교육·훈련을 단 1회로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새로운 개정안은 명시적 규정을 통한 강제성을 부여해 향후 관련 규약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명확한 법적 처벌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개정과 함께 협회 윤리위원회 조직개편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사 참여가 활발한 법규위원회·보험위원회 등과 달리 천편일률적인 다국적기업 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자가 입수한 윤리위원회 위원 총 38명 가운데 35명이 수입사·다국적기업 소속이었다.
그나마 국내사 3곳 중 제조사는 단 한 곳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2곳은 컨설팅업체로 채워졌다.
윤리위원회 한 위원은 “윤리위 위원 90% 이상이 다국적기업 소속인 건 사실”이라며 “윤리위 자체가 변호사나 Compliance(컴플리언스) 관련 임원이 참여해 활동하다보니 제조사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규위·보험위가 다국적기업 중심이라는 오해와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제조사들의 참여를 적극 독려한데 반해 상대적으로 윤리위는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윤리위 위원 대부분이 다국적기업이기 때문에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개정에 소극적이라는 오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밖에서 윤리위 구성만 놓고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다국적기업 이익만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리위원회 구성을 봤을 때 과연 협회가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을 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은 제조사·수입사·다국적기업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해 의료기기 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공공성 실현을 목적으로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운용하는 자율규약”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력 부족과 학술대회 및 교육·훈련에 지원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제조사 참여가 거의 전무한 윤리위가 결정한 사안은 대표성이 없을뿐더러 협회 또한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을 운용할 단체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